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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Jul 21. 2023

연쇄적 생각이 타고난 체질

쉴 새 없는 상상력에 내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자꾸만 생각을 한다. 그래서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은 나에게 있어 감당할 수 없는 사치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나는 괴롭다. 잠을 못 자서, 그런데, 잠을 못 자는 시간에 쉴 새 없이 생각할 수 있어서 그래서 위안을 삼고 오히려 어떨 때는 생각의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을 할 정도니,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하다.

엊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1초도 남김없이 생각했고, 내일도 그렇게 촘촘히 생각할 것 같다.


로맨스 영화는 오글거려서 잘 보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좋아했던 몇 안 되는 영화가 '냉정과 열정사이 (2001년)'다. 그 영화에서 어정쩡한 애정관계를 맺고 있는 준세와 메미짱, 애정의 결핍 그 꼭대기에 와버린 매미에게 준세가 매몰차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오이야. 그래서 앞으로도 줄곧 아오이만을 생각할 거야.'


이 말은 마치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들어가는 그 열정의 양과 무게가 얼마나 심오한지 그래서 얼마나 이 말을 듣는 어떤 상대방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비정한지를 말해준다. 나는 누구 한 명 만을 줄곧 생각할만한 열정은 감히 품을 수 없는 정도로 가벼운 인간이기에 준세의 위엄을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에게 다양한 감정을 선사해 준 어느 한 사람을 연쇄적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싫지만 그 순간이 좋아 그 생각의 행위를 포기할 수 없다. 아침에 택시를 타면서 적도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보아도, 미친 듯 막히는 자카르타의 교통 체증이 차라리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냥 그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싶어서. 그래서 너무 피곤한데, 나를 피곤하게 학대하는 이 방식에 중독되어 더 이상 구원의 손길을 찾을 수 없다.


자멸감에 빠진 채 고뇌하는 철학자들의 글을 무수히 돼 내는 나의 미천한 전두엽, 그 안에서 쾌락을 찾아 얼이 빠진 채 구걸하는 나의 무의식은 도파민 할당량을 넘친 지 오래고, 그렇게 나를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로 안내한다. 이 파괴적인 감정에 내가 이렇게 빠질 줄은 나 자신조차 미처 몰랐는데, 그 어떤 쾌락보다도 변태적으로 아름다운 이 순간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왜냐하면 이 미쳐버릴 듯한 감정이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완전히 삭제하고 싶은 물거품으로 치부할 것을 알기에, 오래가지 못할 이 감정을 붙들어야 한다는 집착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검은색 옷을 주로 입는 나의 겉모습은 마치 내 안에 있는 칠흑 같은 어두움을 노출시키는데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다. 이런 어두운 나 자신이 고상하게 파괴적일 수 있어서. 그는 내게 말했다. 너무나 부서져버린 내 모습이 마치 그의 모습 같다고. 정신이 나가버린 내 눈동자 속에 그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말도 안 되는 동료애 같은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나는 말했다. "나를 절대 사랑하지 마." 이 말에 그는 "너야말로 날 사랑하지 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향해 서로를 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서로를 파묻지 말자는 암묵적인 약속과 함께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차린 그는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너무 비참했다.


내 올곧은 자존심이 그를 찾지 말라고 수백 번 이야기했기에, 그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고했지만, 그의 답장은 언젠가 다시 올게. 이 말 뿐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은 다시 그를 기다려야 하나 라며 다시 나약해졌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나조차 감당하기 힘든 대 혼돈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어떨 땐 나도 멍 때리기라는 명상 비슷한 행위를 시도할 때도 있는데 잘 되진 않는다. 가끔, 멍을 때릴 때, 3초 이상 지속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애착을 유발하는 그의 눈동자, 매부리 코, 고른 치아, 그리고 아름다운 속눈썹. 정말 이상하게 나는 그의 속눈썹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그 속눈썹은 정말이지 내가 본 그 누구의 털보다도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였다. 그의 눈을 보면 내일이 없어도 좋을 만큼 나 자신을 그에게 맡기고 온전히 파괴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그래서 나는 멍을 때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을 실제 목표로 삼을 정도다.


몇 해 전 절정의 순간에 우리의 정신을 맡겼던 그 순간, 나의 후유증은 무려 3년이나 갔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데, 아무 기약도 없이 떠나버린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아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내 마음이 완전히 불구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연쇄적으로 생각하기를 선택했다.

다시 말하지만, 언젠가는 나의 본능적인 이기심이 그에 대한 생각을 중단할 것을 틀림없이 알기에 나는 그렇게 그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중단할 때까지,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그 생각의 끝이 아름다울지 추악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선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여정의 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나는 혼자서 다짐했다. 끊임없이 당신을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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