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재학시절, 그때 담임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비법이 전해지지 않아 맥이 끊긴 것들에 대한 말씀. 청자에 관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다. 장인이 기록이나 전수를 하지 못해 이제는 생산이 안 되는 것으로. 그때는 장인의 아집이라고 흥분하셨다. 그 대표적인 것의 예로 고려청자를 예로 드셨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고려 시대 청자와 도기를 구웠던 많은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고 지금은 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남쪽으로는 바다와 접하여 해로를 통한 수송이 발달했고 북쪽에는 크고 작은 산이 있어 땔감이 풍부했으며 또한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와 규석이 산출되어 도자기 생산의 천혜의 조건이다.
이외에도 호남지역의 고려 시대 도자기의 가마터는 전북 고창군, 전남 함평군, 해남군 화원면, 부안군 진서면, 부안군 유천리, 강진군 사당리등 다수의 도자기 가마터가 발굴된다.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
옹기장이의 긍지와 더불어 장인을 후계자로 길러내는 능력, 체계적인 기술 전수 능력, 글로 개량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이를 보전하기 위한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마터를 개방하는 날에 아무런 언급 없이 모조리 깨뜨려버리던 굳은 표정이 우리에게는 더 큰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 선생님은 그랬다. 나만 알아야 한다는 아집이 맥이 흐르지 않고 단절에 이른다고.
지금은 대부분의 가마터가 복원되고 전시실과 체험실을 마련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도 이들 지역과 협력의 과정으로 진행 중이다.
우리가 둘러본 고려청자기념관에는 판매용 도기가 전시되고 체험장은 초벌을 구워낸 도기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한 후 집으로 배달해 준다.
‘장인이 직접 굽는 가마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라고 한다.
그 옆 건물의 ‘민화뮤지엄박물관’에도 들른다. 호랑이가 곰방대를 물고 어흥 거리는 그림이 민화라고 기억하는 나는 긴요한 경험이었고, 강진 일주일 살이 체험객이어서 남편과 같이 스티커 사진을 두 장 찍을 기회는 기분이 좋았다. 성 민화 방 앞에 ‘너무 옛날식이어서 흥미롭지 않다’라는 후기에 웃는다.
계속 남쪽으로 진행하여 마량놀토수산시장에 도착했다. 전체적인 부두의 인상은 깨끗하고 많은 어선이 접안하여 잘 발달한 항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다 진행되는 기획행사의 홍보도 한껏 돋보인다.
특히 마량은 어릴 적 마을 친구의 고모가 마량으로 시집가서 건어물을 팔려 왔던 기억이다. 그 고모가 마을에 오시면 할머니는 일 년 동안 먹을 미역이랑 멸치 등을 사곤 하셨다. 일종의 배달판매인 셈이다.아주 반가운 기분이었고 이 바닷가 어딘가에 그 고모가 계실 것만 같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