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되어서도 난 10대 때와 엇비슷하게 소심했고 남의 눈치보기를 잘하는 청년이었다. 사람 쉽게 안 바뀌니까.
혼자만의 공간에선 자유롭게 활보하며 거리를 다니는 무법자 같았지만 여럿이 모인 장소에선 뜨내기에 지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연극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기회였고 특별한 인연이 닿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학 졸업 작품으로 공연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 내 인생에 연극판이 들어오게 되다니 남 일인 줄만 알았고 대단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했었다. 문예창작과 졸업생이지만 시나리오 수업 중에 연극이 있었고 담당교수님과 함께 하는 수업 중이었다. 나의 연기를 보시며 무심하게 툭 던진 한마디가 내 심장을 움켜잡았던 거다.
네 성격 확 깨부숴 줄게!
가뭄에 단비처럼 난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끌려갔다.
난 그 당시 대학 졸업과 함께 회사에 최종면접까지 올라갈 기회를 얻은 상태였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출근할 일만 남은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연극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깨부수다 못해 확 뜯어버리고 싶었던 내 구석을 대신해 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스물셋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맞다,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하려면 자신의 만족 보다도 내가 소속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허락받아야 비로소 마음이 편했다. 말은 번지르르 독립적 인간상을 그려내면서 정작 가슴 밑바닥은 이런 생각들로 똘똘 뭉쳐 있었다. 기저에는 "미움받을 용기의 부재"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이 비난을 한다고 해서 내가 선택한 것을 되돌릴 것도 아니면서 되지도 않는 욕심을 부렸다. 허락받을만한 일에 그런 생각도 해야 하는 것인데 난 늘 내 인생의 한 부분조차 타인에게 저당 잡힌 듯, 주객이 전도가 된 듯 서글프게 살았다.
내가 없던 내 삶을 깔끔하게 되찾아 준 것이 연극이었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 것을 각인시켜 준 것 또한 연극이었다. 나는 , 스물넷의 나로 거슬러 올라가 담담하게 그때의 나를 떠올렸나 봤다. 똘똘 뭉쳤던 우리들도 떠올렸다. 이젠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는 사람들이 됐을 정도로 소원한 사이가 됐지만 그때의 우리들은 청춘 낭만을 몸에 두르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