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가 그의 이야기를 계속하다
저는 배와 노 저을 사람도 구한 뒤 탈출이 임박했음을 알리러 몰래 소라이다를 찾아갔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의 장원에 몇 가지 채소를 뜯는다는 핑계를 대고 들어가 구석구석 살폈고 아히 모라토는 자기 친구의 포로였던 제가 이미 돈을 지불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탈출 당일 밤 그녀는 외출복 차림에 온 몸을 보석으로 휘감고 있어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습니다. 정착 자금으로 가져갈 금화가 가득한 궤짝은 너무 무거워서 옮길 때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고 잠에서 깬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도둑이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들킬까 봐 아히 모라토까지 붙잡아 같이 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아히 모라토는 자기 딸의 차림새와 궤짝을 보고 외동딸의 배신을 알게 되었으며 충격을 받아 바다에 투신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라 바다에 빠진 그를 구했고 가까운 곳에 배를 정박해 풀어주었습니다.
* 아리 모라토 : 내 딸이 개종을 하다니 믿을 수 없다! 너는 눈이 멀었느냐?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내가 너를 낳고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며 키웠는데 이런 배신을 하다니! 너와 저 사람들에게 저주 있으라! (절망에 몸부림친 후) 돌아오너라! 딸아! 모든 걸 용서하겠다! 돈은 다 저들에게 주어도 된다! 안 돌아오면 나는 여기서 죽어버리겠다!
* 소라이다(마리아) : 아버지, 저는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요. 이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도와달라고 한 거예요. 저를 나쁘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영혼이 시켜서 하는 일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를 <라 카바 루미아(나쁜 기독교인)>이라 부르는 해안가에 내버려 두고 우리는 출발했습니다. 그대로 에스파냐 해안에 도착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새벽 3시쯤 완전 무장한 프랑스 해적함이 우리 배에 대포를 쏘았고 배가 가라앉게 되어 항복했습니다. 소라이다의 금화 궤짝은 그들 몰래 바다에 던져버렸고,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빼앗긴 후에 에스파냐 땅 근처에서 풀려났습니다.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은 없었지만 살아있고 자유를 되찾았다는 생각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산을 넘고 마을 쪽으로 걸어갔는데, 근처에 있던 목동이 소라이다의 무어인 옷을 보고 아랍인이 마을을 공격하는 줄 알고 소리를 질렀고 소문이 나서 기병대가 출동했습니다.
다행히도 기마병 중 한 명이 제 외삼촌 페드로 데 부스타만테였고, 외삼촌은 죽은 줄 알았던 저를 만나 껴안고 기뻐하셨어요. 우리는 마을의 환대를 받았으며 벨레스 마을에 6일 동안 쉬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각자 자기 갈 길로 떠났고 저는 소라이다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프랑스 해적이 우리를 풀어줄 때 불쌍히 생각해 소라이다에게 준 금화 40에스쿠도(한화 약 960만원)로 그녀가 탈 수 있는 당나귀를 샀습니다. 여러 고생을 참아내는 소라이다의 인내와 기독교인이 되려는 그녀의 신앙심이 저를 감동시켰기 때문에 저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것입니다. 제 고향에 아버지가 살아계신지, 동생들은 잘 살고 있는지, 제가 도착했을 때 정착할 수 있는 땅이 좀 남아있을런지, 만일 아버지도 동생도 다 없다면 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 자유를 찾아 떠나는 통 큰 소라이다도 대단하지만, 약속을 지킨 포로님도 멋지십니다요. 평소 약속을 잘 지키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1권에 나오는 캐릭터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소라이다가 준 7억여 원에 달하는 큰 금액을 사사로이 쓰지 않았고, 영원히 포로였을 자신에게 자유를 준 은혜를 잊지 않았으며, 모든 재물이 다 사라진 소라이다를 지켜주고,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늘 희망을 잃지 않았던 모습, 탈출할 때 동료들도 함께 데리고 나오는 의리, 일을 도모할 때의 치밀함, 뒤이어 나올 남의 호의를 함부로 받지 않는 강인함 등 어느모로보나 매력남이다.
라 카바La Cava는 돈 훌리안 백작의 딸로, 스페인에 아랍인이 들어오는 원인이 된 인물이다. 당시 스페인에 살던 서고트족의 마지막 왕인 로드리고가 이 딸을 능욕하는 바람에 백작이 아랍인들에게 스페인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711년에 스페인에 들어온 아랍인들은 번성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북부에 들어온 무어인들과 스페인 내 기독교인들에게 밀려 1492년 스페인 땅을 떠났다. <라 카바>는 17C이후부터 <플로린다Florinda>로 불린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