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알맞게 무르익는다. 만산홍엽이다. 비를 동반한 바람 한 번에 우수수 쏟아져 내릴듯한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한다.
’백두대간에서 단풍을 놓쳤거든 해남 대흥사에 와서 그 단풍을 잡아라‘ 는 말이 있는데 그 단풍이다.
이번 여행은 강진에 묵고 해남에 가다.
매표소 주차장 앞 전주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경내로 이어지는 화려한 단풍 터널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계곡으로 들어선다. 차를 세우고 대흥사로 올라가는 길. 단풍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저절로 우리를 벤치로 인도한다. 커다란 아름드리나무의 이끼가 세월을 짐작게 한다.
몇 해 전, 유선관에 묵은 적이 있다. 1914년에 사찰을 찾는 방문객과 수도승을 위해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이라고 한다. 그동안이 궁금하기도 하고 예스러운 숙소와 묵었던 툇마루도 보고 싶어 유심히 들여다보니 길 쪽으로 난 출입문을 담으로 곱게 쌓아 길손이 내부를 기웃거리지 못하게 막아놓았고 계곡 쪽으로 어지럽던 임시 건물도 모두 정리하여 단장해 놓았다. 출입문을 내놓은 뒤 작은 가림막으로 출입자를 안내한다. 궁금함에 들여다보면서 정갈함에 아쉬움이다.
대흥사 절로 올라가는 길.
일주문 안 부도에는 50여 개의 승탑과 비석이 있어 사찰의 위용을 말해준다. 일주문 지나 해탈문. 해탈문에 들어서면서 멀리 고개를 들면 만나는 풍경은 그 고즈넉함이 탄성을 자아내는 장관이다. 그 언젠가 교과서에서 ’대흥사 가는 길’이라는 기행문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눈이라도 내려쌓이는 날에는 그 광활함이 가히 짐작이 간다. 무염지 심진교 쪽과 반대로 대웅전 개천을 지나 북쪽으로 자리한 연리근에 눈길을 돌리며 대흥사 3층 석탑으로 가는 길은 호젓하다. 왼쪽으로 멀리 돌아 어제 완공기념 축제를 했다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호국 대전까지 도착해 걸어 온 길을 내려다본다.호흡이 멈춰지는 장엄함이다.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곳의 사찰 중 하나이다.
강진과 영암 사이에는 ‘도갑사‘라는 절이 있다. 아마도 월출산을 오를 때 그 절을 통과해서 올랐던 기억이 있다. 대흥사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다.
당시 직원 중에는 젊은 청춘 남녀가 많아서 휴일이면 함께 산에 가곤 했다. 월출산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등산복이나 등산화의 개념도 없이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선배 언니 오빠들을 따라나섰다. 역할 분담도 확실하여 선두에는 길을 잘 아는 이가 앞장서고 뒤쪽에는 힘이 좋고 걸음이 빠르며 아우르는 힘이 좋은 선배가 담당했다. 나는 선두주자의 바로 다음 자리, 조금 늦어지면 따라잡기가 어려우므로 늘 그렇게 두세 번째였다. 그때는 날쌔고 눈치도 좋아 산에 갈 때마다 남의 짐이 되지 않고 잘 따라다녔다.
남도의 산과 바다는 언제라도 좋다. 늘 우리가 즐기는 여행의 목적지이다. 더러는 혼자가 되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멋져지고 어느 분은 고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