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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Aug 09. 2023

기록에 대한 집착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  

어렸을 때부터 닥치는 대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이하윤 선생의 '메모 광(狂)'처럼 하루의 일과 그리고 그 틈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최대한 상세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문체로 기록하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하는 습관 따위로 여기곤 했다. 


때로는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기록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소름 돋을 때가 있고, 어떨 때는 기록하면 할수록 꾹꾹 눌러왔던 감정과 기억이 폭발하고 말아,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오랫동안 염원해 온 상상을 초월한 파괴적 망상이 극에 달해서 내 머릿속에 이어진 온갖 회로가 결국 끊어지고 불타 없어지는듯한 느낌과도 같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지금 쓰는 이 글자의 향연들도 그에 대한 나의 여러 가지 감정과 기억을 놓을 수 없기에 '기록'하는 것인데, 나는 오늘부로 이 기록을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부서진 나의 피폐하고 멜랑꼴리한 모습에 마력과도 같은 매력으로 느끼며 소용돌이에 휘감긴 그는 자기 파괴적인 나의 심상에 그가 지워지지 않도록 내 몸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어둡고 투박한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듯한 전율이 내 온몸을 지배했던 그 여러 밤 동안 우리 둘을 지배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거친 숨소리와 뚫어질듯한 강렬한 시선뿐이었다. 그의 감각적인 어루만짐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글자로 토했다. 그가 기억나는 아니 정확히는 그와 함께 한 시간들 속에서 내 감정이 요동치는 그 순간들은 불현듯 등장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이성과 잠시 거리를 둔 채 마치 악마와의 거래가 파행을 불어 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파우스트와 악수하듯,  그렇게 나는 불구덩이 같은 감정 속에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그'라는 인물 자체를 기억하고 기록했다. 


다만, 이성이 다시 내 온몸을 흔들며, '정신 차려'라고 고막이 터질 정도로 울부짖을 때, 말도 안 되는 감정 속에 손가락의 영혼을 팔아버린 나의 옹졸하고 값싼 행동에 제동이 걸린다. 그리고, 급제동이 걸린 이 행동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성이 다시 나의 상처투성인 감정과 뇌를 차가운 손으로 마치 수술하듯 갈라놓을 때, 징글징글한 '집착'이라는 것을 느끼며, 현실자각, 요샛말로 현타를 느낀다. 


어쩌면 나는 이 기록 속에 내가 실제로는 그와 이룰 수 없는 관계를 어떻게 듯 실현해 보려고 발버둥 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내가 너무 초라해져서 마치 그것만은 용인하지 않은 채 '기록'이라는 감투 속에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토해내듯 그렇게 노출했다. 부끄러운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나는 오히려 당당하게 나의 마음과 감정을 글로 기억하고 기록했다. 


동경 방문을 앞둔 며칠 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Norwegian Woods)'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토루 와타나베는 정신적으로는 나오코를 사랑하지만 미도리의 솔직함과 매력에 휘둘리고, 어떨 때는 인생 자체를 자신이 정복할 수 있는 게임정도로 생각하는 나가사와와 한통속이 되어 질펀한 원나잇을 즐기며 순간의 쾌락 속에 자신을 숨기기도 한다. 물론 키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청춘 일부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을 치유할 수 없는 '상실'이라 여기며, 나오코와 나누었던, 사랑으로 착각했던 거짓 애틋함은 서로에 대한 위로와 집착이었던 사실을 깨달을 때 물밀듯 와버린 좌절감과 패배감이 지금처럼 잔혹하고 직관적으로 느껴진 적이 없다. 


나는 와타나베, 미도리 그리고 나오코를 모두 섞어놓은 상실과 혼란의 결정체와 같단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세상과 하직할만한 용기는 없어서 - 손목을 긋거나 천장에 목을 매달거나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거나 하는 등 여러 행위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물론 겁도 많다. - 그냥 하루하루 눈뜨면 내가 정해놓은 루틴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마다 심해지는 망상이 불러일으키는 멜랑꼴리함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몸을 피곤하게 하는 행위 - 청소, 빨래 등 - 를 일부러 찾아서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내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거나 자동차 따위에 치이게 된다면 생명연장을 위한 구질구질한 집착 없이 마치 민들레 씨앗이 휘파람 같은 바람에 아스라이 사라지듯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흔적 없이 사라지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그럼, 내가 집착하듯 썼던 온갖 기록, 특히 그를 기억하면 썼던 그 글들에 대한 해석이 난무하며, 결국엔 나의 일방적인 세레나데 같은 글들이 그에게도 닿지 않을까? 하는 헛된 소망을 품기도 한다. 


그를 사랑했다고/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랑에는 나 자신을 자발적으로 포기할만한 희생과 고통이 뒤따르는 거대한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기에. 육체적인 탐이 정신적인 부분을 지배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깐. '사랑'이라고 하기엔 우리의 관계는 너무 옹졸하고, 그렇다고 '불장난'이라고 하기엔 서로 느낀 말도 안 되는 감정에 대한 배신이기에 규정하기 매우 어려운 그 안에 갇혀 끊임없이 감정집착이라는 고문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 고문을 끝내는 방식은 기억과 기록의 종료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최악의 타이밍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규정한 어떤 표면적 관계 형성은 불가능한, 아마 그래서 아슬아슬했고, 쾌락주의적으로 물든 처절한 사이의 끝은 이렇게 내가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종료된다. 기억에 대한 집착은 진흙탕에서 짓밟힌 더러운 꽃처럼 변할 것을 알기에, 더 이상의 집착은 이제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Au rev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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