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은 과연 수식, 장식에 그치는 걸까?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is a 1799 painting by the French painter Jacques-Louis David, showing a legendary episode following the abduction of the Sabine women by the founding generation of Rome.
(본 글은 법률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법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법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헌법 전문(前文)의 개념
“헌법 책머리에 쓰인 글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요?”
헌법 전문(前文)은 헌법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놓이는 서문(序文) 형식의 조문을 가리킵니다. 그 나라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헌법을 만들었는지, 헌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이념이나 비전은 무엇인지 등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이념적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국가가 헌법 전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은 성문헌법을 마련하고도 전문을 별도로 두지 않았다는 사례가 있죠. 그러나 현대 민주국가들은 대부분 헌법 전문을 두어, 헌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했던 역사적 배경과 국가의 정체성·가치관을 간략히 선언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 때부터 전문을 두었고, 역대 개헌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전문을 수정·보완해 왔습니다. 이러한 헌법 전문은 “법률로서 구속력이 있는가, 단순히 역사나 이념을 적어 놓은 선언적 글에 불과한가”에 대해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체로 헌법 전문도 헌법의 일부로서 일정한 법적 효력이 인정된다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역대 개헌의 발자취 속에서 헌법 전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제헌헌법 이래로 여러 정권 교체와 함께 조금씩 모습을 달리해 왔습니다. 제헌헌법 전문이 3·1독립운동의 가치와 자주국가로서의 재건을 강조했다면, 이후 군사정권기에는 혁명이나 유신 체제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표현이 들어가기도 했지요.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 전문은 시대마다 “이 헌법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을 함께 밝히면서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를 압축해 왔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은 광복 후 우리 민족이 “독립된 법적 주권을 가진 헌법”을 처음 제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습니다. 당시 전문에서는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 수립’을 강조하며, “민족적 단결”, “사회적 폐습 타파”, “민주주의 제도 수립” 등을 밝혔다고 전해집니다.
헌법학자 유진오 박사는 이를 두고 “3·1운동을 통해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함을 분명히 함으로써, 우리의 헌법은 민족 독립정신과 민주정치의 흐름을 함께 안고 간다”고 해설한 바 있습니다. 또한 당시 전문은 우리 헌법이 “자유롭고 정당한 선거로 구성된 국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별히 강조했는데, 이는 헌법 제정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재차 확인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이후 1962년 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헌법 전문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군사정변(5·16)을 헌법 전문에서 ‘혁명’으로 호칭하며 헌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 특징입니다.
1972년 유신체제(제4공화국)는 전문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문구를 추가하여, 당시 정부가 강조하던 강력한 국가권력 집중과 ‘평화통일’ 논리를 동반하는 구도를 마련했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 뒤 제5공화국은 1980년 헌법개정을 통해 전문에 ‘제5공화국의 출발을 알린다’라는 표현을 넣으며 유신체제와 구분지으려 했으나, 실제로는 군부 주도의 정권이었기에 그 내용 역시 민주시민들이 기대했던 ‘자유민주 헌법’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현행헌법(1987년 개정)은 4·19혁명과 6월 항쟁의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민주화 헌법으로 평가받습니다. 전문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명시하고,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구체적으로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과거 군사 정권 시기의 전문에서 언급되던 5·16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삭제하고, 대신 “저항권의 역사적 정당성”을 시사하는 문구를 넣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 결정례에 따르면, ‘4·19민주이념 계승’은 국민이 위헌적 권력에 저항하는 권리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또한 북한과의 통일 문제를 놓고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힘으로써 한반도의 정통성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갖추려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헌법 서문(전문)은 어떻게 쓰여 있을까요?”
미국 헌법은 1787년에 제정되어 200년 넘게 유지되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오래된 ‘현행 성문헌법’으로 꼽힙니다. 그 전문은 아주 짤막하지만, “우리들 미합중국 국민은 더욱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정의를 세우며…”라는 식으로 “헌법 제정의 주체가 ‘국민’임을 확실히 선언”합니다. 우리 헌법 전문이 국민이 헌법의 창시자라는 취지를 강조하는 구절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미국 헌법의 영향이 엿보인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프랑스 헌법 역시 전문이 “인권선언(1789)과 1946년 헌법 전문”을 잇고 있다는 것을 짧은 문구로 밝히며, “공화국은 평등·자유·박애의 이념에 기초한다”는 식의 상징적 언급을 담고 있습니다. 해외영토에 대한 민주원칙 적용도 간단히 언급하죠. 우리 헌법이 “국민 개개인의 기회 균등과 능력 발휘”를 언급하는 대목과 비슷하게, 프랑스 전문도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독일 기본법은 1949년 제정 이후 수십 차례 개정되어 왔으나, 전문은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딱 한 번만 바뀌었습니다. 통일 이전에는 “민족적·국가적 통일을 지향한다”라는 내용을 담았고, 통일 뒤에는 “독일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사실을 전문에 기록했습니다. 이는 헌법 전문이 해당 국가의 “핵심 목적”과 “역사적 순간”을 담아내는 대표적 예시로 평가됩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새 헌법을 만들면서 전문에 “평화헌법”의 기조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일으키지 않겠다, 인류 보편의 이상과 국제적 신의를 중시하겠다, 이런 구절들이 반복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한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냥 멋있게 써놓은 ‘머릿말’ 정도가 아닐까, 했던 분이라면 주목!”
전통적으로는 헌법 전문이 법률 같은 구체적 규범이 아니라, 헌법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서술하고 정치적 지향점을 드러내는 ‘상징 선언’에 불과하다는 주장(효력부정설)이 꽤 있었습니다. 예컨대 초창기 독일 헌법학자 안쉬츠(G. Anschütz)는 전문을 무규범적 선언문으로 봤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문조차도 헌법전(全文)의 일부이므로, 원칙적으로 헌법과 동등한 규범적 지위를 갖는다고 보는 견해(효력긍정설)가 훨씬 주류입니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결정에서 헌법 전문을 재판규범으로 삼아 구체적인 분쟁을 해결한 사례가 있어, 이미 우리나라 헌법 해석에서도 전문의 ‘법규범성’은 강하게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헌법재판소는 1989년 결정에서 “헌법의 전문과 본문 전반에 흐르는 최고 이념이 국가기관 및 모든 법령해석의 기준이 된다”고 밝히며, 전문이 헌법의 한 부분임을 명쾌하게 선언했습니다(헌재 1989.9.8. 88헌가6). 이후에도 전문이 담고 있는 민주이념이나 임시정부 법통 계승 등을 근거로, 정부의 예우조치나 국민적 저항권의 정당성을 언급하는 판례가 여러 차례 나오며 그 입장을 확고히 해 왔습니다.
“전문은 눈부신 머리말, 본문은 구체적 실천 규범이죠.”
전문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과 헌법정신의 총론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민족의 단결”이나 “조국의 평화적 통일”, “국제평화 기여”, “미래세대의 자유와 행복 보장” 같은 가치들은 전문에서 먼저 선언되고, 이후 본문 각 조항에서 구체화됩니다. 한 예로 전문에서 말하는 ‘평화적 통일’은 헌법 제4조·제66조 등에 반영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정당설립요건(헌법 제8조 제4항) 등에서 구체화됩니다.
전문에서는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고 각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하며,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식으로, 권리만 강조하지 않고 의무도 함께 언급합니다. 민주사회의 이상은 단순히 ‘자유를 누릴 권리’만 보장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기여할 책임’을 함께 요구한다는 점을 헌법이 공식적으로 알리고 있는 셈입니다.
현행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승계한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이 문구가 결국 위법·부당한 권력에 맞서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유력한 해석 중 하나입니다. 저항권이 직접 본문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전문 속에 반(反)독재 역사의 정당성을 녹여 둠으로써 헌법 자체가 저항권을 간접적으로 승인하고 있다는 것이죠.
전문 후반부에는 “항구적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이라는 목표가 제시됩니다. 이는 국내 질서가 안정되려면 결국 국제사회와의 평화가 필수적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본문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주의를 지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하여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헌법 전문도 또 바뀔 수 있을까?”
우리 헌법은 이미 총 9차례 개정되었고, 그중 전면개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전문도 함께 수정되었습니다. 다만 최근 논의되는 헌법 개정안들은 대체로 ‘원포인트 개헌’(예: 대통령 임기나 선거제도 관련)에 초점을 두어, 전문 수정 문제는 크게 주목받지 않고 있습니다.
헌법 전문 개정에는 장점도 있을 수 있지만, 헌법정신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잦은 변경을 지양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습니다. 이미 현행헌법 전문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승”과 “4·19 민주이념”을 밝혔고, “국민주권”과 “평화적 통일” 같은 주요한 가치를 거의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새로운 전문을 도입할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물론 미래 정치 상황이나 통일 과정에서 의미 있는 헌법 전문의 추가나 수정을 논의할 여지는 열려 있습니다.
“헌법 전문은 관념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의 가치와 방향’을 요약한 최상위 규범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단순히 미사여구를 나열해 둔 글이 아니라, 역사적·정치적·사회적 배경을 종합해 헌법의 지향점을 압축해 놓은 핵심 선언입니다.
과거 ‘전문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헌법재판소가 “전문도 헌법규범의 일부이며, 국가기관과 국민 모두가 존중해야 하는 최고 가치규범”이라고 밝혔기에 오늘날 이를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에서 천명한 민주주의, 저항권, 민족단결, 인류공영 등은 본문 속 구체적 권리·의무와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우리 헌법에 생동력을 부여합니다.
분단과 전쟁, 군사정변과 독재, 민주항쟁과 광장 민주주의 등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겪어 온 한국 사회에서, 헌법 전문은 그 굴곡진 역사를 집약하면서도 미래의 방향타 역할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전문을 보완할 논의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 그리고 “4·19 민주이념”을 함께 안고 있는 이 전문이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기준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본 글은 [헌법 주석서(법제처 연구용역), 한국헌법학회, 헌법 전문]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법률 해석과 적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법률 자문을 대체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법률문제는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