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지원 Dec 11. 2023

흑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24. 6월 14일: 유치원 짝꿍이었던 그 아이 이야기. 

6월 14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나에게 늘 똑같은 질문을 한다.      


“오늘은 까불이들 사고 안쳤어? 또 의자 돌렸어?”      


우리 반 까불이들의 활약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배를 잡고 웃는다.      


“너 기억 안 나? 너 동한이랑 유치원 같이 다닐 때...” 

“제발 그 얘기 좀 그만해!”     


엄마가 엄청 좋아하는 일명 ‘뿌셔뿌셔 바비큐 맛 사건’이란 게 있다. 

난 이제 기억도 안 난다! 유치원 소풍날 동한이와 내가 버스 짝꿍이 됐는데

내가 동한이에게 소풍 간식으로 뿌셔뿌셔 바비큐 맛을 꼭 사 오라고 했다는 거다!      


나나야, 너 진짜 왜 그랬니? 


동한이는 엄마 아빠에게 소풍 간식으로 뿌셔뿌셔 바비큐 맛을 꼭 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고 

다른 과자를 이미 사둔 동한이 아줌마는 왜 꼭 그래야 하냐고 물어보셨다.

그때 동한이가 소풍 버스 짝꿍인 나나가 뿌셔뿌셔 바비큐맛을 꼭! 사 오라고 했다고 말한 것이다! 

동한이의 엄마 아빠는 나를 아주 영악한 여자 아이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나나야, 너 진짜 왜 그랬니?


동한이 아줌마가 그걸 우리 엄마에게 그걸 이야기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이 사건이 왜 그렇게 재밌는 거지? 

난 그냥 잊고 싶을 뿐이다. 


사실 엄마는 내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편이라 과자는 절대 사주지 않는다. 

내 간식은 주로 밤과 고구마였다! (끔찍해!) 

뿌셔뿌셔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간식으로 먹어본 거다. 

아주 맛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과자를 동한이에게 사 오라고 하다니... 


나나야, 너 진짜 왜 그랬니?  


“엄마, 동한이는 오늘도 의자를 막 돌리고 엄청나게 까불고 

 선생님 동생 이름은 한라산일 거라고 떠들고 난리를 쳤어! 됐어?”     


“예전에는 동한이가 바지가 자꾸 내려가서 엉덩이도 살짝 보였잖아, 

 설마 지금도 엉덩이 보이는 건 아니지?”     


“제발 그만!!! 난 이제 열두 살이야!! 남자애 엉덩이 따위에 관심이 없다고!”    

 

나나야 너 진짜 왜 그랬니?!!       


문제는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다. 

우리 엄마 아빠처럼 동한이 엄마 아빠도 계속 이 사건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사촌동생들 암튼 아는 사람들 모두...

그러니까, 나의 이 뿌셔뿌셔 바비큐맛 사건이 지금도 계속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끔 찍 해! 


그런데 생각할수록 너무너무 이상하다. 

그때만 해도 동한이는 말도 없고 왠지 슬픈 강아지처럼 보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초강력 울트라 슈퍼 까불이가 된 거지? 

진짜 내일은 한번 물어볼까? 

날 보면 가끔 웃기도 하던데, 뿌쎠뿌셔 바비큐맛 사건 때문인가?   

그렇겠지. 나도 가끔 널 보면 엉덩이가 생각나. 

동한아 왜 넌 그렇게 바지가 내려가도록 놔둔 거니... 

  


수아는 아직도 학교에 오지 않고 있다. 

강민이는 점심시간에 까불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엉덩이 때리는 학원이 문을 닫아서 당장 해야 할 숙제는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스탠드에 앉아 급식 먹고 토크쇼를 하던 중이었는데, 

다정이는 강민이 축구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며 아주 좋아했다. 


강민이는 다정이를 좋아하는 거 같진 않다. 

상처받을 다정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나도...  왠지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거 같은 기분이다. 확실히 행복한 느낌은 아니다.


강민이는 멋진 기사가 아니다. 밍밍한 브로콜리다.

강민이는 공주를 구산 멋진 기사가 아니다. 밍밍밍밍한 브로콜리다.

밍밍밍밍밍밍밍한 브로콜리!!!


이전 08화 첫 데이트 감성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