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월의 앤 Jul 24. 2023

간절하게 바라는 소멸

대기오염 속으로 나 자신을 버리고 싶은 굴뚝같은 소망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한 달여 전인데, 1년 전같이 느껴진다. 보고 싶은 마음보다는 이상하게 자꾸 그의 얼굴과 냄새가 내 기억 속에서 흩어져서 어떨 때는 슬프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되살리는 것에 비참할 정도로 집착한다. 하지만, 어떨 땐 안도감을 느끼는 희한한 감정선에 나 자신을 부여잡고 있다.


며칠째 쓸쓸한 안개와 같은 대기오염이 적도의 도시에 낚시 그물처럼 펼쳐져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나 자신이 온전히 그대로 날씨 자체 투영된 것만 같아 괜히 더 우울하다. 뿌연 공기가 내 머리며 마음속에 가득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복잡하게 뒤엉켰는지 미치지 않고 하루하루 나름의 이성적 능을 이어가며 살아간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사촌언니가 말했다.

"넌 외향적인 편이지?"

이 물음에 어떻게 나는 도대체 어떤 면을 보고 나에게 외향성을 찾았는지 그녀에게 되려 반문하고 싶었지만, 이내 이렇게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편이고, 혼자 있는 거 좋아하는데, 누군가 상호작용을 해야 할 때 그리고 때때로 필요할 때 외향적인 것 같아."


누군가와의 상호작용 자체 굉장한 스트레스이며, 때로는 그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아 무슨 수를 써서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렇게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막상 나와 표면적이고 상투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상대방은 나의 행동에 대해 전혀 문제삼거나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척'하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상호작용이 요구될 때마다 울음을 삼키고 모든 불안을 감내한채 처절하게 외향적인 '척'을 하며 나 자신을 감춘다. 하지만 한계치에 다다르면 온갖 핑곗거리를 찾아 나를 숨기는데 골몰한다. 다만 그 연기를 하는 동안 거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내 얼굴에 억지의 가면을 씌운 채 상호작용을 하고 난 후 최소 몇 시간, 이상적으로는 몇일 정도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피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빈번히 치러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이 전혀 확보되지 않아 현재의 내 상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피곤함과 피폐함에 찌들어 있어, 잘 보지도 않는 거울에 비추어진 나 자신의 몰골을 어렴풋 볼 때마다 세상 우울하다. 마치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인채 강을 건너야 하는 낙타의 운명처럼, 나는 지금 그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맨체 더러운 강물에 발을 담그고 스스로를 포기한 힘없는 발걸음 때문에 자꾸만 그 강물 안으로 더욱더 깊게 파묻히고 만다. 그리고, 나는 이 힘듦을 이겨내기는 커녕 차라리 포기하면 결국 소멸을 경험할 것이라는 파멸적 소망을 품은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지금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부담과 무게로 작용할 뿐이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30분 남짓의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가루처럼 흩어져버리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려 안간힘을 쓴다. 말 그대로 안간힘이라서 어떨 때는 근성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냥 놓아버리고 만다. 그래서 또렷했던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요즘엔 눈을 감으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날엔 매우 슬퍼 깨닫지 못한 흘러내리는 눈물이 내 두 볼살을 타고 또르르 흔적을 남기면 깜짝 놀라 다시 이성을 차리고, 손등으로 바쁘게 눈가를 비빈다. 그리고 주책맞게 뜨거워진 눈시울이 싫어서 화장실에 냉큼 달려가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눈물의 흔적을 잽싸게 지워낸다.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사람이어서 일부러 공감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간혹 이 습관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무척 혼란스럽다. 그래서 수명을 단축시키는 대기오염 속에 나를 파묻혀버리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이 오염 속에 내가 스며들면 나는 언젠가 소멸되는 일개 아무것도 아닌 미물 불과하니, 그 누군가의 머릿속엔 그저 단편적 기억으로만 남겠지.


내가 오로지 원하는 것은 누군가 머릿속에 종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시간 속에 잊지 못할 감정을 선사한 그 '누구'이자 그 '순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소멸되어도 그들의 시간 속엔 나의 일부가 살아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물리적인 소멸이라는 그 개념이 내겐 그다지 두렵지 않다.


저기 저 멀리 지평선을 가린 대기오염을 보면서 문득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기억하려 노력했지만, 이제 잘 되지 않는다. 그게 순리임을 알기에 이제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를 기억하는 행위에 대해. 자꾸만 기억에 집착하니 그나마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기억이 자꾸 추악하게 변해서 그냥 놔두자. 놓아버리자. 그런 마음을 먹기로 했다. 이 다짐이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 집착도 결국 소멸하고, 지금 이 시간도 아무것도 아닌 과거로 치부될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지금 이 시간을 더 짙어지는 연무 속에 던져버린다.


이전 08화 왼손잡이를 볼 때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