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말라족이 되고 싶은 소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피지컬 전쟁'이라는 제목의 시사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십 대 아이들이 살을 빼기 위해 마약성진통제를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는 것. 기자가 어떤 십 대 여자 아이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날씬해지고 싶냐고, 아이가 원하는 몸무게는 38kg.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 일명 '뼈말라족'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던데, 바로 그런 몸을 갖고 싶은 것이다. 보는 내내 철없는 그 마음이 걱정돼 한숨이 나왔다. 그런 욕망을 조장하는 각종 미디어의 행태에 원망의 마음도 생겼다. 솔직히 날씬한
여자 아이돌들이 높은 힐을 신고 힘이 넘치는 안무를 소화하는 장면을 보면 예쁘기도 하고 정말 놀랍다.
하지만 조금은 안타깝다. 물론 꿈을 펼치며 엄청나게 행복할 테지만, 저 아이가 내 딸이라고 생각하면
아이고, 쟤가 밥은 먹고 뛰나? 그런 생각이 든다. 반면 십 대 소녀들은 그 마른 여성 아이돌을 바라보며
본인 역시 그렇게 마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 모양이다. 십 대 소녀가 아이돌을 흠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저러다 큰일 날 텐데 걱정을 하다 문득
"넌, 넌 안 그랬어?"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될지 모르겠다. 살짝 돌려 말한다면, 제 옷은 상의보다 하의 사이즈가 훨씬 큽니다!
아니면, 제 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우리 전통의 옷, 한복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결국 같은 말이다. 난 엉덩이가 큰 체형이다. 섹시하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냥 슬프게 엉덩이만 크다.
미니스커트는 말할 것도 없고, H라인 스커트도 입어본 적 없는 거 같다. 얼굴은 작고 어깨는 좁은데 엉덩이만 크다. 그래서 내가 늘 입은 옷은 주름스커트, 플레어스커트, 원피스. 내 신체의 결점을 숨기게 중요했다. 평범한 엉덩이와 곧고, 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갖고 싶다! 무릎 위 H라인 치마를 입어보고 싶다! 오랜 시간 염원했다. 마치 TV 속에서 본 그 아이가 38kg의 몸무게를 원하듯 말이다. 다행히도 쉰을 넘긴 지금은 그런 심미적 욕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보다 정상 컨디션이 유지되는 것, 그게 더 중요해졌달까?
얼마 전 둘째 아이 사춘기 고집에 맞서느라 많은 체력과 인내심을 쓰고, 다음날 아침 어지러움 증상이 찾아왔다. 확 고꾸라지고 말았다. 자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눈을 뜨는 게 두려웠다. 날이 밝고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보는데 역시나 빙글빙글, 속은 울렁울렁... 할 일도 많은데, 꼼짝없이 누워 앓을 생각을 하니 속까지 끓어올랐다. 다행히 이석증 진료를 받으며 증상 발현 시 먹을 약을 처방받아둔 게 있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빈속에 먹는 게 걱정이 돼 냉장고에 있는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단백질을 추가하기 위해 계란 프라이를 부쳐 밥에 얹었다. 속은 계속 울렁거렸지만 참고 먹었는데, 그게 급체로 이어졌다. 허리도 펴지 못하고 바튼 숨을 내쉬다가 이러고 있으면 정말 큰 일 날 거 같아 억지로 옷을 입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밥을 왜 먹었냐고 한다. 속으로 '그러게요' 했다. 처방한 수액을 맞기 위해 주사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야 하는데 너무 어지러워 눕지도 못하겠고 앉아 있어도 계속 어지럽고... 그냥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에 앉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날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 간호사님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석증'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겠다는 듯 '아이고 어째요...' 한다. 마음이 따듯해지며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가 후드득 떨어졌다. 고맙게도 간호사님의 케어는 참 따듯하고 세심했다. 수액주사를 다 맞고 집에 돌아왔다. 계속 눈물이 흘렀다. 나이 들어가는 내 몸이 너무 슬펐다.
지난 토요일 어린 시절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기로 했었다.
간만의 가족 없는 주말 외출이라 설레는 마음에 일찍 일어났는데, 친구가 새벽에 카톡을 보낸 것이다.
급체와 저혈당이 와서 오늘 만날 수 없다고. 급체와 저혈당, 급체와 이석증. 중년의 몸은 두 가지 증상이 동반되는 특징이 있는 건가?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아침을 먹고, 힘을 내기 위해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10대, 아니면 2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세 명이 헬스장에서 근육운동을 하고 있고,
내 또래 중년 아저씨는 러닝머신에 올라가 빠른 걸음을 걷고 있었다.
난 오래도록 발목과 무릎을 돌리고 바로 8.7 속도로 달렸다. 24분, 25분... 오늘은 30분을 채워보았다.
15분쯤 고비가 왔는데, 그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시작됐다. 힘을 내기 딱 좋은 곡이다.
달리며 생각했다. 중년의 몸은 언제 고꾸라질지 모른다. 달릴 수 있을 때 달려둬야 고꾸라졌을 때
천천히라도 일어날 수 있다. 중년에 운동만큼 확실한 저축은 없다.
그리고 철없는 두 아이, 나와 십 대의 그 소녀.
과거의 난 심미적 하체를 갖고 싶었고, 현재의 그 아이는 38kg의 깡마른 몸을 원한다.
예쁜 하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내가 몰랐듯 그 아이도 오래도록 38kg을 염원하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깨닫게 될 거다. 몸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나보다 조금 더 빨리 깨닫고 내 몸을 사랑하는 건강한 아이로 행복하길 마음속 깊이 빌어본다.
"내 두꺼운 다리야, 거대한 엉덩이야, 미안해. 널 오래도록 사랑해주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