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일인가 싶었다.
손가락을 내쪽으로 향하며 가르치며 재차 물었다. 내가 맞냐고. 맞단다. 근데 나를 왜?
말을 건 사람은 남자였다. 공원 입구 의자에 삐딱하게 걸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게 파마를 하고 바지는 엉덩이 반쯤 걸쳐 있다. 귀걸이에다 코와 입술에는 피어싱까지 했다. 한 발은 스케이드 보드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건방진 포즈로 말을 건 것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처럼 보다니... 제대로 본 거지만... 조금은 할 줄 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의, 아니 그 애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오 마이 가쉬! 이건 뭐지?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지?
오 마이 가쉬! 이것이 흔히 말하는 캣 콜링(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에게 성적인 말로 괴롭히는 것)인가? 그러기엔 너무 귀엽잖아!!!
오 마이 가쉬! 이렇게 쿨하다니!
없던 남자 친구까지 만들어 즉각적인 방어에 나선 것은 남자아이의 외모가 컸다. 나와는 다른 부류의 아이. 그 아이가 조금 단정했거나(적어도 바지가 허리에는 걸쳐 있어야), 조금은 덜 무서웠거나(입술 피어싱은 공포다), 조금 지적으로 보였거나(스케이드 보드가 아니라 노트북이었다면), 나이가 좀 많았거나(갓 고등학교 졸업한 듯이 보이는 애랑 사귀는 것은 범죄 아닌가) 했다면 어쩌면 여지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도망치듯 걸음을 재촉했다. 얼굴은 빨개졌다. 이미 걷기로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는데 부끄럼까지 더해졌다. 부끄러운 것은 거절당한 그 아이 쪽이어야 하는데 상황은 반대다. 걔는 당당했고 나는 부끄러웠다. 이것이 바로 대륙의 연애 법인가? 아님 그냥 막 던지는 그야말로 캣 콜링인 것인가? 남자의 관심, 좋아라 해야 할지 기분 나빠라 해야 할지 감이 안 섰다.
나이 마흔 넘어서 귀엽다는 말을 듣다니. 그것도 한참 어려 보이는.. 아마 20대 초반? 아이에게 말이다. 친구에게 이 상황을 자랑하듯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실망이다. 왜?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은 내게 말을 안 건다는 뜻인가?
귀여운 아이의 대시에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 말 거는 사람이 다름 아닌 산책 남이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