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차/그가 보이지 않는다

by 집녀

‘사라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던 그가 나흘째 보이지 않는다.

첫째 날은 ‘시간이 안 맞았나?’ 생각했다.

둘째 날 안보였을 때는 ‘아예 다른 시간으로 옮겼나?’ 생각했다.

셋째 날 보이지 않았을 때는 ‘얘가 어디 아픈가?’했다.

오늘까지 안보이자 심지어 ‘나랑 자주 마주치니까 싫어서 피하나?’라는 자책까지 하게 됐다.


산책남은 나의 걷기 운동 의지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백 번 ‘건강을 위해서, 삶의 변화를 위해서’ 외치며 자신을 다독이는 것보다

'산책남 얼굴 한번 보기'가 훨씬 나았다.


그런데 그가 사라졌다.

이것은 큰일이다.


삶의 낙이 사라진 것이다.


후회했다.

앞으로 영영 못 보는 것 아닌가 걱정도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는 건데, 차이더라도 한번 시도라도 해보는 건데.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미련을 남기는 어리석은 짓을 또 하고 말았다.


‘왜 안 나오는 걸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산책남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일까?'


설득력 있다. 지금 너도나도 한국행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바에는 한국에 짐 싸들고 가는 분위기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를 두고...나를 이 험지에 두고... 혼자 살겠다고 한국으로 가다니... '


서러움에 이어 배신감까지 느꼈다.


‘나를 진정 사랑했다면 한국에 같이 가자고 했을 건데.

나한테 건강 조심하라고 말이라도 했을 건데!’


상상력이 과해지고 있다.

그런 내가 이젠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산책남은 중요하고 결정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고마운 존재였다.

한 달 넘게 걷기 운동을 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그니까.


또다시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팔을 휘저으며 걷던 용맹도 지금은 사라졌다.

안 한 듯 꼼꼼하게 신경 써서 했던 화장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했던 그 수많은 행동들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나는 결국 그렇게 매력적인 여자는 아니었나’


자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매력적이고 관심이 있었다면 계속 마주친 내게 말 한마디라도 걸지 않았을까.

나를 의미 없는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렇게 홀연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을까.


이 상사병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상사병도 병이다!'


미국에서 아프면 답도 없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