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중학생이라 공부시키려고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세계단편 소설을 읽은 게 아니다. 소설이 뭔지 이제 막 배우려고 하는 시기에 교사들이 고민고민해 뽑은 중학생을 위한 단편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이해하는 내 수준이 기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학생이 되어야 했다. 중학생 수준으로 내려가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만큼 쉽고, 그만큼 좋은 글일 테니 믿고 읽어도 된다고 신뢰해서이다. 또 짧은 글 뒤에 생각해 볼 질문을 뽑아 놓아서이다. 그 생각할 거리를 들여다보면 큰 틀에서 소설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괜찮다. 내 수준이 지금 딱 그만큼 되어도 이렇게 좋은 단편을 만날 수 있다니 반갑다. 지금이라도 배울 수 있어 다행이다. 영영 읽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제3의 강둑>을 몇 번 읽고 나서 <열린 유리문>, <내기>, <음악가 야넥>, <정부의 친구>, <군인>, <조우>, <복도에서 마신 한 잔>, <아버지의 결혼 승낙>까지 쭉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가장 충격적 반전을 준 건 <열린 유리문>이다. 진지한 나를 웃게 했다. 위트 있는 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음악가 야넥은 아무도 야넥의 재능을 꽃피워주지 않았기에 가슴 아팠고, 정부의 폭력과 전쟁이 가져오는 인간의 슬픔, 나와 인연을 맺게 된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 인종차별과 세대차이(전통과 시대변화) 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특히 제3의 강둑은 여러 번 읽었다. 나와 아버지의 관계,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가치관, 죽음,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인간관계 등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너무 늦기 전에 가장 현실적인 눈으로 아버지를 이해해 보라고 내 마음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