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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Dec 01. 2023

자물쇠 같은 마음

18. 5월 4일: 여자친구랑 싸우고 화해할 수 있는 나이는?

5월 4일


학교에 가자마자 백록담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수아는 지금 어때요?”

“나나, 수아 걱정했구나?"

“저 '괜찮아 모둠팀장'이잖아요.”  걱정 안 한 것처럼 보이고 싶었나?  

“수아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네.” 

“아... 어느 병원이요?”

“병원이... 이름이 꽤 길던데... 잠깐만”

“혹시 든든한 뼈안심 병원요?”

“어! 맞아! 나나도 그 병원 아니?”     


 거긴 내가 3학년 때 갔던 병원이다. 병원 이름이 참 이상하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뼈가 든든해져서 안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뜻이겠지만, 병원 이름을 말할 때마다 스테이크가 생각난다. 읔 이상해!  


아무튼 수아가 든든한 뼈안심 병원에 입원을 했다면 

3학년 때 나를 치료했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도 만났을 것이다. 

그분은 왠지 산타 할아버지 같다. 내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자, 

그 의사 선생님은 저런 엄마 꼭 있어! 하는 지루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보며 윙크를 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첫 날밤이 제일 힘들다. 

첫날 맞는 링거주사는 최악이다. 밤에는 잠이 안 온다. 

수아도 이런 끔찍한 밤을 보냈을까?        


동한이가 웬일로 가만히 앉아 있다. 말도 없다. 까불이들도 함께 조용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수아를 다치게 한 장본인이 됐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물론 그때 까불이들은 날뛰었고, 동한이는 텀블링을 했다. 그래서 수아가 다친 건 맞다. 

하지만, 우리는 운동장에서 늘 그렇게 논다. 

물론 수아가 내 뺨을 때렸다고 내가 까불이들 편을 드는 건 절대 아니다. 

백록담 선생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나 보다. 

동한이를 불러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동한이가 풀 죽어 있는 걸 보느니 차라리 까부는 걸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불이들은 까불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나저나 동한이는 왜 갑자기 까불이가 된 거지? 진짜 궁금하다. 

나중에 한 번 물어볼까? 

어쨌든 지금 나는 수아를 걱정하고 있다. 

내 평생의 원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그런데 나 왜 이렇게 걱정하는 거지? 

든든한 뼈안심 병원이라면 한번 가볼 수도 있을 거 같다. 

예전에 엄마랑 버스를 타고 가본 적이 있다. 하지만 수아가 나를 반가워할까? 잘 모르겠다.     

친한 여자 친구와는 싸우고 나면 화해를 했다고 해도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는 것 같다. 

남자 친구와 싸우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다.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화해하는 건 1학년 1학기까지는 가능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절대 안 된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다.

그게 뭐 어렵냐는 듯 “얘들아 화해해!”라고 편하게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 말은 “얘들아, 둘이 손잡고 저 멀리 우주로 가렴! 출발!”하는 거 같다. 

우주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고, 익숙하지만 평범한 아이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다. 

내 생각에 열두 살 여자아이의 속마음은 열쇠가 없는 거대한 자물쇠 같다. 

웬만해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고요, 잘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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