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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Dec 04. 2023

창문 하나

글 올리브

보통 퇴사를 고민하는 수많은 직장인에게 해주는 보편적인 조언으로 “회사의 장점을 찾아봐라.”가 있다. 회사에 남게 해주는 장점이라면, 연봉? 복지? 워라밸? 유연근무? 사람마다 직업적 가치관이 다르니까 일반적인 것은 이쯤으로 해두겠다. 나는 이번 회사에서 일반적인 장점 때문에 남으려 했던 게 아니었다는 건 정확히 알았다. 물론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 프리한 복장, 개별적인 점심시간, 마감 이후 주어지는 열하루의 연차, 자연 친화적인 회사 주변, 책으로 둘러싸인 빈티지한 인테리어 이런 것들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만족했던 건 놀랍게도 ‘작은 창’ 때문이었다. 왼쪽으로 고갤 돌리면 내 자리에서 보이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다. 아침마다 환기를 시킬 겸 창문을 열어두곤 했는데 더운 여름엔 하루 종일 창을 열어뒀다. 창밖에는 초록,  빨강, 하늘색이 보였다. 초록색 나뭇잎이 무성한 그 아래 빨간 기와지붕이 반쯤 보이는 그 창이 너무 예뻤다. 맑은 날은 은은한 바람이 불어 흔들거리는 나뭇잎이 예뻤고 언뜻 보이는 맑은 하늘에 구름이 귀여웠다. 비가 오는 날이면 초록 잎이 더 선명해져서 빨간 지붕과 대비되어 더 예뻤다. 빗줄기가 비치는 모습도 바깥 풍경과 잘 어울렸다. 끝없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생각을 비우게 되어 마음이 편했다. 아무도 몰래 작은 네모를 마냥 들여다보는 게 좋았다. 마감이 다가오는 날이면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도 놓치고 일에 푹 빠져있는 날도 있었다. 잠시 눈을 돌려 초록과 빨강이 걸려 있는 조그만 창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멈춰 있는 풍경이 내겐 숨 쉴 구멍이었다. 그 풍경을 보려고 출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지막 출근 날에 더 이상 이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며칠 앉진 않았지만, 애정어린 책상 모니터 앞과 왼쪽에 걸려 있는 창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에게 처음으로 성취감과 뿌듯함을 주었던 자리였고, 쉼이 돼주었던 풍경이다. 영영 잊을 수 없다. 


평소에도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버릇이 있다. 맑은 하늘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 보면 교사를 하던 첫 직장도 운 좋게 주변 자연경관이 좋아서 매일 출퇴근 시간을 기분 좋게 오갔던 기억이 있다. 구도심에 위치한 초등학교였는데 앞엔 작은 하천이 있었다. 봄엔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엔 뾰족뾰족 초록 나무가 정말 멋졌다. 가을 낙엽과 가을 열매도 앙증맞고 겨울엔 눈꽃이 소복이 쌓인 징검다리를 좋아했다. 저녁 늦은 시간 퇴근할 때면 노을 지는 하늘과 하천 사이로 예쁜 저녁달을 만나곤 했다. 그게 나의 퇴근길 최고의 힐링이었다. 매일 같이 하천 위 다리에서 사진을 찰칵대느라 한참 머물러 있다 가곤 했다. 


다음 직장은 신도시에 있어서 창밖 풍경이 아파트 단지와 네모난 상가 건물들뿐이었다. 게다가 차를 운전하고 다녀서 창밖 풍경을 구경할 틈도 없었다. 가끔 백미러로 보이는 노을과 눈이 마주치면 혼자 신이 났다. 그때 알았다. 나는 자연을 심히 좋아해서 자연 가까이 있는 직장을 다니면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나도 내가 유별난 걸 안다. 그렇지만 어딘가 느리게 흘러가는 내가 좋다. 


정말 임금체불 이슈가 없었더라면 나 이 회사를 오래 다녔을 것이다. 구석진 이곳까지 들어오는데 지하철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주변 상권도 발달하지 않아서 점심 먹을 때마다 고민이 되지만 오가는 길에 만나는 하천과 담쟁이넝쿨, 조용한 자연이 좋았다. 처음 면접 보러 회사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너무 멀어서 못 다니겠다는 불만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단독으로 세워진 회사 건물이 너무 예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냥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을 바꿨더랬다. 회사 안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 생각을 확고하게 해 주었다. 자리에서 보이는 네모난 작은 창뿐만 아니라 벽면 한쪽은 전부 통유리였고 다용도 탁자 앞에도 창문이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 밥 먹을 때 행복했다. 사실 오후가 되면 빛이 너무 강하게 들어와서 커튼을 꼭 쳐야 했지만, 개인적으로 통유리를 너무 사랑한다. 여러 개의 창문들 덕분에 회사 안에 8시간 이상 궁둥이를 붙이고 있을 수 있었다.  다음 직장은 어떤 곳으로 갈지 모르겠지만 창밖 풍경에 네모난 건물들만 잔뜩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에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나무 한 그루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화분을 가져다 놓아야지. 나의 숨 쉴 구멍이었던 예쁜 창이 있는 회사를 잠시라도 만났던 것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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