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전쯤 뇌출혈로 아빠를 잃을 뻔했다.
그때 이후로 우리 집에는 제사도 지내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시원 섭섭했을 것이다.
종갓집에 시집을 왔지만 딸만 둘 낳아 미안한 맘이 늘 있었다.
엄마는 시집와 40년 넘게 최선을 다했고 어차피 우리는 딸만 있어 대가 끊겼으니 제사를 엄마로 마무리하게 돼서 미안함을 식구들에게 전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는 거의 이십 년은 혼자 제사 음식을 하시고 수많은 손님을 치르셨다.
어릴 적 방 두 개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 작은 아파트에 25명쯤 잔적도 있었다.
사촌언니 함을 이모네 집이 멀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우리 집에 이모부 이모 삼촌 외숙모, 할머니.. 주방 싱크대 앞까지 이불을 펴고 잤던 기억도 있다.
명절마다 작은집 식구들이랑 작은방에 옹기종기 잤던 기억도 있다.
나도 동생도 시집가고 삼촌들이 장가들을 가시고 식구들이 더 많아져서는 명절 아침에 오시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아프시기 전에는 늘 친정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는데 아빠 아프시고는 엄마 힘드실까 잠깐씩만 들려 인사만 하고 가신다.
엄마는 내게 시댁에 못 갔으니 아이들 데리고 와서 간단히 토란국이랑 불고기 볶아 둘 테니 아침을 함께 먹자 했다.
전날 부쳐둔 전을 갖고 가니 조금은 명절 느낌은 났다.
난 사실 토란국 안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남긴 토란국까지
다 먹어치웠다. 시집가서 제사상을 직접 차려보니 마음을 활짝 열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이전처럼 명절 전날 친정집에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도 북적북적함도 없겠지만 엄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쓸쓸한 그늘에 있어도 양지를 볼 것이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양지가 되어 주어야 할 때인가 보다.
일러스트/그림접시/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