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한 때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독학한 적도 있을 만큼 말이다. 뭐 다 지나간 옛날이야기지만.
흔히들 말하는 이 종합예술은 사람이 1시간 이상 (물론 단편 영화라면 조금 짧을 수도 있지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흡입력과 강제력이 있는 ‘아름다운 영상과 소리 그리고 감정의 모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학도라면 익히 들었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Antoine & Louis Lumiere)는 1895년 녹화와 영사가 가능한 카메라를 발명하여 '영화(Cinema)'라는 것을 처음 만들었다. 프랑스어인 시네마(Cinema)는 영어로 'motion picture' 즉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단어 뜻에 꼭 맞는 수많은 '움직이는 그림들'을 선보인 뤼미에르 형제. 1896년 50초 남짓의 '기차 도착(L’arrivee d’un train a la ciotat)' 단편영화를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였을 때 극장에 모인 일부 사람들은 그 전에는 본 적 없는 생생한 기차의 움직임을 마치 진짜 기차로 오해하여 영화관을 뛰쳐나갔을 정도로 당시에는 꽤나 신기하고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형제는 ‘영화란 미래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부질없는 것’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놓았고, 결국 말년엔 영화 작업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21세기. 100년이 넘게 흐른 현재. 뤼미에르 형제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예술 장르가 되었다. 나 역시 영화의 영향력을 굉장히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다.
내가 영화를 처음 본 날은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이었던 거 같은데, 당시는 영화관 포스터도 일일이 유화로 그려 간판을 세우던 그런 때였다. 어렴풋이나마 남은 기억을 뒤져보니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사랑과 영혼(Ghost)'이란 영화를 본 것이 내 생애 첫 영화 관람인 것 같다. 지금도 회자되는 데미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의 도자기 물레 장면 그리고 oh my love, my darling으로 시작하는 Unchained Melody가 배경음악으로 퍼치는 그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예닐곱이었던 아동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 남자 주인공이 사고로 죽고 영혼이 되어 사랑했던 여자 곁에 머문다는 - 그리고 좀 징그러운 이야기였지만 '사랑과 영혼'은 무수한 명장면과 Unchained Melody라는 발표 당시 빛을 발하지 못했던 60년대 블루스 곡을 남긴, 그리고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명작이다.
내 인생 첫 영화관 체험 이후, 나는 꽤나 진중한 시네키드(Cine Kid)가 되었고, 토요일 밤마다 심의규정을 어기면서 MBC '주말의 명화'의 애청자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토요일 밤마다 거실 텔레비전을 독차지하고, 최대한 영화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들도 한국말을 한다(더빙)는 착각을 하며, 줄거리 이해도 못하는 주제에 주말의 명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청하는 애송이 시절을 보냈다.
아트시네마, 혼자만의 소풍
엄마한테 ‘제발 좀 방에 들어가서 자라’는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며 '주말의 명화'로 영화관을 대신하다가, 영화관 정도는 보호자의 동행 없이 혼자 입장할 수 있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1 때부터 ‘시나리오 작가든 뭐든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그때부터 용돈을 모아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았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도착하는 혜화동의 하이퍼텍 나다, 그리고 명동성당 근처에 있던 중앙시네마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아끼는 곳이자 비밀 소풍 장소였다.
중앙시네마 (출처: 서울문화신문)
나는 이 두 곳에서 그때는 분명히 덜 익은 머리통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덴마크 실험예술 영화의 거장인 라스 본 트리에(Lars von Trier)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와 연애 소설가 같은 일본의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의 1990년대 초기작인 피크닉(Picnic)처럼 난해한 영화들을 보곤 했다.
억지로 가야 했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권리를 학습과 시험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은 채, ‘이 문학작품에서 느낌 A를 느끼는 것이 정답이며, 작가의 숨은 의도는 B다’라고 주입했던 때라, 그들의 간섭 없이 짧게는 80분 길게는 2시간 동안 온전히 은막에 펼쳐진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이미지 그리고 귓속의 고동을 자극하는 소리와 음악에 집중할 때면 마치 내가 그 영화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게 영화관이란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암전 몇 초 동안의 기대감, 은막 속에 펼쳐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 영화 종료 후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남는 여운을 선물로 남기는 그런 곳이었다.
영화를 다 본 후 집으로 갈 때까지 이어지는 여운, 그 여운의 시간을 일부러 길게 늘이기 위해 집 근처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곤 했다. 괜시리 여운과 이별하기 아쉽고 슬퍼서.
아트 시네마들은 우선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았다. 상영관도 1-2관 정도로 작은 규모의 극장들이 많아서 오락의 목적보다는 특정 영화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모인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동지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워낙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영화 내내 말 시키는 같이 온 사람이 없어서 더더욱 좋았다.
이런 아트 시네마를 방문하는 즐거움은 유학생일 때도 포기하지 못한 사치였다. 노리치에서는 Cinema City 브뤼셀에서는 CINEMATEK.
난 이 두 도시에 살면서 매년 1월, 10만 원에 가까운 1년 치 회원권(매월 2회 관람 가능)을 끊었고, 그렇게 2주에 한 번씩은 꼭 들러 듣보잡 영화를 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곤 했다. 가끔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도 이 두 곳에서 몇 주간 상영하곤 했다. 특히, Cinema City에서 본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나 같은 유학생에게 주었던 위로란 말로 할 수 없는 정도의 희한한 감격이었다. 한국이었으면 절대로 예술영화관에서 상영될 리 없는 경쾌하고 전개가 빠른 이 오락물은 단조로운 생활로 자극이 없었던 어린 대학생에게 그냥 큰 위로가 되었다. 한글을 보고 한국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때 그 당시에 굉장히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Cinema City Norwich (출처: Playhouse)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은 신분증 검사 없이 진토닉과 와인을 눈치 보지 않고 주문해서 마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슈퍼마켓에서 술을 구입하거나 바에서 맥주 한잔을 시켜도 마치 ‘너는 내가 말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이 어린 동양인아’와 같은 모습으로 신분증을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치 술주문자체가 죄짓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트 시네마에서는 내게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며 성가시게 구는 사람들이 없었다. 칵테일 또는 레드와인을 얇디얇은 플라스틱 컵에 들고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지정석이 아니기에) 영화를 보곤 했다. 오후 3-4시쯤 영화관을 가면 나 혼자 영화를 볼 때도 있었다. 그렇게 아트시네마 회원권으로 엄청난 호사와 낭만을 누리며 지냈던 날들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곤 하다.
요코와의 만남
해가 밤 10시나 돼서야 어둑어둑 지던 2008년의 뜨거운 어떤 여름날, 아르바이트를 쉬었던 그 날, Cinema City에서 1도 이해하지 못한 초 난해한 스웨덴 영화를 보고 집으로 터덜 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HMV 70% 할인 광고’- HMV는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 핫트랙스와 같은 영국의 대형 레코드 및 DVD 판매점 - 를보고 숍에 들어갔다. DVD 코너에 가니 아시아 영화 DVD 케이스가 마치 선택받지 못한 부랑아처럼 좌판에 널브러진 채 1-2파운드 내외로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 눈에 들어온 가장 하얗고 투명한 커버, ‘카페 뤼미에르(Café Lumière (珈琲時光))’를 발견했다.
전혀 무슨 내용인지 감도 없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DVD 커버, 굳이 이유를 하나 대자면 내가 중학교 때 퍽이나 좋아했던 아사노 타다노부(일본 남자 영화배우)의 이름이 있어서, 그래서 얼른 집어 들었다.
그 날 따라 해도 빨리 져물지 않아서 심히 피곤한 날이었는데, 잠도 안 오고 침대에 누워서 억지로 잠을 청해 보아도 머리맡 창가에 내리쬐는 어설픈 햇살이 심술 맞은 훼방을 놓았다. 결국 그다음 날 개봉하려고 했던 카페 뤼미에르 DVD 비닐 껍데기를 뜯어 노트북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이 2003년에 만든 카페 뤼미에르(빛의 내리쬐는 카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 제목)는 소시민들의 삶을 평화롭게 풀어낸 영상미학의 거장 ‘오스 야스지로 감독에게 헌사한다’는 문구로 시작하며, 요코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대만에서 돌아온 이 여성은 도쿄에서 혼자 살며 집주인 아주머니한테 대만의 명물인 파인애플 케이크(케이키)를 선물하고, 튀김도 먹고, 짐보초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며, 여가시간에는 트레인스포터(Trainspotter)로 활동 중인 남사친 하지메를 만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극히 단조로운 이야기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롱테이크로 요코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마치 훔쳐보는 듯한 앵글로. 나는 한 번도 이렇게까지 지루한 영화를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차마 중간에 중지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유유자적 흘러가는 영화의 흐름을 끊으면 왠지 엄청난 실례일 것 같아서. 기승전결 없이 ‘기’만 있는 이 영화가 내게 남긴 신기한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영화를 다 보고 눈을 감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른 시상처럼, 굉장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 한 편을 마음 깊이 감상한 듯한 위안을 느꼈다.
그 이후로도, 이 영화는 내가 마치 음악처럼 틀어 놓는 배경 영화가 되었고, 나는 매년 여름이 되면 약속한 의식처럼 카페 뤼미에르를 보곤 했다. 한 편의 시와 같은 평화로운 카페 뤼미에르의 리듬과 박자에 내 두 눈과 정신을 집중하면 내가 억제했던 외로움의 고름이 터지지 않고 슬며시 아무는 듯한 느낌이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영화, 카페 뤼미에르. 8월 도쿄, 그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흰색 남방을 걸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요코의 자그마한 몸짓과 그녀의 움직임을 긴 호흡으로 조심스럽게 담은 이 영화는 바쁘고 혼잡한 대도시, 도쿄의 모습과 묘하게 대비되면서,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지만 그 바쁨 속에도 주관을 잃지 않고 각자의 리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영화 카페 뤼미에르의 한 장면
요코는 자주 가는 카페에서 따뜻한 블랙커피(코히)를 마시곤 하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요코를 훔쳐보며 무더운 8월의 도쿄를 상상한 채 어설픈 톰 콜린스(Tom Collins)를 제조해 마시곤 했다.
톰 콜린스 (Tom Collins)
내가 마신 최초의 칵테일, ‘진토닉’과 뭔가 비슷한데 새로운 칵테일을 찾고 있었을 때, 이름은 ‘톰,’ 성은 ‘콜린스'이란 녀석을 알게 되었다. 이 칵테일은 길쭉하고 마른 ‘콜린스 (Collins)’ 잔에 진, 레몬즙, 시럽, 그리고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술로 진토닉이랑 매우 흡사하지만 맛은 조금 덜 진한 대신 비주얼은 훌륭하다. 우선 가니쉬부터가 레몬 웨지와 마라스키노(Maraschino) 체리이다.
톰 콜린스 (출처: Liquor.com)
톰 콜린스는 1860년 런던의 한 레스토랑에서 베테랑 웨이터로 오랫동안 일하던 존 콜린스(John Collins)라는 자가 처음으로 만든 칵테일인데, 16년 뒤 뉴욕에서 ‘존’이 ‘톰’으로 개명하는 엉뚱한 사건이 있었다.
1874년 뉴욕에서 유행하던 조크(Joke)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톰 콜린스’였던 것. 호사가들은 술집 근처 또는 비즈니스 클럽에서 “톰 콜린스 봤어? 글쎄 그 사람이 그렇게 이상 하대.”라는 소문을 퍼트리다가, 이 말이 돌고 돌아 결국 톰 콜린스라는 상상 속의 인물이 실제로 있는 사람인 것처럼 오해가 생겼고, 실제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름은 톰이요 성은 콜린스인 사내’를 찾기 위해 칵테일 이름이 존에서 톰으로 바뀌었다.
이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바로잡기 위해 1876년 The Bartenders’ Guide라는 칵테일 레시피북을 집필한 미국의 혼합주 전문가(Mixologist) 제리 토마스(Jerry Tomas)가 톰 콜린스가 아닌 존 콜린스, 즉 원래 칵테일 이름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레시피를 소개했다. 결국 제리의 희망사항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않았고, 존 콜린스가 아닌 ‘톰 콜린스’로 칵테일 이름이 영구히 개명되었지만 말이다.
톰 콜린스가 영화 카페 뤼미에르랑 잘 어울리는 이유는 내가 자주 보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지만 뭔가 색달라서 집중할 수 있고, 영화와 헤어진 후에도 자꾸 보고 싶은 것처럼, 첫 찬의 청량감, 끝 맛의 달콤함과 상콤함때문에 한 잔으로는 꽤 아쉽기 때문이다. 상당히 유혹적인 톰 콜린스의 자태와 맛은 조금은 단조롭지만 진중한 영화, 카페 뤼미에르의 분위기와 어색할 것 같지만 묘하게 잘 어울린다.
톰 콜린스 제조 시 사용되는 진(Gin)은 대부분 비프이터(Beefeater)나 고든(Gordon)처럼 슈퍼마켓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진이다. 어차피 레몬즙과 시럽에 의해 진의 떫은맛이 어느 정도 중화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술집에서도 이 두 가지 진을 사용한다. 나도 집에서 톰 콜린스를 만들 때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진을 잘 쓰지 않았다, 코마사 진(Komasa Gin)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케 같은 느낌의 코마사 진은 규수 가고시마현의 가쿠라지마의 특산품인 귤을 주재료로 만들었다. 이 진은 비프이터나 고든보다는 2배 정도 비싸지만, 거의 사케나 소주처럼 스트레이트로 마실 수 있는 정도로 부드럽고 은은한 귤향이 입안에 오랫동안 감도는 진이다.
인도네시아는 내가 살았던/살고있는 나라 가운데 구매할 수 있는 주종과 선택폭이 가장 적은 나라다. 핸드릭스, 고든처럼 고루하고 흔한 진들만 쟁여놓다가, 회사 근처 와인을 파는 VIN+(레스토랑 겸 주류 상점)에서 이 진을 발견했다. 멀리서 봐도 비쌀 것 같은 이 진은 할인 가격도 100만 루피아(8-9만 원) 정도라 조금 머뭇거리긴 했지만, 보이는 날 사지 않았다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서 샀다. 기대했던 것보다 특별한 맛은 아니라서 조금 실망했지만, 톰 콜린스를 한번 제조해보고는 '이 맛이야!'라고 쾌재를 불렀다. 귤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탄산수와 잘 어울리고, 그렇기에 톰 콜린스에 제격인 진인 것 같다.
톰 콜린스(Tom Collins) 레시피
톰 콜린스
50ml 코마사 진
20ml 레몬즙
10ml 시럽
70-80ml 탄산수 (페리에)
진, 레몬즙, 시럽과 얼음을 쉐이커에 넣고 30번 정도 흔든 후 얼음을 채운 콜린스 잔에 붓는다.
페리에 탄산수로 잔을 채운 후, 마라스키노 체리와 레몬 웨지로 장식한다.
나는 지금 365일이 여름인 자카르타에 살고 있어서 예전처럼 카페 뤼미에르를 자주 보지 않는다. 짧았던 여름에 보려고 아껴두었던 영화였기에. 하지만 이 영화가 내가 남긴 여운은 1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나는 톰 콜린스를 마실 때마다 요코의 작은 움직임, 그리고 전차와 지하철의 뒤엉킴에서 각자의 삶을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곧 ‘도쿄’라고 말하고 있는 명작 ‘카페 뤼미에르’를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