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운동은 오전이 낫겠다.
남편이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다. 며칠 전부터 기침을 한 두 번 하긴 했다.
의사가 아니라도 육아 20년 차 정도되면 호흡기질환 쪽으로 나름 민감해지기 때문에 남편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감기 같다고 걱정을 하자 남편은 그냥 사래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결국 감기였다. 지난주 둘째가 A형 독감에 걸려 고생한 터라 혹시 전염인가? 걱정이 됐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쨌든 식구 중 누가 아프면 살림을 하는 나로서는 몸도 마음도 바빠진다.
부담과 압박이 느껴진다. 게다가 그날은 아침 일찍 헬스장 가서 러닝을 한 후, 큰 애 고등학교 시절 함께 한
학부모 기도모임에 참석하려고 전날 밤부터 마음먹고 기대한 터라 더 속이 상했다.
그렇다고 아픈 남편을 놔두고 내 일상을 영위하는 건 좀 매정한 거 같아 러닝도 모임참석도 포기하고
남편과 함께 가까운 내과를 방문했다. 증상을 물어보는 의사에게 적극적으로 여기도 저기도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남편의 대답은 늘 한결같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으면 병원엔 왜 온 건가? 내가 이럴 거 같아서 따라온 거다.
옆에서 구구절절 남편의 증상을 의사에게 말해주었다. 특히 집에 a형 독감에 걸린 청소년이 있어
전염 가능성도 있을 거 같다고 했더니, 의사는 열도 없고 근육통도 없으니 독감은 아닌 거 같다며
그냥 일반 감기약을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오니 11시, 바로 점심준비를 시작이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난 밥 수발에 집중한다.
큰애를 키울 때도 아이가 아프면 일단 병원에 다녀온 후, 나물 무치고 된장국 끓이고, 계란찜 만들고,
그게 늘 시작, 이른둥이 막내를 키울 땐 더 열심히 했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한주간 남편에게 제공한 끼니를 사진으로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대단히 멋진 엄마, 훌륭한 아내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거 하나 내 자부심으로 유지하고 싶어 집에 오자마자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시금치를 데쳐 된장에 무치고 멸치육수를 우려 계란국, 그리고 트레이더스에서
사 온 시판 돈가스가 딱 한 장 남아있길래 튀기고, (내가 직접 담근) 깍두기를 작은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았다. 그 사이 취사를 마친 밥솥의 삐리리 신호음이 들린다. 밥을 푸고 남편을 불렀다.
남편이 밥을 다 먹고 약을 입에 털어 넣는데,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부은 듯하다.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 얼른 쉬라고 안방에 들여보냈다.
4월에 잠깐 재택근무를 하게 돼 이래저래 아픈 남편을 곁에 두고 돌 볼 수 있는 건 다행이라 생각했다.
혹시 전염이 될까 무서워 남편이 다 먹은 후 나도 먹고, 엉망 된 주방과 식탁을 다 치우니
오후 2시 반이 넘어 버렸다. 정신없이 밥을 차리고 치우고 나면 머리가 멍해지고 피로가 급격히 찾아온다.
잠시 후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빠가 감기에 걸려 안방에 격리 중이니 안방 근처엔 절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엄마는 잠깐 쉬겠다고 말한 다음 소파에 몸을 기댔는데,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눈을 뜨니 오후 5시... 그래, 오늘 난 희생의 아이콘이 되어 하루를 불살랐고 이제 그 연장선상에서
저녁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하는데, 왠지 마음이 헛헛했다. 젖은 이불처럼 무거운 몸이었지만,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운동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엄마, 잠깐 뛰고 올게!"
늦은 오후 헬스장은 왠지 고요했다.
러닝 머신에 올라 발목을 힘차게 돌리고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워킹을 시작했다.
요즘 30분, 40분 기록을 경신하며 신나게 달렸는데, 오후의 난 완전히 다른 몸이었다.
5분 뛰고 나니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40분 중 고작 10분 정도를, 그마저도 힘들게 달렸던 예전의 내 모습.
무리하면 다칠 수도 있을 거 같아, 러닝은 포기하고 걷기만 했다. 몸은 참 정직하다.
그동안 뛸 수 있다는 기쁨에 너무 도취됐었나? 그런 생각도 들고, 내 하루를 가져가버린 남편의 감기가
원망스럽고, 피로감에 확 쉽게 무너진 내 몸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40분을 채우고,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늘 하던 근력운동을 몇 가지 하고 집에 돌아왔다.
막내가 날 보자마자 묻는다.
"엄마, 오늘 저녁 뭐야?"
"맛있는 거!"
"맛있는 거 뭐?"
"맛있는 거!!!"
그래도 운동일지를 쓰는 아줌마로서 최소한이지만 나, 성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