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일은 어떻게 재밌고 의미있게 보낼까?
제주에 살면 생일에 돈을 써야 한다. 특히 인싸(친구가 많은 사람)면 인싸일수록 돈이 많이 든다. 생일에 100만 원 넘게 쓴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생일에 돈을 쓴다고? 제주엔 무슨 문화가 있길래 생일에 돈을 쓰게 되는 걸까? 도대체 왤까?
그건 바로 배송비 때문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배송상품을 받으면 제주도 추가 배송비가 발생하는데, 받는 사람이 추가 배송비를 지불해야 한다. 결제할 때 포함된 배송비는 육지 기준이다! 섬에 사는 이상, 배송비는 숙명이기에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씁쓸하다. 만 원도 안되는 걸 받으려고 삼천 원을 쓰는 상황이란...
백만 원을 썼다는 인싸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은 거지?) 육지에 일단 받아두고 다음에 육지 갈 때 가져온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음식이라면 불가능하다.
물론 선물 받는데 그깟 배송비를 아끼냐고 물을 수 있겠다! 어차피 난 인싸도 아니니까 해봤자 얼마나 쓰겠어?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생일엔 태어난 기념으로 베푸는 것이라고 나를 가르쳤다. 그래서 어렸을 때마다 생일에 친구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곤 했다. (엄카 찬스!)
그렇다면 그깟 배송비 정도야!
그래도... 구두쇠인 나에겐... 배송비조차 아까운걸...
아예 그 돈으로 기부를 하고 말지...
기부? 기부를...?
그래, 기부를! 이번에도 생일 기념으로 기부해보자고!
나는 같은 여행은 즐기지 않는다. 같은 음식점에서 같은 음식만 먹는다는 건 나와는 먼 이야기다. 음악도 계속 새로운 노래를 갈망한다.
세 번째 생일프로젝트도 무엇인가 새로워지고 싶다! 지인과 함께 기부한 이전 두 번의 생일프로젝트와는 다르게, 조금 더 재밌게. 생일 한 달 전부터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생일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끝내주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끝내주는 나머지, 생일프로젝트가 점차 거대해지며 생일이 지난 후에 한 달까지도 끝내지 못할 줄이야. 시작할 땐 몰랐지.
이번 컨셉은 내가 직접 기부를 창출하고 동시에 내가 기부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쉬운 말로, 내가 직접 기부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기부자를 모집하고, 필요한 곳에 찾아가 기부까지 한다. "바카리의 생일"이란 이름을 걸고 말이다. 이름하여 <생일프로젝트>, 일단 있어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나는 제주에 살고 취미로 바다 쓰레기를 줍는다. 자연스럽게 내가 제일 잘 아는 해양쓰레기 수거 활동을 프로젝트 소재로 선정했다. 그렇다면 수거 활동을 지원하는 기부활동을 하면 되겠다.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무엇을 지원하면 좋을까?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다 프로젝트가 커져만 갔다. 마치 국이 짜서 물을 넣었더니 싱거워서 소금을 넣고, 다시 짜서 물을 넣기를 반복하다 10인분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같다.
그렇게 고안한 '쓰레기줍기 KIT'는 그동안 내 쓰레기 줍기 경험의 집약체다. 손을 보호하는 코팅된 장갑, 냄새를 방지하는 방수 속장갑, 튼튼한 해양쓰레기 전용 마대, 다쳤을 때 사용하는 알콜스왑, 작은 상처를 위한 종이반창고, 그늘 없는 바다에서 필요한 산호초 보호 썬크림, 쓰레기를 주운 후에 손을 씻을 손세정제까지. 봉사자가 안전하게 쓰레기를 줍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했다. 총 45세트!
우선 생일 바로 직전 주말에 조천 어느 바다에서 쓰레기줍기를 진행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알음알음 홍보해서 9명이 모였다. 초여름 뜨거운 햇빛에도 열심히 쓰레기를 주워주신 멋진 분들은, 기꺼이 나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까지 불러주셨다. 근래에 이렇게 뜨거운 축하를 오프라인으로 받은 적이 있었나 싶다. 쓰레기줍기 KIT를 선물로 드렸지만, 뭔가 더 드리고 싶은 마음에 아쉬웠다.
남은 KIT는 세이브제주바다와 디프다제주, 플로빙코리아라는 환경단체 쓰레기 줍기에 참가한 봉사자에게 배부했다. 단체 대표님들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양해해 주시고, 참가자분들도 생일을 축하해 주시며 호응이 좋았다. 나머지 45세트를 나눠드리고, 남은 반창고와 알콜스왑은 다친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나씩 선물했다.
이전 두 번의 생일프로젝트를 보내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선물 대신 기부를 부탁해도,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지 꼭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꼭 선물 대신 기부로 받으리라, 생일 3일 전부터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생일프로젝트로 도배했다. 생일을 축하해줄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도 내 생일을 구태여 알게 될 정도로 김칫국을 거하게 마셨다.
쓰레기줍기 KIT는 이미 내 사비로 먼저 구매했기에, 기부금액은 사용했던 사비를 메우는 식으로 사용하려 했다. 어차피 목표금액에 도달한다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차액만큼 내가 기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생일 땐 물론이고, 평소에 연락도 없는 사람의 이름으로 입금이 계속 들어왔다. 어? 처음엔 잘못 보낸 줄 알았다. 놀라서 입금 확인차 안부를 물으니 "잘 써줘" 한다. 따흑, 감동...
첫날 목표금액의 10%, 그다음 날 30%, 50%, 그러더니 생일 당일에 갑자기 목표금액을 모두 모았다.
"어? 이게 되네? 왜 되지?"
개발자로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실행되는 건 끔찍한 결과를 암시하지만, 다행히 지금은 개발이 아니다. 일단 됐다. 목표금액을 넘는 건 상상하지 못했고 남는 돈을 사용할 방법을 준비하지 못해서, 일단 추가 기부를 막기 위해 황급히 생일프로젝트 홍보물을 내렸다. 눈 떠보니 목표금액 달성률이 112%이 되었다.
나 혼자라면 기부를 계획하고 기부받고 기부를 실천하는 모든 것을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프로젝트를 응원해주고 함께해준 사람이 있었기에 '내 생일'에 '내 의미'를 담아 '내 재미'를 즐기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감사함을 그냥 받고만 있지 않은 나는, 당장 고마움을 표현할 만한 수단을 고민했다. 나 혼자 재밌을 순 없지!
내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로 엽서를 선정했다. 내가 지금껏 제주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든 "제주 엽서". 엽서가 좋은 점이, 만드는 비용이 얼마 들지 않고 우편비도 저렴하다. 무엇보다도 손글씨에 내 마음을 오롯이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손글씨는 악필이지만, 악필을 가리듯 뒤를 돌리면 제주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장식용으로도 좋다. 요즘 보기 힘든 아날로그 감성까지 있다! 내가 일일이 글씨를 쓰느라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추가로, 기부해준 분 중 추첨을 통해 toun28 샴푸바를 선물로 드렸다. toun28의 친환경 제품을 써보면서 환경에 관심이 조금이나마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생일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한 달, 마무리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기업에 후원요청을 보내는 메일을 쓰고, 쓰레기 주울 장소를 찾아다니고, 생일프로젝트에 도와준 단체와 사람에게 인증샷과 고맙다는 말을 하나하나 전할 땐 솔직히 좀 힘들었다.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다가 "내가 뭘 하는 거지?" 하는, 일명 '현타'이 종종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함께해준 사람이 많아서 재미도 있었고 의미도 충분했다. 내 생일을 즐겁게 보낸 만큼, 세상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뿌듯한 추억 한 줌으로 승화하리라.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저의 세 번째 프로젝트를 꾸며준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주 바다가 조금은 더 깨끗해질 수 있었습니다.
손세정제와 해양쓰레기 전용 마대는 toun28이라는 멋있는 기업에서 후원해주기로 했다. 후원받았으니 짤막하게 홍보하자면, 분명 화장품 회사인데 환경에 진심인 회사다. 플라스틱 용기 하나를 안 쓰고 모두 종이로 포장했고, 무엇보다 대표를 포함한 직원들이 쓰레기줍기를 정기적으로 다닌다. 해양쓰레기 전용 마대를 많은 환경단체에 배부하는데, 그게 돈이 될 리가 없다. 그리고 '나'라는 개인에게 지원해준 기업은 여기가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