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지원 Dec 05. 2023

브로콜리와 멋진 기사

20. 5월 19일:밍밍한 브로콜리가 아니라 멋진 기사로 보여!

이 글은 

([연재 브런치북]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 1 (brunch.co.kr)에 이어 

([연재 브런치북] 나나는 그럭저럭 열두 살 2 (brunch.co.kr)로 

이어지는 일기 형식의 창작 이야기입니다.  

01화 그럭저럭 일기장이란? (brunch.co.kr) 1화부터 읽으시면 좋아요.



5월  19일


 수학 시험을 봤는데 나는 총 20개의 문제 중 네 개가 틀렸다. 

솔직히 네 개를 틀리는 건 엄청 부끄러운 일이다.(네 개 중 두 개는 진짜 실수로 틀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 맞았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주동한, 그 까불이마저 백점을 맞았다며 의자를 돌렸다. 

몇 명은 딱 한 개 틀리고 징징댄다. 매번 백점을 맞은 듯 엄살을 떤다. (아주 꼴불견이다!) 

그런데 난 네 개를 틀린 것이다. 

국어시간에는 박작가님이라 불렸는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옆에 앉은 강민이 시험지는 100점이었다. 예은이도 100점. 

다정이는 90점, 다정이는 90점도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엄마 아빠를 만난 다정이는 열 개를 틀려도 혼 날 리 없다. 

물론 나도 네 개를 틀렸다고 엄마한테 혼나진 않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돼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다. 

내가 이른둥이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무려 일곱 살에 초등 고학년이 읽는 동화

(전에도 말했지만 마틸다나 해리포터, 나니아 시리즈 같은!)를 읽었다. 

이런 내가 이까짓 숫자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 원통할 뿐이다.      

 

강민이는 백점을 맞았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자랑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믿을 수 없게도!) 또 문제집을 풀고 있다. 정말 끔찍하다. 

강민이가 푸는 문제들은 중학생이나 어쩌면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풀 만한 것들이다. 

나도 강민이랑 같은 수학학원을 다니면 백점을 맞을 수 있을까? 

강민이와 수아는 같은 수학학원을 다니면서 친해졌다. 

나도 강민이랑 같은 수학학원에 다니면 수학 시험 백점 맞고, 강민이 와도 친해질 수도 있을까? 

강민이랑 나란히 앉아서 수학문제를 푸는 기분은 어떨까?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난 강민이와 수아가 푸는 수학문제는 절대 풀지 못할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적어도 난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는 않는다. 

계단 다섯 개를 한꺼번에 뛰어내리겠다는 까불이들에게 

“너희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마!”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럼에도 까불이들은 꼭 뛰어내린다. 박승기는 다섯 계단을 뛰고 난 후 다리가 골절됐다. 

한 동안 깁스를 하고 엄마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그렇다고 다 넘어져 다치는 건 아니다. 몇몇은 착지에 성공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 왜 갑자기 딴 소리를 하는 거지? 뭐 어때? 

이 일기는 적어도 선생님께 검사를 받기 위해 쓰는 일기는 아니니까 괜찮아! 

만약 이 일기를 체육 선생님이 보게 된다면? 

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 으악 끔찍해!!!


수아가 시험을 봤다면 분명 다 맞았을 텐데, 수아는 운동장에서 넘어진 이후 학교에 오지 않고 있다. 

아직 든든한 뼈안심 병원에 누워있는 모양이다. 

강민이는 지금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을까? 아니면 영어공부? 

나도 강민이처럼 수아처럼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걸까? 언니에게 물어볼까? 

이번 주말에 언니가 집에 오면 물어봐야겠다.       

오늘 이상하게 교실에 있는데 자꾸 강민이만 눈에 띈다. 

어쩌면, 그러니까 어쩌면 나... 


강민이를 좋아하는 건가? 


밍밍한 브로콜리처럼 보이던 강민이가 

지금은 괴물에게 잡혀 목숨이 위태로운 공주를 구한 멋진 기사처럼 보인다.

나 어떡해~~~   

      



이전 04화 공포의 체육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