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어선 대환장 러닝의 시작
*운동일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배웠다' 언급할만한 운동을 생각해 보니 제일 먼저 스쿼시가 떠오른다. 그렇다고 몇 년 그렇게 오래 한 건 아니고 동네 헬스장 안에 있던 스쿼시 장에서 몇 달 정도 배웠는데 이게 정말 딱 내 취향인 거다. 정말 재밌다. 남편이랑 발리 클럽메드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스쿼시를 많이 쳤다. 이후엔 한 번도 안 쳤다. 칠만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수영은 결혼 이후 시작했다. 88 올림픽 때부터 수영을 하신 할머니 회원 옆에서 열심히 수영을 하다, 늦둥이를 임신했다. 병원에서는 분명 난임이라고 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경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후 일산으로 이사와 열정 클릭으로 고양체육관 수영장에 입성, 한동안 신나게 수영을 했다. 고양체육관 수영장엔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깊은 풀도 있어서 매주였나, 격주였나 암튼 수요일엔 다이빙 접영을 했다. 꼭 다시 해보고 싶다. 그런데 거기서 아주 끔찍한 일을 겪었다. 늘 수업을 듣던 반에 등록을 못하게 되면서 조금 낮은 레벨의 반으로 그냥 등록을 했다. 첫 시간에 생각보다 너무 적은 운동량과 내 기량을 다 뽐낼 수 없는 수업 내용에 실망이 컸다. 수업이 끝나고 풀 옆에 놓인 의자에 세 명의 수영 강사가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이전에 날 가르친 강사였다. 아쉬운 마음에 그쪽으로 다가가 늘 하던 등록을 못해서 이쪽 반으로 왔는데, 다시 그 반으로 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이라도 꺼내볼 생각이었다. 진짜 몇 마디 안 했는데, 갑자기 현재 강사가 내 쪽으로 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 수영하는 거 봤는데 너 그 정도 아니라고. 너 그 정도 아니야... 엄청 큰 목소리였고, 반말로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내 귀엔 위협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달랑 원피스 수영복 한 장을 입고 서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서
도망치듯 샤워실로 달려갔다. 그날 이후 그 체육관 건물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분노가 차 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는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갑자기 수영을 접고 마음고생을 하던 중 코로나가 시작됐고,
자연스럽게 실내 스포츠는 내 일상 밖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시간은 약이 되어 내 끔찍한 기억을 퇴색시켜 주었다. 적어도 그 체육관 건물을 바라볼 수는 있으니까.
운동을 그만두자 점점 내 몸엔 내장비만이 쌓이고 체중이 확확 늘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가 집에 있으니 세끼 밥은 무조건 차리고, 치운다. 안 먹을 수는 없고, 간식까지 먹여야 하니 나도 한입 먹고 두 입 먹고, 그러다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하며 와르르 우르르 다 먹어치워 버렸다. 종종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곧 그 자괴감을 다 잊을 만큼 생크림도 고기도 식빵도 짜릿하게 아름다운 맛이 아닌가! 인생 짧다, 일단 먹고 보자! 그런 심정이었달까? 중년이 되고 느낀 건데 허니버터칩 한 봉지를 먹은 다음 날엔 무조건 +1kg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워죽겠는데, 살은 왜 이렇게 쉽게 살이 찌고, 빼는 건 또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이 분노와 짜증이 올라오면, 가족 간 대화는 절대 금지다.
평소 일요일엔 헬스장에 가지 않는데, 그날은 다음 날이 한 달에 한 번 헬스장이 문을 닫는 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토요일에 구매한 아디다스 러닝화를 신고 달리는 기분은 어떨지 너무너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몇 년 전 코스트코에서 산 스케쳐스 운동화를 신고 달렸는데, 반스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그녀를 본 후 러닝에도 적절한 장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저녁 설거지를 남편에게 맡기고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웬일인지 운동을 하러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밟는 기분으로 헬스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 산 러닝화 속에 발을 밀어 넣었다. 확실히 가볍다.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도 있다.
특히 발 앞쪽 바닥이 일반 운동화보다 넓어 훨씬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운동화 끈을 묶는데, 이게 너무 느슨해도 너무 팽팽해도 안 되는 섬세한 작업이라 발등에 전해오는 압박감에 집중하며 천천히 리본 모양 매듭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스포티파이 운동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지금 이 순간과 가장 어울릴 만한 곡을 찾았다.
내 선택은 Lady Gaga의 'Poker Face'.
음악이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눈에 힘이 들어가며 나 혼자 느끼는 슬로비디오로 러닝머신 위에 천천히 올라가 섰다. 발목을 돌렸다. 온몸을 위로 한 번 길게 뺐다. 바로 달리고 싶었지만, 저녁을 먹고 금방 내려온 터라 바로 뛰면 배가 아플 거 같아 일단 4.8 속도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러닝 머신 위 내 시선이 닿는 곳 LCD창에는 러닝 머신의 경사, 달린 시간, 속도와 같은 정보가 나와 있어, 얼마나 걸었나 보니 14분이 경과됐다.
14분 정도면 위에 있던 음식도 어느 정도 소화가 됐을 거 같아 속도를 올렸다. 내가 뛰는 바로 그 속도, 8.7!
드디어 러닝화를 신고 러닝머신 위에서 러닝을 하게 된 것이다! 스포티파이는 날 멈출 수 없도록 강력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을 계속 제공해 주었고 처음 신은 이 러닝화는 확실히 내 러닝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나 러닝화 왜 이제 신은 거야?) 나 잘 뛰네? 정말 잘 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헬스장 입구로 누군가 들어오는 모습이 창문에 거울처럼 비쳐 보였다. 얼굴을 처음 보는 아저씨가 골프채를 들고 러닝머신 쪽으로 걸어와 벽 쪽에 골프채를 세워두고 내 자리 하나 건너에 있는 러닝머신에 자리를 잡았다. 골프 연습을 하기 전 워밍업 운동을 하러 온 듯 보였다. 아저씨는 러닝머신에 오르자마자 조금 빠른 속도로 걷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하자 갑자기 내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그 아저씨와 내가 동시에 두 대의 러닝머신 위를 달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마치 두 사람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난 아저씨보다 먼저 달리기 시작했지만, 왠지 먼저 속도를 낮추고 싶지 않았다. 계속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고... 이렇게 까지 오래 뛴 적은 없었다. 갑자기 마음에 불안이 찾아왔다. 이렇게 뛰어도 괜찮을까? 내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목이 말라왔다. 피맛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갑자기 다리가 확 꺾이며 내 몸이 무너져버릴 거 같은 두려움이 순간, 순간 찾아왔다.
그러다 문득... 날 모욕했던 그 수영강사가 떠올렸다. 그리고 육아와 살림에 지쳐 쪼그라든, 자꾸만 포기하자 마음먹는 내가 보였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에 힘을 더 주며 집중했다. 어느 순간 호흡이 안정되며 계속 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음악 속 리듬에 발걸음을 맞추며 힘차게 달렸다. 얼마를 달렸는지 시간도 확인하지 않고 달리는데 갑자기 함께 뛰던 아저씨가 STOP을 누르며 러닝머신에서 급히 내려가는 거다.
그제야 나도 정신을 차리고 내가 달린 시간을 확인하니 38분. 그러니까 14분부터 38분까지 달린 것이다! 24분을 달렸다고? 무슨 일이야! 이런 완벽한 러닝은 처음이야! 나도 갑자기 멈추면 혼자 이상한(?) 경쟁을 펼친 내 속내가 드러날 거 같아, 40분까지 2분을 더 달린 후 마치 계획한 대로 러닝을 마쳤다는 듯 STOP 버튼을 탁 눌렀다. 아, 짜릿해! 러닝 머신이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상쾌했다. 아저씨는 벨트마시지기계로 다리근육을 한참 풀더니 가지고 들어온 골프채를 들고
헬스장을 나갔다. 그런데 몇 분 후 다시 헬스장으로 들어와 러닝머신 주변을 막 두리번거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쩍 봤는데 자동차 열쇠를 러닝머신 위 물통 같은 걸 꽂는 곳에 두고 갔던 모양이다.
자동차열쇠를 집어 든 아저씨가 급히(? 내 느낌에는) 헬스장 밖으로 나갔다.
멋진 달리기였어요, 아저씨 감사해요!
얼마 전 신경숙 작가님의 [요가 다녀왔습니다.]라는 에세이집을 나도 읽고 딸도 읽었다. 인상적인 내용이 무엇이었나? 서로에게 물었는데 그 내용이 똑같아 신기했다. 바로 '한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을 때의 상태를 기억한다고 말해주었다. 몸의 기억력은 대단히 뛰어나서 한번 도달해 본 그 지점을 잊지 않는다는 것. 다음번에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몸은 이미 한번 넘어가 본 그 지점까지는 가볼 준비를 한다고도 했다. 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무한한테 몸의 주인인 우리가 고통과 대면하지 않거나 새로운 시도를 주저할 뿐이라고. 고통을 호흡으로 안정시켜 안아주고 그 한계를 넘어가 보고 또 넘어가 보라고.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미래를 준비하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아이가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중년의 나에게 그런 욕망은 좀 버겁다. 그런데도 그 부분에서 내 마음이 흔들린 걸 보니
나 아직 젊은(?) 마음, 남아 있나? 다행히 어느 일요일 저녁 새로 산 러닝화를 신고 달리며
내가 정한 한계, 그 선을 넘어봤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고, 이 느낌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운동일지는 그렇게 시작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