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종자 산초 판사가 나눈 재미있는 이야기와 다른 사건들
돈키호테는 '시에라 모레나 산맥'에서 둘시네아가 사는 '엘 토보소'까지는 30레과가 넘을 정도의 먼 거리라 산초가 사흘 만에 다녀온 이유는 분명 자신의 친구인 대마법사가 몰래 도와준 것이라 여겨 은근히 기뻤다.
* 돈키호테 : 아름다운 나의 여왕께서는 무얼 하고 계시던가? 내 운명에 감사하며 신의 축복으로 여겼던 나의 고행에 대해 잘 전해주었나? 심부름에 대한 대가로 보석 같은 걸 주진 않던가?
* 산초 : 집 마당에서 제법 많은 양의 밀을 키로 쳐서 거르고 계셨습니다요. 신장도 저보다 훨씬 더 크시고 힘도 세고 땀냄새도 폴폴. 편지를 드렸지만 어차피 글씨도 몰라 편지를 읽을 수 없다며 이상한 소문이 날까 두려우신지 편지를 찢어버리셨습니다요. 돈키호테님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바쁘게 일만 하시길래 그냥 제가 알아서 다 말했습니다요. 산골짜기에서 거의 벌거벗은 채 굶어 죽기 일보직전의 고행을 하고 계시다고요. <슬픈 몰골의 기사>님이 자기가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무훈을 전해주러 온 사람들은 아직 한 명도 없다고 했습니다요. 심부름값으로는 보석 대신 양젖으로 만든 치즈를 받았습니다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농사꾼 처자 '둘시네아'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진땀을 빼던 산초는 이발사가 샘물 근처에서 잠시 쉬어가자는 말이 반가웠다. 그때 우연히 지나가던 소년이 다가와 울음을 터뜨렸다.
* 돈키호테 : 아니, 너는 떡갈나무에 묶여있던 소년이 아니냐. 주인이 널 양도둑이라며 말채찍으로 때리고 있을 때 내가 구해줬었지. 주인이 밀린 급료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더냐?
* 안드레스 : 주인한테 약속을 지키라고 말만 하고 그냥 가버리시면 어떡합니까? 덕분에 저는 다시 나무에 묶여서 더 많은 매질을 당했어요. 나리가 저를 못 본 척하고 그냥 가던 길이나 계속 가셨거나,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참견만 안 했더라면, 제 주인이 저를 적당히 때리고 잃어버린 양도 눈감아 주셨을 텐데, 나리께서 주인을 모욕하니 화가 나서 저를 더 세게 때렸잖습니까!
* 돈키호테 : 이럴 수가! 약속을 안 지키다니! 고래의 배 속에 숨어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벌을 줘야겠다. 지금 당장 응징을 하러 가야겠지만, 아쉽게도 미코미코나 공주님의 왕국을 되찾을 때 까진 다른 사건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선약이 있어. 다음 기회에.......
* 안드레스 : 그런 약속 따윈 다 필요 없고요 제가 지금 '세비야'로 가는 길인데 먹을 거든 돈이든 있으면 좀 보태주세요. 혹시나 다음에 절 만나더라도 절대 저를 도와주지 마십시오. 제 불행은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돈키호테님과 세상의 모든 편력 기사님들은 저주받으세요.
산초는 아까운 마음을 드러내며 갖고 있던 빵과 치즈를 나누어 주었고, 안드레스 소년은 얼른 받아 챙긴 후 혼날까 봐 달아났다.
>> 돈키호테는 바쁘다. 바쁠 때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허둥대게 되는데 우선순위를 정할 때 마음의 치우침보다는 먼저 약속한 순서대로 기준을 정하는 게 공평하겠다. 마음 같아서는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가 알현을 승낙했으니 당장 달려가고 싶겠지? 시간 상으로 보면 예전에 절반만 도와줬기 때문에 초래된 소년의 불행을 해결해 줘야 할 책임도 있다. 하지만 '약속했다'라는 것을 기준점으로 잡으면 사팔뜨기 거인 때문에 왕국을 되찾아야 하는 미코미코나 공주가 우선이다. 약속을 꼭 지키고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돈키호테. 오늘도 한 가지 배운다.
- 부활절이 지난 다음의 심부름값이 좋다 : 바라던 바가 이루어질 때 쓰던 속담
- 하늘을 나는 독수리보다 손에 든 새가 더 가치 있다
- 복에 겨운 사람이 그 복을 제대로 못 쓴다면,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