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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이제는 대충 시작합시다.

완벽함 대신 아쉽지 않게.

by 미세스 윤 Mar 25. 2025

연초만 되면 "올해는 꼭 뭔가를 해내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뭔가"는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거나, 재테크에 성공해 목표 금액을 달성하거나,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스타트를 잘 끊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한 해의 시작이 한참 지나도록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특히 목표가 막연하고 원대할수록 강박도 크다.



생각이 필요 없는 비교적 단순한 일, 예를 들면 운동이나 독서는 그냥 한다.

하루 30분 걷기, 책 2장 읽기 같은 것은 그럭저럭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일, 

예를 들면 글쓰기나 어떤 분야의 숙련가가 되기 같은 장기 프로젝트는 시작조차 막막하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발이 묶인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겨우 작은 결과물이 나오다 보니 

제대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작할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하다 보면 피드백도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쉽게 지쳐버린다.

결국 매일 반복되는 단순 업무만 처리하며, 정말 이루고 싶은 일들은 계속 미루게 된다.



Unsplash의 annie-sprattUnsplash의 annie-spratt



단순한 일과 하고 싶은 일


물론, 단순한 일만 하고 살아도 된다. 하지만 단순한 일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본업은 주부다. 직장인들보다는 여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티가 나지 않고 돈으로 환산되지 않으니 성취감이 적다.



아침부터 일을 시작한다.

아침밥을 만들고, 아이 셋을 등원시키고,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아무리 치워도 그대로인 장난감을 줍고, 집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물에 담가둔 설거지를 하고, 물티슈로 여기저기 닦고, 장 본 물건을 정리하고, 다섯 식구의 빨래를 돌린다.

짬을 내서 전날과 겹치지 않도록 밑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개고, 간단히 화장실 청소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러니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도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지만 정작 내 자신은 없는 것 같아 답답해진다.

뭔가 좀 더 나은 걸 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어려워도, 부담스러워도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지금 조금이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조금"이라는 말조차 부담스럽지만, 

완벽한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아예 시작도 못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시간을 할당하는 것이다.

딸이 다니는 줄넘기 학원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24시간 중 가장 행복한 1시간"

나는 나에게 그런 시간을 잠깐이라도 부여하고 있는가? (유튜브 보는 시간 말고)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일단 시간을 비워둔다.

그리고 막상 시간이 주어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뭐라도 하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는 어설픈 결과물이라도 내보는 것이다.

결과물이 훌륭한 작품일 필요는 없다.

그냥 분량으로 목표를 설정한다.

영어책 2장 읽기(완벽히 이해할 필요 없음), 글 한 장 쓰기(잘 쓸 필요 없음) 같은 식으로.

아름다운 첫 문장이 아니라, 그냥 아무 문장이나 적는다.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냥 낙서를 한다.



정리하려 하지도 않고, 중구난방으로 그냥 펼쳐 놓는다.

결과가 엉성하든, 방향이 틀어졌든, 중간에 멈추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작은 배움을 준다.



Unsplash의 lucie-doueziUnsplash의 lucie-douezi



아무리 큰 목표라도 가볍게 시작하기


그래서 효과가 있었냐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적어도 저명한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40대에 더듬더듬 영어 공부를 해봐야 마스터가 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묘하게 좌절스럽다.

(최근 한 지인에게 나이가 많아질수록 뇌의 신경 가소성이 감소하고, 기존 언어 체계가 굳어져 새로운 언어 습득이 훨씬 더디다는 말도 들었다.)



어설픈 결과물은 그냥 어설플 뿐이다.

어떤 보상도 확신도 없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냥 계속하게 된다.



그나마 괜찮은 건 나는 처음부터 잘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거창한 목표를 떠올린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커다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꿈이란, 단순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하루 중 나만의 한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허락하는 것.

어쩌면 꿈은 그저 내가 나아가는 방향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작은 만족감.



이것은 본업이 아닌 꿈의 영역이기에 막연하지만, 오히려 부담이 없다.

힘을 빼고 하는 일이 더 자연스럽고 효율적일 수도 있다.

완성도에 집착하지 않고(어차피 완성의 영역은 너무나 멀다),

적어도 "내가 뭘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 보려고 한다.



시작이 남기는 것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해봤나'에 초점을 두려 한다.

대단한 명작을 만들어내거나 영어 마스터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글 1,000개를 완성한 사람, 영어책 100권을 읽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완벽함이 아니라, 계속해온 시간 자체가 나를 증명해 줄 것이다.



꿈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만족 아닐까?

가볍게, 대충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영역이 아닌 ‘뭔가’가 남는다.

그 ‘뭔가’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이미 내 통제 밖의 영역이다.

적어도 내 마음이 만족스럽다면, 미련은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미약한 시작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단일한 성공이나 실패보다, 꾸준함은 절대적인 기록으로 남는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최선을 다해 시도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의 작은 시작과 지속이, 

지금보다는 좀 더 꿈에 가까운 방향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Unsplash의 jan-huberUnsplash의 jan-h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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