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선다는 것의 의미

러닝하고 요가하는 아줌마의 일상

by 임지원


몸이 차가워 요가에 집중을 못한다고 느낀 후, 조금 일찍 헬스장에 도착해 잠깐이라도 러닝을 하고 요가를 한다. 딱 5분 러닝을 했는데도 몸이 확실히 따듯해지는 걸 느낀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빛도 다르다. 환해진 느낌이랄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상태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부터 하는데,

조금 들뜬 마음과 급한 호흡이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아가며 더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

이제 몸을 움직일 만반의 준비가 끝나면 합장 후 다 같이


"나마스떼"


아쉬탕가 요가를 했다. 강사님이 아쉬탕가 요가는 어디서나 같은 움직임과 비슷한 순서로 진행되는 거라며

에너지가 넘치는 요가라고 알려주셨다. 나와 같은 동에 사시는 노년의 수강생에게는 하시다가 너무 힘들면 그냥 쉬시라고 한다. 노년이지만 예전에 요가를 십 년 이상 했던 분이고, 항상 의욕이 넘쳤기에 끝까지 함께 할 거라고 난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 중간에 밖으로 나가셨다. 확실히 평소보다 땀이 빨리 났고, 관절에 무리가 가는 동작이 많다고 느꼈다. 의욕보다는 내 몸의 안전이 먼저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아쉬탕가 요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많은 정보가 나오겠지만, 내 느낌은 백팔배 절을 하듯 몸을 세웠다 엎드렸다 눕혔다 들었다... 움직임이 다이내믹하고, 속도감도 있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니 점점 그 동작에 익숙해졌다. 늘 더듬거리며 반 발자국 뒤쳐진 느낌이었는데, 아쉬탕가 요가를 할 땐

내 속도도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진정한 요가인이 된 느낌이랄까? 그 어느 때보다 노곤한 사바아사나(요가 마지막에 바닥에 누워 쉬는 시간)를 하고 일어나니 몸이 정말 가벼운데, 에너지는 꽉 찬 듯 느껴졌다.

본격적인 러닝을 위해 얼른 헬스장으로 향했다.



헬스장에 들어서니 러닝머신 위에서 열정적으로 달리는 형광색 러닝화가 보였다.

키도 크고 건장한 청년이다. 예전에도 여러 번 봤는데, 절대 멈추지 않는, 말 그대로 '인간 러닝 머신'이다.

쾅쾅쾅 발걸음 소리도 웅장하고, 보폭도 엄청 크다. 속도도 당연히 빠르다. 힘이 넘친다.

그야말로 러닝머신을 잡아먹을 듯 내달리고 있다. 강렬한 형광색 러닝화 때문에 더욱 시선강탈이다.

그가 언제부터 뛰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내 인생이 걸린 아주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는 듯 그가 달리는 러닝머신 하나 건너 자리에 올라갔다.

아쉬탕가 요가를 했으니 발목도 돌릴 필요 없다. 휴대폰에 스포티파이 앱을 켜고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강렬한 음악이 시작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에너지가 풀충전된 상태라는 걸 상기하며 8.7의 속도로 세팅하고 바로 달렸다.

보폭도 형광색 러닝화에 비해 훨씬 좁고, 속도도 느리지만 어떤 시합(?)이든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경기 운영의 묘수다. 방금 전 아쉬탕가 요가를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힘을 주고 섰던 내 모습. 발꿈치부터 허리, 목, 정수리까지 일렬도

힘이 꽉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요가를 한 다음 러닝을 하면 몸이 가벼운 상태라 그런지 더 쉽게 달릴 수 있다. 요가에 실패했던 그날도 러닝은 환상적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아쉬탕가 요가를 한 나다. 평소보다 잘 달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헬스장 창문도 열려있어, 간간히 바람이 들어와 시원했다.

분명 기분 좋게 달리고 있는데, 자꾸 형광색 러닝화가 신경 쓰인다. 좀처럼 속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멈출 생각도 전혀 없는 듯 보인다. 지금 이 상황을 경기라고 생각한 것부터 잘못된 판단이었다.


" 무슨 일입니까? 중년 아줌마 임지원 선수, 절대 멈추지 않는 인간 러닝머신

일명 형광색 러닝화를 만나 아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네요.

러닝화 컬러만 봐도 형광색이 압도적이거든요,

임지원 선수의 아이보리색 러닝화로는 저 오렌지 형광색을 상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속도 8.7을 유지하며 경기를 운영하는 임지원 선수의 평정심,

저 강력한 멘털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달리기 시작한 지 39분이 지나면서, 난 확실히 패배(?)를 직감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 스스로 자부심을 챙기며, 승부를 인정하고(?) 예정된 40분을 채우고 러닝머신에서 깔끔하게 내려올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형광색 러닝화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못 뛰, 아니 안 뛰겠다는 듯 속도를 낮추고 걷는다. 무슨 일이야?... 이래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인가?

내가 달리고 있는 러닝머신 주변으로 기쁨의 폭죽이 팡팡 터지기 시작했다.


" 마지막 순간 승부가 뒤집혔습니다! 임지원 선수, 형광색러닝화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네요.

승부와 상관없이 경기 내용만으로는 충분히 대등했거든요, 아주 멋진 승부였습니다!

아무래도 멘털 싸움에서 유리했던 걸까요? 기량면에서는 형광색 러닝화선수가

훨씬 월등했는데 말이죠!"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으며 2분을 더 달렸다. 그리고 41분 20초에 STOP버튼을 누르고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사실 그 청년은 내가 요가를 하는 50분 동안 계속 달렸을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봐온 아주 대단한 인간러닝머신이니까. 그런 청년과 내가 시합을 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래도 그 순간은 마치 내가 승리한 듯 바보 같은 성취감에 도취되고 말았다. 늘 그렇듯.


"너 야망 있니?"


살림이 재미없는 이유를 알겠다. 야망이 있는데, 경쟁 없는 살림이 재밌을 리가 있나? 그렇다 해도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이 가는 만큼 몸이 따라줄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철이 드는 것인가?


요가를 하면서 느낀 건데, 안정감 있게 서는 자세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발을 힘을 주어 바닥에 잘 고정시키고 균형을 잡는 것, 그게 핵심인데, 어렵다. 요가를 하기 전엔 '서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도 해본 적도 없는 거 같다. 지금은 두 발로 제대로 서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강사님의 지시대로 발가락과 척추에 힘을 주고 서면 왠지 자신감이 생기고 안정감도 느낀다.


KakaoTalk_20230429_195337834.jpg 우연이가 그려준 (미래의) 내 나무자세


이제 요가는 두 발을 물론이고 한 발로 제대로 서라고 한다.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단단하게. 그건 아직 못 하겠다. 그런 건 언제쯤 가능할까? 한 발을 넘어 마음까지 나무처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상상을 해본다. 중년이다. 야망보다는 평정심이 더 유익할 것이다.




그날의 러닝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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