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jan.12.)
결국 두 아이 모두에게 화를 냈다.
큰 딸 감동이는 단어시험 연습을 할 때 글씨가 발단이 되었다. 막상 화를 낸 이유를 설명하려니 이렇게 사소하고 뭐 이런 걸로 화까지 내었을까 싶다. 하지만 깨알같은 글씨로 a와 u를 구분할 수 없게 써놓은 글씨들을 채점하노라니 스트레스 지수가 급상승하는 기분이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글씨에서 '나 하기 싫어'가 표현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단어시험을 보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쓰고 나니 이런 문제로 화를 낸 건 아이입장에선 참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일로 화를 내선 안되었다. 고래고래까지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목소리에 극한의 짜증이 묻어났다. 그건 해선 안되는 일이라는 걸 아는 이 순간도 그 글씨들을 떠올리면 또 짜증이 나려한다. 이 짜증과 화는 도대체 왜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건지...이렇게라도 글을 쓰면서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화낼 필요는 없었지, 아이가 그냥 그럴수도 있지 싶었던 일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겠다는 다짐 또 다짐한다.
막내 행복이의 문제는 외출준비 시간이었다. 남편 생일을 맞아 시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고, 11시 30분까지 식당에 도착해서 먼저 주문을 해놓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남편은 점심시간 잠깐 틈을 내서 나오는 거라 주문시간이 늘어지면 곤란했다. 그런데 아이는 11시 10분까지 옷을 갈아 입으라고 말했지만 11시가 넘도록 옷을 고르고 있었다. 순간 또 화가 일어났다. 그렇게 꾹꾹 참아보라고 안간힘을 쓰며 옷장의 옷들을 꺼내면서 '왜 이렇게 옷이 많은데 못골라! 이거? 이거?'라고 물었다.
눈치가 빠른 행복이는 그제야 서둘러서 옷을 고르고, 후다닥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신히 외출준비를 마치고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얼굴에 인상 주름이 한가득이었다. 속으로 크게 한숨을 쉬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또 쫌 화냈지?"
두 딸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아니, 심하게 냈는데요..."
나는 참느라고 애쎴는데 아이들에겐 마음 속 화까지도 다 들렸나보다.
무언가 삐그덕 대는 것 같은 일상의 하루,
오후 3시 50분을 지나는 시간인데, 나는 과연 오늘 하루 더는 화를내지않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부디,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방학이 또 하루 흘러간다. 작심 하루로 끝나지 않고, 긴 방학 끝에도 웃는 엄마 얼굴이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그깟 'b형' 따위 핑계대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해보련다!
<에필로그>
A형 막내 행복이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글이다.
"10살 너도 네 감정을 다스리기위해 부던히 애쓰는데,
네배쯤 더 긴 시간을 살고선 호르몬이나 혈액형 핑계만으로 모든 '화'의 이유로 돌리기는 건 너무 치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