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모르게 살을 빼야 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느낀 건 2022년 6월이다. 문득 마주친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진을 찍으면 왠지 내 얼굴이 아닌 듯해 자꾸 삭제 버튼을 눌렀다. 나는 날 부정하고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할 땐 더 불행해졌다. 입던 바지도, 좋아하던 원피스도 내 몸을 감당할 수 없었다. 연예인들이 종종 TV에 출연해 '옷을 좋아한다'는 취향을 밝힐 때, 나도 속으로 말한다. '나도 옷 좋아하는데...' 그리고 내 모습을 본다. 면티에 플리스 조끼에 트레이닝바지... 거의 매일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데 멋진 옷, 예쁜 옷이 무슨 소용인가. 전업 주부에게 팬데믹의 일상은 고단했고, 피곤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잠깐의 해방감을 위해 먹은 빵과 밥, 감자칩 속 탄수화물과 지방은 서로 협력해 내장과 복부에 쌓였다. 체중은 점점 증가하고 불면증도 심해지자 나는 점점 히스테릭해졌다.
유행을 타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껴두고 중요한 날에만 꺼내 입는 원피스가 한 벌 있다. 셔츠형 카라가 달린 상의에 하의는 A라인인데, 흰색 잔체크가 들어간 스커트로 컬러는 네이비다. 문득 그 원피스를 지금 입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원피스를 꺼내 지퍼를 열고 천천히 내 몸을 넣어보았다. 꾸역꾸역 몸을 넣었다. 지퍼는 올릴 수도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만약 억지로 몸을 움직이면 원피스는 그냥 찢어져버렸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원피스를 벗고 거울 속에 담긴 내 몸을 바라봤다. 체중계에도 올라갔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운동화를 챙겨 헬스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는 밝힌다 그날, 나의 몸무게... 68.9kg.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이 왔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헬스장에 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 3회 이상은 꼭 방문해 40분 러닝머신, 각종 헬스 기구를 만지며 20분 정도 뭔가 했다. 러닝머신의 40분 중 대부분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고작 뛸 수 있는 시간은 5분 남짓? 노래 한곡 이어서 또 한곡 정도 뛰고 나면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으면 뛸 만도 한데 드라마 정주행으로 늦게 자거나, 가족 간 스트레스를 받은 날엔 정말 단 1분도 뛸 수 없게 숨이 막혔다.
러닝을 하면 내 몸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처음 나의 운동 목적은 분명 체중을 줄이는 것이었지만,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 몸이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노력이 필요했다.
TV의 각종 건강 프로그램을 통해 습득한 지식대로 단백질과 야채 위주의 식사, 운동 거르지 않기, 가능하면 일찍 잠자리에 들기 물론 매일 100% 실천한 건 아니다. 가끔은 에라 모르겠다, 소금방 페스트리 초콜릿케이크...! 이런저런 빵파티에 내 몸을 던졌다. 다음 날에는 반성하며 닭가슴살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한숨을 쉬며 소파에 축 늘어진 내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들어가는 일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죽을 맛이다. 다음부턴 설거지와 청소 같은 집안일을 일단 미뤄두고 먼저 헬스장부터 갔다.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집안일을 하니 훨씬 할만했다. 그렇다고 운동을 했다고 바로 살이 빠지는 건 아니었다. 참 희한한 게 체중이 1kg이라도 빠지면 나보다 내 몸이 먼저 알고 빵과 찐 고구마를 집어 든다는 거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는 몸이 모르게 해야 한다. 내 몸이 모르게 다이어트를? 이게 말이 돼? 따지고 싶었지만, 따질 상대가 나 자신이니 어쩔 수 없다. 다이어트를 나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중요한 건 패자가 있으면 안 된다.
천천히 달래 가며 내 몸이 모르게 아주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체중을 줄여 나간 지 10개월. 나의 몸무게는 60.9kg! 8kg의 감량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아직 그 네이비 컬러의 원피스가 내 몸을 받아줄 상황은 아니다.
오래전 큰 애 낳고 인연이 닿아 기획자로 회사를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서 막 좋아하고 있었는데, 같이 일하던 동료 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했다.
"운전... 진짜 무서울 거 같아서 여태 못했는데, 임작가님이 땄다니까 왠지 저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시절부터 난 좀 부족한 게 매력(?)인 캐릭터였나 보다. 허당끼 충만한 중년의 아줌마가 8kg 빼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개월이다. 하지만 감량 이후 요요가 오면 더 살찌기 쉬운 체질로 변한다고 한다. 지난 10개월 간 흘린 땀이 부질없어진다고? 상상만 해도 억울하다. 그럴 수는 없다. 나의 운동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A라인의 네이비 컬러 원피스야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