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장난으로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열정적인 것을 넘어서 치열하기까지 해 서로를 탐하는 관계일수록 불현듯 시도 때도 없이 상대방이 아무런 동기 없이 그리워지는 것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어찌 되었던 그런 관계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표면적으로 부족할 것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자꾸만 그 잔상이 짙어지고, 오늘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울적하게 만든다.
그는 나에게 11월에 만날 수도 있다고 했건만, 아직 연락이 없다. 평소에는 귀찮아서 무음으로 해놓은 휴대폰을 진동으로 설정한 채 모든 메시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가 아닌 연락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신경질까지 내며 이내 핸드폰을 냅다 내동댕이 친다. 11월의 1/3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제는 왠지 그가 내게 연락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슬퍼지기까지 한다. 내 옹졸한 뇌 전체는 이런 생각 하나로 하루가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가고야 만다.
실은 어젯밤부터 그가 보고 싶었다. 너무나 사무치게 보고 싶어서 그에게 수차례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애꿎은 휴대폰만 수차례 만지작 거릴 뿐. 어차피 연락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그여야 하기에 그냥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뭘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미련하게 이렇게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하고 다가온 월요일.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전체 회의에 전혀 집중하지 않은 채, 창밖의 먼발치를 바라다보며 뿌연 매연이 집어삼킨 도시를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매연이 집어삼킨 도시는 마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나의 미래와 나조차 알 수 없는 복잡한 나의 마음을 고스란히 투영한 것만 같다.
10월 7일 토요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정부는 대대적인 보복작전을 개시하고야 말았다. 사망자를 단순히 숫자로 표현하는 것도 인간적임을 포기한 것만 같지만, 인간은 직관적인 것에 쉽게 사로잡히는 동물이기에 굳이 숫자로 피해자들을 '추산'해보자면, 지난 한 달여간 이스라엘에서는 1,700여 명이, 가자지구에서는 10,0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직업특성상 세상의 갈등을 24시간 '분석'이란 명목으로 쳐다봐야 하기 때문에 이 뉴스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불현듯 내가 괴로워하는 것들은 우습기 짝이 없다고 느껴졌다.
나를 훌쩍 떠나버린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 어이없는 마음을 포함하여 내가 무수히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시시각각 포탄이 떨어지는 저곳에서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거대한 사치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사무실을 벗어나는 순간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때 그와 뒷좌석에서 손깍지를 끼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그 짧은 순간동안 같이 있다는 것에 애틋함을 느꼈던 순간이 매일같이 떠오른다. 이 마음을 어떻게 완전히 삭제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내가 그를 지워낸 마음은 백지위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자국과도 같아서 지우개로 지워 흑연의 형체만 없어졌을 뿐. 몇 번이고 연필자국 위에 다시 썼다가 지울 수 있는 그런 마음과도 같다. 그래서 백지상태가 너덜너덜해진 구멍이 나버린 상태와도 같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 나의 존재를 잘 숨기고 그냥 네 삶 잘 살아갈 수 있지?"
그는 대답대신 크고 깊은 눈으로 나를 조용히 응시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렇게 서로 대화하는 날은 일요일이었고, 옥상에 있는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서 바람소리를 노래 삼아 서로의 눈을 수차례 바라보다 헤어졌다. 그날이 특히나 좋았던 거 같다.
영화 PAST LIVES에서 노라(Nora)는 아서(Arthur)에게 이렇게 말한다.
"I'm supposed to be here, and with you."
너무나 강렬한 인연이 여러 세상에서 어긋난 버려서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가 있고, 타이밍과 안정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인연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노라와 아서는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인 것이지만, 노라의 마음속에는 아서에겐 차마 완전히 공유하고 공개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과거가 있고, 그 안에 과거라는 전체를 함축한 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존재는 절대 지워지지 않을 테지.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할 곳,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서로가 아닌 다른 곳이지만,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이 되어야만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잊는다는 말은 우리 사이엔 적용되지 않는 난센스에 불과한 듯 보인다.
아직 11월이 끝나지 않았기에 그가 정말 날 보러 와줄까? 란 생각을 희망으로 포장하며 애써 기다려보지만, 내 마음과 정신만 축내는 행위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걸 고통이라고 이름 붙이기 조차 얄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