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저는 필라테스 강사이고 미혼이며 oo세이고 ㅇㅇ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는 건 어떨까?
여기서 내가 필라테스 강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고 결혼을 했고 몇 년 전으로 돌아간 다른 나이와 다른 조건들이 되었다면 내가 아닐까?
그럼 난 도대체 누구인가??
학창 시절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를 확립해야 한다고 배웠던 것 같다.
그러나 몇 년 전 다녀온 한 피정에서는 나를 혼자 이 우주 속에 동떨어져 놓고 생각해서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했다. 고립된 개체로서 나 자신을 살펴보거나 성찰하는 것은 자기반성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식의 자아 성찰은 자신의 부족한 점, 결점, 한계 등을 절감하게 만들 뿐이다.
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알 수 있으며,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도 아니며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사실 우리들은 모두 깊이 '연결' 되어 있고 과학적으로도 우리의 연결성은 입증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나는 내 영혼에 대해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들과의 관계는 세상 속에서 강하게 나와 결속되어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거나 변하기 힘든 관계이다.
자, 그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나가 진짜 나이고, 그 연결 속에서만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관계에 대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그 관계가 올바로 설 때 나에 대한 정의가 올바로 서는 것이 되므로 우리는 그 관계에 매우 충실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나는 여기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결국 '나'가 있기 위해서는 '당신'이 있어야 하며 소중한 '당신'들은 결국 '또 다른 나'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관계 속에서만 살아가며 그 안에서 사랑받고 상처 받는다.
이제야 내가 한발 물러나고, 내 의견을 조금 더 낮추고 왜 그래야 하는지 알게 됐다.
어떻게든 나의 의견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보다 '또 다른 나'들에게 사랑으로 대할 때
그들은 나에게도 사랑을 돌려줄 것이고 그들이 말하는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왜 이걸 이제야 깨달았을까?(이제야 깨달았고 잘 하진 못하지만 노력 중이다.)
나의 사소한 의견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관계인데, 당신의 마음인데 말이다.
내가 신이나 가족 또는 친구에게 진정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힘을 인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