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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Dec 07. 2023

다니고 싶은 회사의 조건​

글 병아리콩

교직원을 그만두고 한동안 내가 어떤 조직에도 맞지 않는 사람일까 봐 무서웠다. 낯도 많이 가리고, 술은 입에도 못 대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남들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도 적합한 회사가 있을까? 완벽하진 않아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해 준 곳이 A사였다. 그래서 왕복 3시간의 출퇴근과 최저시급 가까운 월급에도, 심지어 그 작고 소중한 월급이 답도 없이 밀리는데도 퇴사를 망설였다. 


1. 일에서 오는 재미

가장 큰 이유는 일이 재밌어서였다. 책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가 좋았고 기획하고 제작하며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미친 듯이 가슴이 뛰었다’ 거나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는 식의, 유명인의 성공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표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늘 그런 식의 확신을 갖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A사에서 일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갔고,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부할 마음이 생겼으며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 쉴 때에도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며 읽는 편인데 회사에서는 그게 일이다. 회사에서 책을 읽으며 앉아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 이만하면 일이 꽤 잘 맞는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2. 안정감을 주는 동료들

A사에서의 좋은 점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또 다른 이유는 동료다. 회사에서 마음 맞는 사람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같이 일하다 보면 아쉬운 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동료들이 특별히 모난 데 없는 사람이기만 해도 천운이고, 빌런이 없다면 기적이다. 그래서 A사에서 만난 동료들이 내가 월요일이 힘들어도 두렵지는 않았던 커다란 이유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때가 있다. 어렴풋이 느끼지만 아직 감정이나 생각이 미약하여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직장을 다니며 직원들과 대화할 때 가끔 그런 알 수 없는 부조화를 느꼈다.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내 생각을 사회 초년생의 칭얼거림처럼 여기고 귀여워하거나, 회사의 관습이 좋든 싫든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 편한 길이라고 조언할 때. 안정성이나 높은 급여가 직업 선택의 절대 기준이며 오랜 여행이나 갭 이어를 꿈꾸지만 정작 일을 쉴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걸 느꼈을 때. 나중에야 그 부조화가 직업관과 인생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았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가치관이 비슷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내 직업관을 지나치게 낭만적이라고 핀잔주는 친구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다른 생각에서 창의력이나 기획력 같은 모든 좋은 것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런데 직장에서 내 직업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함께해 줄 동료가 많다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그러면 이 직장이 나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안정성은 안 잘리는 정규직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게 아니다. 나와 관심사가, 사회에 주고 싶은 영향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내가 바람직하다고 믿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에서 온다.


3. 자유로운 조직문화

마지막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문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당신의 점심시간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A사의 점심시간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보통 12시에서 1시 사이에 알아서 먹는 분위기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여도 큰 상관이 없다. 회사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회의를 할 때도 본인 역량대로 의견을 어필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결정 권한은 대표에게 있었고, 그 결정이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수평적인 분위기를 지향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 역량이 10인 사람이 10명 모인 회사라면 상식적으로 100의 성과를 내는 게 맞다. 하지만 경직된 분위기와 일방적 의사결정 속에서는 단 30의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조직 내 권위와 위계를 축소하는 일,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일은 복지가 아닌 성과를 위해 필수적이다. 


다니고 싶은 회사의 조건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일요일 밤마다 심하게 우울해지지 않는 회사, 달력에 날짜마다 X 표시를 하며 그냥 한 달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지 않는 회사를 원했지만 그런 회사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A사에서 일을 하는 근본적인 목적인 급여가 밀리는데도 퇴사를 고민했던 이유가 내가 높이 사는 회사의 가치였던 것 같다. 일에서 오는 재미,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 문화.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데 급여가 밀리다니. 역시 완벽한 회사는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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