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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Oct 28. 2022

왕이 되고 싶군요?

관종과 답정너

나는 어떤 사람일까?

"사실 나는 재벌 2세였는데, 어렸을 적 사고로..." 이따위 출생의 비밀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특성이나 기질을 알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언제 기분이 좋고 언제 화가 나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떤 사람과 잘 맞는가?' 이렇게 나를 잘 알고 있으면 인생에서 많은 문제를 쉽게 넘길 수 있다. 이미 풀이를 알고 있는 문제를 푸는 것과 같으니까.

어쩌면 내가 '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나를 생각보다 잘 몰랐었다. 내가 언제 화가 나는지, 왜 화가 나는지, 스트레스가 쌓일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화가 나면 "저 사람이 날 바보라고 놀렸어" 같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화가 나진 않는다. 나는 화가 나서 "나 바보 아닌데?" 하며 윽박지르지만, 어떤 사람은 "그래, 네 생각은 그렇구나."하고 넘긴다. 그렇다면 화가 나는 이유는 '상대방이 놀려서'가 아니라, '내가 바보라고 놀림 받기 싫어서'가 맞

다. 아, 나는 바보이기 싫구나!


아, 복잡해. 내가 바보이기 싫든, 놀려서든, 그게 중요해? 난 그냥 화가 났다고!

너무 자세하게 파고들어야 할까? 몰라도 생존에는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자세하게 알다간, 지금껏 잘 숨겨온 비밀이나 상처를 다시 마주할 수도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도 하지 않나? 굳이 힘들게 파헤쳐서 뭐 해?

맞는 말이다, 그 말이 옳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어졌다. 나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 밑바닥 끝까지 들춰,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왜 바보가 되기 싫을까? 그걸 듣고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노파심에 덧붙이면, 실제로 바보라고 놀림 받고 화난 적은 없다) 


올해는 유난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이 잘 안된 게 먼저인지, 일에 흥미가 떨어진 게 먼저인지, 실력이 늘지 않은 게 먼저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루의 1/3을 차지하는 일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불행한 생각이 들자, 나는 심리상담센터로 찾아갔다.

나의 끔찍한 그림 실력으로 그린, "힘든 순간"


관종과 답정너

자기 중심성이 강해요, '답정너'네요

(답정너 :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해. 이미 원하는 답을 정해두고 대답을 원하는 사람.)


상담 중에 가장 내 머리를 세게 친 말이다. 상담할 때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많이 당황했다. 내가 '답정너'라고? 에이, 설마!


총 여덟 번의 상담을 관통하는 주제는 두 가지였다. 나는 자기중심성이 높아서 '내가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나를 드러내고 싶어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SNS에 올려서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어느 정도 '관종'(관심종자.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인 것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관종을 좋아하지 않는다. 관심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나로서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비로소 행복해지니까, 중심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에 신경을 쓰게 될 수 있다. 속보다 겉에 신경 쓰는 삶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으랴.

내가 나를 관종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비극이 생긴다. 비극 속에 피어나는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선, 애써 관종을 '다른 사람 존재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으로 포장해야 했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오늘도 꺼림칙하게 고개를 끄덕여 본다.


"이 세상의 중심은 나다. 그러니 내가 옳다." 자기중심성은 답정너를 포함해서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다른 사람의 지적이 상당히 불편했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서 압박감을 느꼈고,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했다. 상담선생님은 내가 내 뜻대로 안 흘러갈 때를 대비해 플랜 B, C, D를 세우게 됐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꼼꼼해서 여러 계획을 세우며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기 위한 치밀한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려서 감투를 많이 썼다. 초등학교 4학년 부반장을 제외하고, 중학교 때까지 항상 반장이었다. 자연스레 '이상적인 리더'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봤는데, 나는 부드러운 리더가 되고 싶었다. 독단적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함께 다독이며 발맞춰 걷는 리더, 그게 멋있었다. 내가 따뜻한 리더를 꿈꿨던 만큼, 적어도 독불장군은 아닐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전문가라는 분은 내 이상적인 모습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내가 목표하며 달려온 길을 부정하는 느낌이었다. 20년 동안 걸어온 여정을 "거기 아닌데?" 한 마디로 콰쾅, 터뜨렸다. 당황스러운 말을 들으니 나 스스로 눈동자가 움찔하며 시야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답정너"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오호통재라.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도 힘든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항상 함께하는 바로 나라니. 받아들이기 어려울뿐더러, 싫다. 나는 관종이자, 비판을 싫어하는 답정너다. 상담선생님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렇게 비유하셨다.

왕이 되고 싶군요?

내게 모두가 맞춰주고,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는 왕. 왕은 절대권력이지만 본인이 왕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끔찍한 그림 실력으로 그린, "재밌는 순간"


"뭐 어떡하겠어."

자신의 기질을 바꾸는 건, 내가 새로 태어날 만큼의 변화가 필요하다. 즉, (완전히) 못 바꾼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DNA에 박힌 내 운명이다. 아무리 멀어지려 발버둥 쳐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숙명. 그 앞에 울부짖어도 내 목만 아플 뿐이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이 복잡했던 내게, 상담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런 사람들은 사업을 해야 잘해요."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과 자기중심성 모두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장점도 강력하다. 추진력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직장 업무를 잘하고 싶으시면,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보세요." 특색 있는 업무를 할 때 자기중심성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상담이 끝나고, 팀에서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성과가 좋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잘된다면 팀에 도움 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아직 화려한 실력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지는 못하지만, 오랜만에 일하고 싶은 동기를 느끼고 손가락에 힘이 생겼다. 공부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내일 시도하고 싶은 방법이 떠올라 출근이 기대됐다. 아주, 아주아주 사소한 즐거움이 느껴져 기분이 무척 좋다.


8번의 상담이 나를 완전히 바꾸진 못했지만, 다시 힘찬 한 걸음을 뗄 수 있도록 나를 일으켰다. 언젠간 다시 주저앉아 쉴 게 뻔하지만, 내 인생은 걷다가 멈추고, 또 걷다가 멈추는 순환이 끊이지 않는 인생인 것을 깨달았다. 이런 변덕스러운 인생이라니, 짧은 한숨을 쉬었지만 나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 될 수 없다면, 손님이라도 되어야겠다.

이게 내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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