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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Jul 29. 2020

그 시절, 엄마가 긴 생머리였던 이유

그래도 엄마는 예뻤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미스터 트롯 우승자 중 한 분이 무명가수로 지내던 시절에 어머니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어머니가 다니던 노래 교실에 깜짝 방문했단다. 그런데 그는 춤추고 노래하는 신난 어머니들 중에서 본인의 어머니를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왜? 모든 어머니의 헤어스타일이 똑같아서ㅎㅎ. 일명 장정구 스타일

그렇다. 동네 할머니들의 헤어스타일은 다 거기서 거기, 꼬불꼬불 바짝 말아 올린 스타일.    


올해 여든이 넘으신 우리 친정엄마의 헤어스타일도 그렇다. 언제부터 그런 파마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파마를 새로 하고 오신 날은 머리카락이 겨우 두피에 붙어있을 정도의 길이였다. 그것이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길어 그때가 되야 보기에 괜찮을 정도가 된다. 친정엄마의 파마 기준은 이쁨보다는 얼마나 오래 파마기를 유지하느냐의 실용성 즉 경제성이었다. 그래도 엄마도 여자이니 조금이나마 이쁨을 기대했을 텐데.        


나도 4월 초에 파마했으니 넉 달이 지났다. 나는 이쁨이 먼저지만 그래도 경제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는걸 고려하더라도 내 기준에 파마 값은 너무 비싸다. 몇 년 전만 해도 10만 원 이쪽저쪽에서 왔다 갔다 하더니 슬그머니 15만 원, 요즘은 20만 원을 훌쩍 넘는다. 거기다 헤어디자이너들이 머리카락이 상했니 어쩌니 하며 권하는 영양클리닉의 조언도 부담스럽다. 물론 그만큼의 서비스와 만족도가 있으니 그 정도 지출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알뜰한 당신 우리 주부들로서는 큰 금액이다.     


파마 비용을 아낄 수는 있다. 친정엄마처럼 꼬불꼬불 바짝 말아 올리지 않더라도 적당히 꼬불꼬불한 아줌마 파마를 하면 되는데 그건 좀 더 미루고 싶다. 아직은 살짝 파마한 듯 파마 아닌 듯한 생머리 같은 스타일로 조금 덜 나이 들어 보이게 하고 싶은 속내이다. 그리고 이런 헤어스타일이 파마를 자주 하지 않아도 길면 긴 대로 스타일링을 할 수 있어서 경제적인 면에서도 괜찮기도 하다. 역시 나에게도 엄마 피가 흘러 이만하면 나도 알뜰한 당신 축에 끼이지 않을까 싶다.    


친정엄마가 처음부터 장정구 스타일의 파마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의 엄마는 나름 업스타일, 긴 생머리를 꼬아서 틀어 올리고 기다란 머리핀으로 찔러 싸맨 스타일이었다. 언제부터 엄마가 파마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젊은 시절의 엄마는 늘 긴 생머리였지만 한 번도 머리를 풀거나 하지 않았고 늘 올린 머리였다. 그 시절의 엄마에겐 이쁨도 사치였을 것이다. 그래도 하얀 피부에 쌍꺼풀진 큰 눈, 오뚝한 콧날의 서구적인 미모로 우리 엄마는 예뻤다.
 

긴 생머리로 업스타일링

없는 살림에 자식 넷을 대학공부까지 시키느라 우리 엄마·아빠의 허리는 휘다 못해 없어질 정도였을 것이다. 전업주부인 엄마로서는 외벌이 아빠의 빤한 수입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며 살았다. 지금은 우스갯소리처럼 하지만 그 시절에 월급쟁이 남편을 둔 아줌마가 젤 부러웠다고 했다. 같이 시장을 보러 가면 그 아줌마들이 장바구니에 고기며 생선이며 척척 담을 때 엄마는 주머니 속 천 원짜리  몇장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니 엄마로서는 엄마를 위해, 엄마의 이쁨을 위해 파마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시골 마을의 파마 비용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오롯이 살림살이에만, 자식들을 위해서만 썼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을 가고, 그러고도 한참을 엄마는 긴 생머리를 틀어 올린 헤어스타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대학생이 된 맏딸이 혹여 도시의 친구들에게 기죽을까 봐 시골에 살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그 당시 유행하던 나이키 운동화며 메이커 코트를 사주셨다. (절대 먼저 사달라고 하지 않았음) 그 돈이면 엄마의 파마를 수십 번은 하고도 남았을 돈인데 철없는 맏딸은 나이키가 좋아서, 메이커 옷이 좋아서 엄마·아빠의 고단한 알뜰함은 생각지도 못하고 다음엔 프로스팩스 가죽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였다. 그 맏딸이 바로 나다. 요즘에 말하는 K-장녀하고는 멀어도 한참 먼 철없는 딸이었다.  

    


  K-장녀’

코리아(Korea)의 앞글자 ‘K’와 맏딸을 뜻하는 ‘장녀’의 합성어입니다.

주로 ‘지옥의 가부장제’를 견디며 살아온 여성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지칭할 때 쓰인다.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 등 “나 K-장녀야” 한 마디면 화자의 성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상징적 수식어이기도 하다.    


동생들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나간 옛일은 다 아름답다고 여동생이 말했다.

우리는 그렇지만 엄마도 그렇게 생각할까?

꽃다운 나이에 결혼했지만, 그 결혼생활이 과연 꽃다웠을까?

꽃도 예쁜 화병에 꽂혀있으면 더 예쁜데 우리 엄마의 결혼생활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예쁜 화병이 아니었다. 물론 가정적인 남편과 공부 잘하는 모범생 자식들이 있어 다른 부족함을 덮어주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였지만 그래도 그 과정 중의 고단함은 자식인 우리에겐 안쓰러움이었다.    


엄마는 그 고단함에서 벗어난 지 꽤 오래되었다.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며 엄마의 긴 생머리는 장정구 스타일의 파마로 바뀌었다. 이제는 넉넉하게 용돈 및 생활비를 책임지는 착한 아들 덕에 장정구 스타일을 벗어나 조금 더 웨이브가 굵고 폼나는 파마를 해도 될 텐데 엄마는 여전히 아끼고 또 아끼며 사신다.  

   

여전히 장정구스타일이지만 예쁜 우리 엄마

그 시절, 엄마가 긴 생머리였던 이유가 엄마의 삶의 방식으로 고착되어버렸다. 연로하신 엄마가 조금 덜 아끼고  더 풍요롭게 사시면 좋으련만 그것이 엄마의 마음 편안한 삶이시니 그러려니 생각해도 자식의 입장에선 안쓰럽다 . 하지만  그 시절 , 엄마가 긴 생머리였던 그때처럼 안쓰럽지만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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