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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Dec 08. 2023

첫 데이트 감성일까?

23. 6월 10일:강민이와 함께 수아 병문안을 다녀오다!

이 글은 

([연재 브런치북]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 1 (brunch.co.kr)에 이어 

([연재 브런치북]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 2 (brunch.co.kr)로 

이어지는 일기 형식의 창작 이야기입니다.  

01화 그럭저럭 일기장이란? (brunch.co.kr) 1화부터 읽으시면 좋아요.



6월 10일

정말 긴 하루였다. 많은 사건이 있었다. 

오늘 나의 하루는... 진짜 엄청나다. 뭐부터 써야 하지? 

       

일단, 오늘 체육시간에 모둠별로 준비한 탈춤을 발표했다. 

우리 모둠은 오 마이 걸의 ‘살짝 설렜어’에 맞춰 탈춤을 췄는데, 

그 주동한과 까불이들이 ‘살짝 설렜어! 나’를 ‘살짝 지렸어 나!’로 바꿔 불러댔다.

(도대체 뭘 지려!!) 체육 선생님의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또 그 공포의 ‘친구야!’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 대담한 까불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도발했다. 

이번엔 ‘살짝 설렜어 나’를 ‘살짝 혼났어 나!’로 또 바꿔 부른 것이다!     

까불이들의 생명력은 진짜 대단하다. 

내 생각에는 주동한 같은 까불이들은 체육선생님한테 ‘친구야!’ 공격을 받아도 

지난번 다정이만큼 안쓰러워 보일 거 같진 않다. 비결이 뭘까? 

아무 때나 내뱉는 ‘설사 똥 가루’ 같은 더러운 말에 무슨 파워가 있는 걸까? 

진짜 1학년 때 조용한 아이였는데... 한번 물어보고 싶다.     


 “주동한! 넌 어쩌다 그런 까불이가 된 거니?”    


지금까지는 서론에 불과하다. 본론은 지금부터다. ( <-이 문장 뭔가 열두 살이 쓰기엔 고품격 아니야? 큭큭)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 도서관에 갔는데, 강민이가 혼자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나는 강민이에게 다가갔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제 강민이에게 말할 때가 된 거다.

       

“강민아. 나 수아 병문안 갈 건데, 같이 갈래?”      


내 말을 들은 강민이는 한숨을 쉬며 풀던 수학문제집을 바라봤다. 

역시나 끔찍한 수학문제가 가득했다. 강민이가 불쌍하다!    


“너 수아 걱정하고 있잖아. 나도 걱정돼. 수아한테 꼭 해줄 말도 있고.

 수아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나도 예전에 치료받은 적이 있거든, 멀지 않아.”

“오늘 여기까지 다 풀어야 해. 오후에 학원도 가야 하고...”

“그 엉덩이 때리는 학원?”

“응...”

“그럼 내일은?”

“내일은 영어 학원... 근데, 넌 학원 안 다녀?”

“응. 난 수영장만 다녀.”

“독서논술 학원 다니는 줄 알았어. 넌 글을 잘 쓰잖아.”     


“강민아!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나한테 글 잘 쓴다고 말한 거야?”라고 다시 물어볼 뻔했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미소만 지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강민이가 나한테 글을 잘 쓴다고 말한 거야? 크하하 

내가 쓰고 있는 ‘이스티아의 카시니아’를 읽으면 기절하겠군! 

수학 문제집 때문에 고통당하는 강민이에게 모모의 회색신사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강민이의 시간을 뺏으면 안 될 거 같아 그냥 교실로 돌아왔다.

그냥 나 혼자라도 수아의 병문안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백록담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고 교실을 나왔다.

든든한 뼈안심 병원으로 가는 큰길로 이어진 후문 쪽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강민이가 달려와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수아 병문안을 같이 갈 수 있다는 거다. 

기분이 엄청 좋아 보였다.      

강민이, 너 수아가 그렇게 보고 싶었니? 놀리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책가방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나의 끔찍한 미니폰(5학년이 스마트폰도 아닌 미니폰을 쓴다는 것은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딱 2시간만 놀 거라고 말하고 강민이랑 둘이 수아가 있는 

든든한 뼈안심 병원을 향해 걸었다.          


“강민아, 너 혹시 모모 알아?”

“모모? 모모가 뭐야?”

“어떤 아이 이름이야.” 

“네 친구야?”

“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모모가 누군데?”

“사실 모모는 미하일 엔데라는 독일작가가 쓴 소설인데, 내 운명의 책이야. 

 우리 학교 도서관에도 있으니까 한번 읽어봐.”

“책 읽을 시간 없어. 엄마도 내가 책 읽는 걸 싫어해. 학원 숙제가 먼저니까.” 

“오늘 학원은 안 가도 되는 거야?”

“응! 학원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봐. 당분간 문을 닫는다는데?”

“진짜? 잘 됐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때린 학원이 당분간 문을 닫게 됐다. 

이런 걸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하는 것인가? 

병원에 도착해 내가 입원했던 병실 근처를 둘러봤다. 

금방 수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수아는...

      

난 수아가 아파서 누워있을 줄 알았다. 팔이 골절된 그때의 나처럼. 

내 예상과는 달리 수아는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식판으로 쓰는 테이블 위에서...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강민이도 그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 거 같았다. 

수아 아줌마는 병실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수아 골반뼈에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오히려 잘됐다고, 학교에서 버리는 시간이 없으니 

문제집도 더 많이 풀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수아 아줌마의 전화 통화 목소리를 들으며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수아 아줌마가 병실 밖으로 나가길 기다렸던 거 같다. 

잠시 후 수아 아줌마가 병실을 나갔고 나랑 강민이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수아는 그 식탁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수아야!”     


내가 부르자 수아가 고개를 들었는데,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강민이는 수아에게 학원이 한동안 문을 닫게 됐다고 말해주었다. 

수아는 알고 있다며 학원이 문을 닫아도 문제집은 계속 풀어야 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혹시 산타할아버지처럼 생겼냐고 물어봤다. 

수아는 그렇다고 했다. 

가끔 윙크도 하냐고 물었다. 

수아는 또 그렇다고 했다. 

병실을 나오기 전 가슴이 두근두근 했는데, 

그건 수아에게 해주려고 한 귓속말 때문이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사실 2학년 때 네가 나 뺨 때린 거 때문에 오랫동안 널 미워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밉진 않아. 너 퇴원하고 학교에 오면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자. 

 네가 원하면 급식 먹고 토크쇼에 와도 좋고. 파자마파티 멤버인데 잘 지내야지.”

            

수아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수아가 내 귓속말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말을 수아에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해냈다. 


박나나, 너 좀 멋진데?      


집으로 오는 길에 강민이랑 해리포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강민이는 해리포터 시리즈 중 ‘불의 잔’이 제일 재밌다고 했다. 

나는 ‘혼혈왕자’가 재밌었지만 그냥 나도 그렇다고 했다.

      

나나야, 너 왜 그랬니?


‘불의 잔’도 재밌긴 하다. 물론 혼혈왕자만큼 아니지만.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왠지 금방 뚜껑을 연 슬라임처럼 투명하고 탱글탱글!

이거 설마 첫 데이트 감성인가? 크크  

사실 걸어오면서 강민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왠지 말하기 힘들었다. 

늦었지만, 일기장에라도 해볼까? 

      

“강민아 난 해리포터 시리즈 중에 님파도라와 리머스 커플의 사랑이 

 제일 멋진 거 같아! 님파도라가 메타모프마구스여서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리머스는 늑대인간이거든. 

 리머스는 자기 때문에 님파도라가 늑대인간을 낳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데, 

 다행히 님파도라는 늑대인간을 낳지 않아.  

 하지만 둘은 호그와트 전쟁에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게 되거든...

 난 이 둘의 비극적인 사랑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     


내가 이 얘기를 한다면 강민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모르겠다. 상상이 안 된다.      

강민이가 보리수나무가 우거진 아파트 후문까지 날 데려다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엄청 혼났다. 

엄마는 내가 놀이터에서 노는 줄 알고 나와 친구들에게 간식을 주기 위해 

학교 근처 놀이터를 다 헤매고 다니셨다고 했다. (엄마 나 지금 5학년이야!!)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무시무시한 등짝 스매싱을 각오하고 

수아 병문안을 다녀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수아가 병실에서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 

엄마의 ‘미친 여편네’가 또 시작됐다. 덕분에 날 혼내는 걸 깜박하셨다. 휴우 다행이다!      


나는 그냥 수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솔직히 질투했던 거 같다. 

수아를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수아는 여드름도 없고, 예쁘고, 수학문제집을 잘 푸는 아이다. 

나는 글을 잘 쓰고,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건강하고, 생리를 하지만 귀여운 아이다!

        

어쩌다 보니 강민이에게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이스티아의 카시니아’에 대해 말했다.

강민이가 나한테 학원에 안 가면 뭘 하냐고 물어봤는데, 뭔가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침대에서 뒹굴며 멍만 때리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 않나? 거짓말도 아니다. 

멍을 때리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면 소설을 열심히 쓰기도 하니까! 

강민이는 내 소설 이야기를 엄청 재밌어했다.  

완성되면 보여 달라고 했는데, 보여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환상의 세계 이스티아에서의 모험은 거의 끝났지만, 하지만 집에 남아 있는 엄마 아빠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어떡하지? 아무튼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다.

너무너무 졸린데, 자고 싶지 않다. 나 왜 그러지?  

강민이는 지금 자고 있을까? 

어쨌든 엉덩이를 때리는 학원이 문을 닫게 된 건 정말 잘 된 일이다.

강민이와 수아의 엉덩이가 행복해졌다.  

그런데, 왜? 왜 갑자기 학원이 문을 닫게 된 거지?  

설마... 매를 맞던 그 엉덩이들이 힘을 합쳐 수학학원을 공격한 걸까?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엉덩이들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된 수학학원이 있다고 합니다!"  


아, 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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