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카리 Dec 27. 2021

내 안엔 프로도가 산다

쓰레기 줍기에서 또 1등을 했다고?

The watch is mine
(이 애플 워치는 내 꺼야)



덜컥, 1등을 해버렸다.

상품은 애플워치, 가격은 539,000원.




나는 환경보호를 향한 투철한 의무감이 없다

줍젠은 제주도와 여러 단체에서 후원하는 쓰레기 줍기 프로젝트다. 1회는 김녕에서, 2회는 이호테우에서 열렸다.

별로 특별한 건 없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인적으로 마대를 받아 알아서 비치클린(봉그깅)을 하면 된다. 다만 선착순 300명에게 각종 관광지 입장권을, 가장 쓰레기를 많이 주운 사람에게는 최신 애플워치를 준다.


내게 비치클린(봉그깅)은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다. 할 것도 없는데 해변가에서 스쿼트 삼아 쓰레기 좀 주우면 멋진 일 했다고 손뼉을 쳐준다. 그리고 쓰레기 줍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만의 멋진 철학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다.


그동안 한림항이나 판포포구처럼, 내가 사는 조천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열리는 비치클린에 참여했었다. 그에 비해 줍젠은 참 가까운 곳에서 열렸다. 주말에 특별히 할 것도 없는 나는, 참여하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얼마나 심심했는지, 일반 참여자가 아니라 스태프로 지원했다. 온종일 그곳에서 행사 진행을 도와주는 역할이다. 그러면서 줍젠을 운영하는 '제주미니'를 만나고 싶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까? 궁금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태프는 떨어졌고, 일반 참여자로 줍젠에 갔다.


1회 줍젠. 이곳에서 마대와 상품(관광지 입장권)을 받는다.


주최 측에서 나눠주는 마대는 40리터, 작은 사이즈였다. 그에 비해 쓰레기는 많았다. 한림항에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주워보니 30분 정도 했다고, 한두 포대했다고, 성에 차지 않는다. 얼른 채우고 다시 새로운 마대를 받아 쓰레기가 쌓인 바다로 향한다.

줍젠은 수거한 쓰레기 무게를 기준으로 1등을 정했다. 쓰레기를 가져가면 저울에 무게를 잰 후 수거해갔다. 나도 무게를 재러 저울 앞에 기다리는데, 이미 앞에 100kg 넘는 쓰레기를 가져온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만큼의 쓰레기를 수거할 자신이 없었다. 그 무게가 뭐라고, 저울을 기다리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그냥 나는 무게를 재지 않는다고, 그냥 수거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태프분이 말씀하셨다, "무게 안 재세요?"

"괜찮아요, 어차피 1등만 주는데, 저는 그만큼 못 모을 것 같아요 ㅎㅎ"

"그래도 혹시 1등 될지 모르니 무게를 재보시는 게 어때요?"


음... 그것도 맞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하지만 이미 안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괜찮아요. 무게 재면 무거운 것만 가져올 것 같아요."


1회 대회가 열렸던 김녕해수욕장. 날이 참 좋아서 쓰레기를 줍다가 바다를 보면 그 자체로 행복했다.


나는 승부욕이 강하다. 이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20년 정도 교육받았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 잘 알고 있다. 무게를 잰다면, 시간 대비 효율이 좋은 '밀도 높은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으로는 1등 할 수 없다. 고철, 물 먹은 밧줄, 물 먹은 부표가 필요하다.

그 생각이 딱 드니까, 갑자기 피곤해졌다. 경쟁하자고 줍젠에 참여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아예 경쟁에서 빠지는 걸 선택했다.

아, 이왕 무게를 안 재는 김에 아까 선착순으로 받은 '선녀와 나무꾼' 입장권도 반납했다. 처음에 무작위로 받은 관광지 입장권이었는데, 처음 들어본 테마파크였다. 솔직히 나 혼자 가기엔 재미없을 것 같고, 그래서 안 갈 것 같았다. 버리긴 아까우니 다른 사람 쓸 수 있도록 돌려드렸다. 스태프분이 "다른 거로 바꿔드릴까요?" 하셨는데, 거기서 다시 받기도 이상했고, 제2의 '선녀와 나무꾼'이 나올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1회 줍젠은 마감했다. 점심때가 훌쩍 지나고 배가 슬슬 고파져서 그만하고 집에 갔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2회 줍젠이 열렸다.

나는 1회 줍젠과 똑같은 복장으로 참여했고, 스태프 몇 분이 나를 알아봐주셨다. 무게도 재지 않고 입장권도 반납한 것을 좋게 봐주셨나 보다.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는데, 겉으로는 티를 안 냈다.


이호테우 해수욕장에는 쓰레기가 별로 없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테트라포드 주변에는 밧줄이 뒤엉켜 여느 해변과 다를 바 없었다.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고, 이번엔 차를 이용해서 쓰레기를 옮겼다. 1회 대회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 옮기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쓰레기 함께 옮겨준 사대부고 학생들 고마워요)




나는 기부를 향한 투철한 의무감이 없다

예전에 기부와 관련된 책을 한 번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진정한 기부'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돈만 내고 '기부했다' 하며 자기 위안에 빠지는 것은 '진정한 기부'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면죄부와 같은 것이다.

'진정한 기부'란, 기부받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그들이 행복할 방법으로 기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부하면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기부 프로그램인지, 기부 후에 수혜자가 여전히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음... 나는 '진정한 기부'를 할 자신이 없다.


2대 줍젠 환경왕에 선정된 바카리. 세이브제주바다 티셔츠와 디프다제주 가방을 메고 있다.


애플워치를 받는다는 얘길 들었을 때,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갤럭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갤럭시와 애플워치는 호환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경품 받는 처지에서 이걸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 다른 사람 줘야 한다. 가까운 사람 중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싸게 주려고 했는데, 받을 사람도 마땅히 없는 것 같다. 그럼 이건... 중고로 팔아야 할 운명인가...

찾아보니 애플워치가 굉장히 비쌌다. 팔면 50만 원 가까이 생기는 것 같다. 오오? 이게 무슨 거금이지? 이걸로 뭘 할까? 다이빙용품 살까? 여행 갈까? 모니터 살까?


고민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청 간절한 소비는 없는 것 같다.'

쓸 데는 많았는데, 굳이 이 돈으로 사용하지는 않아도 됐다. 즉, 그것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과연 이 돈이 비로소 필요한 곳은 어디고, 어떻게 하면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까?

가볍게 생각 하나가 번뜩인다.


기부


이 돈은 쓰레기를 주워서 생긴 돈이다. 내가 특별하게 뭘 잘한 것은 아니다. 그럼 나를 쓰레기 줍기로 이끌어준 곳에 다시 환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로 활동하는 세이브제주바다, 디프다제주, 플로빙코리아로 말이다. 물론 50만 원은 단체를 운영하는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어쩌면 애매해서 받기도 꺼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기부하면 나 스스로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진정한 기부'는 아니겠지만. 이런 생각한 나 자신을 칭찬해본다.


애플워치가 들어있는 상자. 깔끔하다.


애플워치가 도착해서 내 눈앞에 놓여있다. 포장은 또 왜 이렇게 깔끔한가. 갑자기 마음이 흔들린다.

최근에 교통사고가 나서 수리비도 나갔고, 다이빙 장비도 예상치 못하게 많이 구매했다. 주식은 흘러내려 파랗다. 지갑이 두둑하지 못하다.

그런데 내 눈앞에 50만 원 짜리가 놓여있다.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프로도가 용암 앞에서 반지를 손에 놓지 못한다. 그 위대한 힘의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외친다. "이 반지는 내꼬야 >___<" 그걸 본 샘은 절규한다.

나는 양면적인 사람이다. 기부하면서도 물욕이 공존한다. 돈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5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치킨, 다이빙, 컴퓨터 부품 교체, 갤럭시워치, 주식 투자...

다행히 그 무렵에 봤던 온라인 미담 하나가 나를 다잡았다. 큰 사건으로 고생한 경찰서와 소방서에 사람들이 치킨을 계속 배달해줬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치킨값 2만 원을 왜 그렇게 쉽게 썼을까? 자신한테 무슨 도움이 된다고?


나도 프로젝트를 운영하거나 모임을 이끌었던 적이 많다. 많은 사람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기획한다는 건 쉽지 않다. 여러 사람이 자기 생각만큼 움직여 주지도 않고, 계속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앞장서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을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내가 세이브제주바다, 디프다제주, 플로빙코리아의 대표라고 생각해봤다. 고작 몇십 만원, 얼마 안 되지만 후원이 들어온다면 어떨까? 그 마음이 고마워서 힘이 날 것 같다.



프로도는 결국 반지를 파괴하는 임무를 어떻게든 성공했다.

나도 그럴 것이다.

이전 16화 숨 참으면 죽을 것 같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