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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Dec 06. 2023

파자마 파티의 추억

21. 5월 20일:회색신사의 마지막 공략대상

이 글은 

([연재 브런치북]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 1 (brunch.co.kr)에 이어 

([연재 브런치북]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 2 (brunch.co.kr)로 

이어지는 일기 형식의 창작 이야기입니다.  

01화 그럭저럭 일기장이란? (brunch.co.kr) 1화부터 읽으시면 좋아요.


5월 26일


 최고로 멋지고, 좋은 백록담 선생님도 결국은 선. 생. 님.이다.

수학 시험지에 엄마 사인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까불이 주동한도 백점을 맞았지만, 난 네 개나 틀린 바로 그 시험지...


그 문제의 시험지에 엄마 사인을 받아야 했다.  

내 시험지를 본 엄마의 표정이 묘했다.

분명 못마땅한데,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티가 났다.

내 생각에... 엄마는 궁금했을 것이다. 수아는 몇 점이니? 다정이는 몇 점이니?

분명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물어보지 않고 그냥 사인을 해주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결국 나도 수아, 강민이처럼 수학학원의 노예가 돼야 할 운명인가?  

어차피 그렇게 될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멋진 ‘브로콜리 기사’ 강민이와 함께!!!


          

“강민아, 네가 다니는 수학학원 어때?”

“나나야, 너 수학학원이 재밌길 바라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지만, 설마 끔찍해?”

“아마도.”

“얼마나, 어떻게 끔찍한데?”

“... 정말 알고 싶어?”

“당연하지!”


“... 숙제를 안 해가면 엉덩이를 맞아, 틀려도 엉덩이를 맞아.”


“뭐... 뭐. 라. 고? 엉덩이를? 때려? 진짜 때려? 엄마한테 일러!! 가만두지 않으실걸?”

“... 우리 엄마도 아실 거야.”

          

도대체 수아와 강민이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수학학원에서 엉덩이를 맞는 열두 살 인생이라니... 이건 너무 끔찍하다.

그렇다면 수아 아줌마도 수아가 학원에서 엉덩이를 맞는 걸 알고 있다는 건가?

말이 돼? 문득 2학년 때 수아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했던 날이 떠올랐다.

이건 나름, 아니 분명, 즐거운 추억이다!
     


지금은 전학을 가서 볼 수 없는 다율이 와 나, 그리고 수아.

우리는 같은 반이면서 한자 방과 후 수업까지 같이 듣는 삼총사였다.

어느 날인가 수아가 입을 가리지 않고 하품을 했는데, 방과 후 한문 선생님한테 딱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방과 후 한자 선생님은 아이들이 하품하는 걸 엄청 싫어했다.  

난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선생님은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하품을 하면 안 되는 거라며 큰 소리로 수아를 혼내며 망신을 주었다.

교실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골고루 꽉 차 있었다. 하품이 그렇게 큰 죄인 줄 처음 알았다.

백록담 선생님이셨다면...  그렇게 큰 소리로 혼내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수아는 평생... 하품을 할 때마다 그날을 떠올릴지 모른다.  

난 하품이 나면 그날이 생각난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엄마랑 수아 아줌마가 운동장 벤치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품 때문에 혼나고 울상이 된 수아는...  빨간 벽돌로 된 학교 건물 벽에 손을 대고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걷고... 솔직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수아 아줌마는 많이 놀라신 거 같았다.

나는 수아가 왜 저러는지 아줌마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입을 가리지 않고 하품을 해서 선생님한테 엄청나게 많이 혼났다고 말이다.  


수아 아줌마도 엄마도 엄청 화가 났다. 엄마는 다율이 아줌마한테까지 연락을 했다.

결국 우리 삼총사는 한자 방과 후 수업을 다 같이 그만뒀다.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을까? 수아를 위로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날 저녁 우리는 다 같이 수아네 집으로 파자마파티를 하러 갔다.

수아 집엔 드레스가 많았다.

제일 멋진 엘사 드레스는 수아가 입었다. 백합처럼 예쁜 핀도 수아가 꽂았다.

나는 안나 드레스를 입었다. 다율이는 드레스가 맞지 않아 화가 났다.

그래도 수아 아줌마가 한복을 주셔서 그걸 입고 빙글빙글 돌며 드레스 기분을 만끽했다.

이런 멋진 것들은 우리 엄마는 절대 사주지 않는 거라 나는 수아가 엄청 부러웠다.

우리는 거실에서 레드벨벳의 ‘빨간 맛’ 노래에 맞춰 춤도 추었다.

그날 밤은 진짜 진짜 재밌었다! 파자마 파티의 추억.

       

 수아가 입원해 있는 그 든든한 뼈안심 병원에 한 번 가볼까?

3단지 앞 버스 정류장에서 58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걸어가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엄마가 허락을 해줄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수아 아줌마는 아직 ‘미친 여편네’니까...  

                         *왜 그런지 궁금하시면, 02화 열두 살에게 최악이란? (brunch.co.kr)

      

 강민이가 다니는 수학 학원을 다니는 건 힘들 거 같다.

아쉽긴 하지만 엉덩이까지 맞으면서 학원을 다닐 수는 없다.

수학 시험에서 무려 네 개를 틀리는 나다. 


인정할 수밖에 없어!  


이런 내가 그 학원에 간다면 진짜 엉덩이에 불이 날 정도로 매일매일 두들겨 맞을 것이다.

쉬는 시간이고 급식 시간이고 가릴 것 없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강민이가 불쌍하다.

끔찍하다 끔찍해! 어쩌면, 지금 강민이에게 필요한 건 ‘모모’ 일지 모른다.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들은 어린이의 시간을 뺏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맨 마지막 공략대상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결국 모모의 회색 신사들은 그 어려운 걸 해낸 것인가?


내 생각에 수아 아줌마는 수아를 엄청 사랑하는 거 같았다. 

드레스를 입은 수아는 분명 공주님이었다!

그런 수아가 수학학원에서 엉덩이를 맞고 있다.    

왜 아줌마는 수학학원에서 수아의 엉덩이를 때리는 걸 그냥 놔두시는 걸까? 


수아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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