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건강만큼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
평범한 토요일 오후였다. 5시쯤 됐을까? 가까운 아웃렛으로 쇼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은 남편이 하고 보조석에는 둘째 아이, 난 보조석 뒷자리에 앉았는데, 오른쪽 차창으로 붉은 석양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 가득 아스라이 퍼진 붉은빛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다 왠지 슬퍼졌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또 올라온다.
오래전 그 아름답던 시절을 왜 그리 허무하게 흘려보냈나 속상하고, 중요한 일도 아닌데 전전긍긍했던 일들 자꾸 떠올라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로서 부족했던 거, 그게 자꾸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큰 애 낳고 초보엄마로 살던 시절, 아직 혈기는 왕성하고, 할 일은 넘치는데 아이는 느렸다.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러다 서른 끝에 이른둥이 늦둥이를 낳고, 아이가 숨만 잘 쉬어도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마흔의 육아는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큰 애의 느린 기질에 비해 막내는 눈치도 빠르고 센스가 있어 수월했다. 대신 중년의 피로감이 더해져 힘든 부분도 없진 않다. 남편도 중년이 되고 나니 아빠의 지혜라는 게 생겼는지 오로지 자기중심 취향의 노래인 막내의 선곡을 잘 견디고 있다. 서른과 마흔 즈음엔 상상도 못 한 이런 순간이 갑자기 낯설고, 지금 여기 부재중인 큰 애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확 파도치듯 밀려왔다.
"그날, 언니가 등산 가자고 했을 때 솔직히 귀찮아서 가기 싫었는데, 가길 잘했어...
그때 고라니 두 마리도 보고, 얘기도 많이 하고... 걔가 이렇게 갑자기 바빠질 줄도 모르고... 흑"
"?? 엄마 울어? 언니, 오늘 밤 집에 오는 거 아니야?"
아니 엄마, 언니가 어디 멀리 떠난 것도 아니고... 왜 그래?"
"노을 때문에 그러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순간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후회만으로는 부족해 자책에 이른다. 검은 물결이 넘실대는 우울의 강에 빠져 허우적댄다.
요가를 하기 전 명상을 먼저 하는데 머리를 비우고 몸은 편안하게, 호흡에 집중해야 한다. 쉽지 않다.
머리를 비우라고 하면 더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선명해지는 아이러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머리를 비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뭔가 해본다. 편안함을 찾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몸을 움직여본다.
호흡에도 집중해 본다. 턱을 치켜들며 잔뜩 마시고 가슴이 내려앉게 후 뱉는다. 열심히 반복하니 나 혼자
시끄럽다. 강사님의 한 마디가 들려온다.
"호흡 거칠어지면 안 됩니다."
으스스하다. 이곳 멀티룸은 바닥 난방이 안 되고, 요가 수업이 시작되는 오전 9시는 아직 새벽 냉기가
남아 있다. 얇은 요가복만 입고 있으니 당연히 몸이 으슬으슬하다. 강사님은 내 몸이 편안해야 한다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역시 요가는 스포츠가 아니라 수련이 맞나 보다.
호흡도 쉽지 않고, 편안함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여도 땀도 안 난다.
근육으로 버티는 동작을 하며 조금 데워졌다가도 요가매트 밖으로 손이나 발이 나가면 그나마 모은 열이
한순간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집중하며 모든 동작에 임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구르기 열 번을 하고 두 다리를 뒤로 확 넘겨 어떤 동작을 하던 중
왼쪽 목 뒤로 담이 오고 말았다. 아차 싶게 아프고, 불편했지만 이 조용한 공간에서 뭘 하든 호들갑으로
보일 거 같아 깊은숨을 내쉬며 참았다. 다행히 스르르 회복되는 게 느껴져 한숨 돌렸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일어나니 손 발이 얼음장이다. 담이 왔던 부분도 아직 얼얼했다.
오히려 첫 수업 때보다 집중을 못한 기분이 들었다. 동작도 훨씬 어려운 게 많았다.
일명 거북이 동작이라는 걸 알려주셨는데, 몸을 거의 반으로 접어야 했다. 배와 엉덩이가 두꺼운 나로서는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속상했다. 하지만 아직 첫걸음도 못 뗀 내가 즐길 궁리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좀 더 수련을 해야 머리도 비울 수 있고, 몸도 폴더형 휴대폰처럼 접어볼 수 있겠지. 탁!
그냥 집으로 가기 아쉬워 헬스장에 들렀다.
요가로 풀지 못한 '몸의 한'을 러닝으로 풀기로 했다. 러닝을 시작한 지 10개월이지만 즐긴다고 생각한 건
얼마 전이다. 생각해 보면 러닝도 요가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40분 걷는 동안 뛰는 건 단 몇 분이 고작이었고, 발목이 아프고 너무 지겨웠다. 이 지겨운 걸 왜 하고 있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래도 밑 빠진 독이 물을 붓는 심정으로 40분을 채우고 러닝 머신에서 내려오니 뿌듯함이란 게 느껴졌다.
중년이 되니 호르몬 장난이든 아니든, 노을 때문이든 아니든, 종종 익숙한 우울감이 찾아와 갑자기
다 부질없다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래도 오늘 하루 날 위해 그 지겨움을 참고 운동을 했다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됐다.
냉기에 오그라든 몸과 마음을 쭉 펼치며 8.7 나만의 러닝 속도로 달리니 점점 몸에 열이 오른다.
그래도 손 끝에 남은 날카로운 냉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손을 탁탁 몇 번 털어주며 한참을 더 달리니
점점 손 끝까지 스르르 따뜻해졌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몸이 점점 가벼워졌다.
요가에 한 맺힌(?) 중년 아줌마의 러닝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눈에 힘을 주고 달리고 또 달리고. 달리고... 오로지 러닝으로 40분을 꽉 채워보았다. 중간에 내공 있어 보이는 러너가 나타나 내 옆 자리 러닝머신에서 달렸는데, 정말 환상의 호흡이었다.
(그분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달리다 보니 내 안에 힘이 차오른다. 평범한 토요일 오후 내 오른쪽 차장에 펼쳐진 붉은 노을 때문에
찾아온 죄책감, 부질없는 욕망과 미련 같은 것에 울지 말자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점점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이제 오로지 달리는 내 두 다리와 박자에 맞게 바닥을 내딛는 발, 그리고
강력한 비트의 음악만 남은 듯했다. 그 느낌이 좋았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이거 혹시 '러닝명상'인가?
언젠가 요가도 나에게 이런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완벽하게 머릿속을 텅 비우고
내 몸의 움직임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마음이 잔잔해지면
하늘 가득 붉은 노을도 더 이상 두렵지 않고, 나이 먹는 억울함도 좀 사그라들지 않을까?
중년엔 마음 다스릴 치트키가 필수템이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요가하기 전 먼저 러닝을 하고 가야겠다.
막내를 등교시키고 서두르면 헬스장에서 10분 정도 뛸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러닝으로 몸의 온도를 올리고 요가를 간다면 그 으스스한 냉기는 극복하고
수련을 시작할 수 있을 거다. 다행히 아직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