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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과 함께 여주 가다.

by 제니아

가을바람과 함께 여주 가다.

새벽 6시, 서울역 광장에서 우리 다섯은 만났다. 둘은 형제이고, 다른 둘도 형제 사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또 다른 고모할머니 딸이다. 이들은 오랜 옛날에 시집가신 두 분의 고모할머니들의 자손이고 이 별난 조합은 순례 할머니의 활약에서부터이다. 아직도 건재한 수성최씨 양반가, 진외가의 복잡다난한 가정사는 수많은 방계 자손들도 태어나고 아낙들의 지난한 삶으로 이어지는 가족사가 흐른다. 그중에 순례 할머니는 대가 세고 상남자의 기질로 수성최씨 친정의 일이라면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터라 시집와서도 남편을 쥐락펴락했다. 그분은 햇포도가 날 무렵, 친정제사에 나들이를 나선다. 큰아들과 그 손녀들 한둘을 대동했는데 친정에서의 위세도 대단한지라 여전히 당당하다. 지금의 나같으면 조카며느리로서 대고모님의 친정 나들이에 대해 남편에게 푸념할 법도 하지만 사흘 후 본가에 돌아가시는 그분을 위해 송편을 새로 만들고 영산강 새끼숭어를 새로 찌는 정성을 보인다. 과연 순례할머니의 손녀인 나의 기억에 진외가의 추억은 호의 와 부러움 그 자체로 남아 어릴 적 보아왔던 진외가의 언니들과 단톡방을 개설하고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그들이 뭉쳐 관광차 여행을 나선 것이다.

그동안 전철역 근처에서 만나 밥을 먹고 찻집에 들러 회포를 푸는 것으로 만남을 이어왔고 서로의 집으로 초대하여 일상을 나누는 것이었으나 색다른 시도를 해보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서울역 우체국 앞에서 승차했다. 빈자리가 없다. 그나 여행을 하기에 계절이 호시절. 우리도 여행하기에 인생 호시절이다. 토요일 고속도로는 걸맞게 붐빈다.


첫 방문지인 세종대왕릉이다. 조선 최고의 임금으로 민족문화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긴 분이고 그중에서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것은 인류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일을 한 군주다.. 나 또한 지금 그분의 공덕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분의 성인병에 마음이 간다.나는 왕릉에 들를 때마다 승하하신 때부터 현재의 기간을 헤아리며 지금부터 또 그만큼을 헤아린다. 잘 살아내야 하는 당위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너무나 짧은 관람 시간으로 인해 봉분을 보는 것이 목표가 되어 필히 다시 한번 다녀가야겠다는 다짐이고 차라리 철제 다리 위를 왕복하는 시간을 쪼개서 이 능에 배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컸다.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여주 출렁다리를 왕복하고 내가 다녀본 여행지 사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 신륵사로 향한다. 절은 산중이요 비탈길을 걸어야 대웅전이 나타나는 건데 산길도 아니요, 심지어 강가 물경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천하 명승지 사찰을 들른 다음, 점심을 위해 식당으로 간다.

여주쌀밥, 밥은 쌀이 중요하다. 밥물을 잘 가늠해 밥알이 또렷하도록 갓 지어낸 밥, 방금 지은 밥을 담은 그릇에서 흰 김이 오르고 그 앞에 기도하듯 앉을 때. 우리는 경건해진다.

나는 임금님표 쌀을 쓴다. 이번 여행이 여주 쌀밥 맛 기행을 겸하는 코스라서 선택했다.

과연 메인 반찬이 곁들여진 한 상은 여주 여행객에게 특별한 대접으로 다가온다. 다만 한가지, 일행이 다섯인 우리는 나만 다른 팀과 짝이 되어 4인식탁을 채우니 낯선이들과 식사가 조금 불편하다. 뭐 그정도쯤이야.

내일은 주일새벽이니 가벼운 마음이어도 좋다. 종착지에서 차 한잔을 함께 나누고 헤어진다.

모두가 같은 또래인 우리는 건강을 기원하며 추석 연휴 또 한 날을 기약해본다. 바람 좋은 가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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