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빠짐없이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날씨가 나쁘지 않은 이상 빼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열심인 데에는 지금은 사라진 ‘산책남’이란 존재와 ‘걷기 운동의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만큼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집에 있기 싫어서’이다.
집에 있기 싫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상한’ 룸메이트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하숙 생활을 했다.
성격이 까탈스러운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었다.
그래서 미국에 왔을 때 다른 사람과 같은 집을 쓴다는 것에 부담이 없었다. 기대했다.
‘이상한’ 룸메이트 때문이다.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이후에 운동과 생필품 쇼핑을 위한 외출 말고는 자택격리 수준이다.
그 생활을 한 달 넘게 하고 있다. 바깥에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다면 집에 같이 사는 사람과 접촉할 일이 적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상황이 됐다.
룸메이트가 누구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룸메이트라고 해서 방을 같이 쓰는 것은 아니다. 집을 같이 쓰는 것이지 방은 각기 쓴다.
그런데도 그렇게 영향을 받을 게 있냐고?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그 룸메이트를 단연코 ‘**여자’라고 규정했다.
합리적인 규정이다. 표현을 순화해 이상하다고 말해 두겠다.
지인들에게 옆방 룸메이트에 대해 말하며 의견을 물었다.
합리적인 분석과 주위 사람들의 동의에 힘입어 나는 ‘**여자’와 같이 살고 있는 가엾은 사람으로 위로받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규정한 것은 그녀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세탁기를 4번 연속 돌리는 사람을 처음 봤다. 어디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다. 밀린 세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2일 정도 빨래를 하는데 어떨 때는 하루에 4번까지 빨래하는 것을 봤다.(아니 들었다)
세탁기를 돌리는 게 나의 삶과 어떤 연관성이 있냐고 되묻는다면 치명적인 관계가 있다며 울부짖는다.(하소연하고 싶어 미치겠다).
내 방은 차고 바로 윗 방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세탁기를 차고에 두고 있다.
성냥갑을 쌓아 올린 것처럼 허술하게 지은 집에서 소음 차단은 기대하기 어렵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하루 종일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소음 고문이다.
이상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 횟수다.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세탁 횟수다.
나중에서야 세탁기를 많이 돌리는 이유를 알았다.
옷가지를 2-3개, 혹은 4-5개씩을 돌리고 있었다.
색깔별로 소재별로 아주 세밀하게 나눠서 돌리다 보니 세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살고 자기 세탁기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같이 사는 집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그게 이른 아침 늦은 저녁도 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세탁기 소리에 환장을 넘어 환청까지 들리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남을 바꿀 수도 없고 싸울 생각도 없으면 피하자.
그래서 오늘도 걷기에 나선다.
집안에 있으면 미친년이 될 것 같아서.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