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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30. 2023

우울할 땐 우울할 수 밖에 없다.

17. 5월 3일: 열두 살에게도 우울한 하루는 있어요. 

* 이 글은 열두 살 소녀 나나의 일상을 담은 일기형식의 동화입니다. 

   01화 그럭저럭 일기장이란? (brunch.co.kr)부터 순차적으로 읽으시면 좋아요.  


지난 이야기:

그럭저럭 일기장을 쓰는 주인공 나나는 자신의 뺨을 때린 수아라는 친구와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답니다. 파자마파티 친구였던 친구였지만 지금은 멀어져 어색해진

나나와 수아는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요? 



5월 3일


 티볼을 하는 체육시간이었다.   

우리 반 까불이들이 운동장 한가운데서 날 뛰고 있었다.  

텀블링을 하고,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그러다가 막 달리고 또 텀블링을 했다.

체육 선생님은 어디 계셨지? 아무튼 운동장엔 우리만 있었다.

까불이들의 텀블링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동환이가 텀블링을 하고 떨어지는 순간

마침 거기 수아가 있었다. 떨어지는 동환이와 함께 수아가 넘어졌다. 

가볍게 툭 부딪힌 것처럼 보여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수아는 일어나지 못했다. 

청설모처럼 날 뛰던 동한과 까불이들도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넘어진 수아에게 다가갔다. 

나도 수아에게 달려가서 살펴보고 싶었지만, 

어디 선가 나타난 체육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까지 수아에게 달려가는 바람에 나는 낄 틈이 없었다. 

체육 선생님이 수아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셨다. 

수아는 대답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이때 강민이가 백록담 선생님과 함께 급히 운동장으로 뛰어왔다.

백록담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아를 살피셨다. 

옆에 서 있던 강민이 표정도 아주 심각해 보였다. 

강민이는 수아를 좋아한다. 그런 표정을 짓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아를 두고 선생님들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셨다. 분위기가 아주 심각했다.

나도 조금 무서웠다. 걱정이 됐다. 그리고 잠시 후 운동장으로 구급차가 들어왔다. 

구급차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구급대원이 바닥에 누운 수아를 조심스럽게 들어 간이침대에 눕히고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차가 나가고 운동장은 한참 동안 조용했다. 

강민이 표정만 심각한 줄 알았는데, 동환이와 까불이들이 더 큰 충격을 받은 거 같았다. 

겁에 질린 동환이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 순간 내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렇게 심하게 부딪힌 거 같지 않았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수아는 괜찮을 거야.”     


구급차에 실려 간 수아가 괜찮을 리 없다. 

하지만, 꽁꽁 얼어버린 동환이의 표정을 보니 이런 뻔한 말이라도 해줘야 할 거 같았다.    

강민이도, 동환이와 까불이들도 수아를 걱정했다. 나도 수아가 걱정됐다.   

왠지 수아에게 2학년 때 내 뺨 때린 거 용서할게!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생기네... 수아는 괜찮을까?        


 엄마가 조르바 할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고 기분이 나빠졌다.

외할아버지가 또 주식투자를 하신 모양이다. 아니면 병원을 안 갔거나, 그것도 아니면 

술을 마셨거나 하는 그런 일일 것이다. 이런 일은 자주 생긴다. 

저녁에 엄마가 삼겹살을 구워주셨다. 김치도 같이 구워주셨는데, 너무너무 맛있어서 

나는 밥을 계속 더 먹었다. 그런데, 아빠가 엄마의 오이고추된장 무침이 짜다고 하는 바람에 

조르바 할아버지 때문에 나빠진 엄마의 기분이 더더더 나빠지고 말았다.  

나는 짜지 않고 완전 맛있다고 말했다. 엄마의 기분이 나빠지면 안 된다. 

엄마가 우울해지면 절대 안 된다. 엄청 조심해야 한다. 아빠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지? 

그냥 맛있다고 하면 될걸... 아빠에겐 알려주고 싶은 게 많다.


 오늘 밤은 웬일인지 기분이 좋지 않다. 수아는 지금 병원에 있을까? 

넘어지면서 뼈라도 골절됐으면 어떡하지? 난 3학년 때 팔이 골절된 적이 있다. 

공원에 있는 시소에서 떨어졌다. 응급실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뼈를 맞춘다고 내 팔을 잡고 

비틀었다. 난 죽는 줄 알았다.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엄청나게 아픈 기억이다. 

내 평생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수아도 그때의 나처럼 아픈 걸까? 


예전에 나랑 파자마 파티를 할 때 수아는 잘난 척 쟁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고 신나는 친구였는데, 요즘 수아는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수아야,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물어보기 싫기도 하다. 모르겠다.

그럭저럭 일기장이 나에게 물어보는 거 같다. 이렇게. 


"박나나, 너 평생 수아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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