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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Oct 06. 2023

Icing on the cake

좋은 것 위에 더 좋은 것을 더한다

아이들 아침 식사는 남편이 독일에서 사 온 크림치즈와 시고모님이 만들어 주신 잼을 바른 빵이었다.


"엄마, 'Icing on the cake'이라는 표현 알아?"

아침 식사를 다 마친 아들이 갑자기 물었다.


"모르는데? 맛있다는 얘긴가?"


 "Icing on the cake은 이미 좋은 것에 더 좋은 것을 더한다는 뜻이야."


맛있는 케이크 위에 더 맛있는 설탕 장식을 올리니 이미 좋은 것에 더 좋은 것을 더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 말을 왜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아침식사를 했는데, 엄마가 우리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면 바로 그게 Icing on the cake인 거지."


이렇게 말하며 아들이 배시시 웃는다.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딸이 거든다.


"오.. 엄마, 오빠가 Idiom 얘기했네. 엄마 새로운 표현 배우는 거 좋아하잖아."


아이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영어, 독일어 표현이나 기억하고 싶은 명언을 읽으면 노트에 적어두곤 했다. 한국과 독일에 똑같은 속담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신나게 설명해주기도 하는 엄마에게 이런 Idiom 미끼가 잘 통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학교에 데려다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기. 엄마, 민주주의다!"


딸아이는 이제 민주주의까지 들먹거린다. 점점 똑똑해지는 아이들. 엄마가 화가 나면 갑자기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Idiom 역시 엄마를 꼬드기는 마법의 열쇠였다.




어제 딸아이 반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한 엄마가 나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해줬다.


"루나 엄마세요? 9학년에 리암이라는 아들이 또 있죠?

리암 정말 유명해요. 리암이 동생한테 그렇게 잘한대요. 누군가가 루나를 괴롭히면, 오빠가 와서 루나를 챙긴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9학년에 아들이 있거든요. 저희 딸이 왜 내 오빠는 루나네 오빠 같지 않냐고 집에서 엄청 투덜거려요. 리암하고 루나가 엄청 사이좋은 남매라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나는 괜찮은 하루를 보냈지만 타인에게서 듣는 이런 이야기야말로 내 하루를 더욱 달콤하게 만드는 'Icing on the cake'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 중에 하나는 차별 없는 양육이었다. 자라면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것이 차별이었다. 첫째라서, 둘째라서, 아들이라서, 딸이라서라는 조건에 의해 한 아이를 다른 아이와 달리 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딸, 딸, 아들의 둘째 딸로 태어났고, 동시대의 대부분의 딸들이 겪은 것처럼 비교와 차별이 당연한 듯 자랐다. 나는 큰 아들에게 장남이라는 특혜를 주고 싶지 않았고, 불필요한 의무 또한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딸에게 딸이라서 어떤 기회의 박탈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영원한 막내라고 더 보호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 룰을 100%  지켰다고 자신할 수 없겠지만, 최대한 내가 정한 신념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내가 이렇게 노력한 이유에는 공평하게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개인으로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고, 가족으로서 서로를 좋아하고, 의지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어 원가족을 떠나 각자의 가족을 이룬 후에 형제들끼리, 남매들끼리, 자매들끼리 잘 지내는 가정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부모라는 공통분모가 있을 때 겨우 유지되던 관계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남남처럼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주변에 남자 형제와 함께 자란 가정에서 남매 사이가 좋은 가정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배경에는 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혜택을 많이 줬던 차별적인 부모가 있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끈 떨어진 연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는 아이들이 나중에 나와 남편이 없어도 서로를 아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아침 산책 길에서 만난 함께 서 있는 나무처럼 무슨 일이 있을 때 굳건히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아이들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보면 '차별 없는 양육 프로젝트'가 아직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어제 들은 기분 좋은 칭찬을 생각하며, 좋은 표현을 알려준 아들을 위해, 민주주의 외치는 딸을 위해 나는 기꺼이 아이들을 차로 학교에 데려다줬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다가 뒤 돌아보며 나에게 함박웃음을 보내줬다. 케이크 위에 뿌리는 아이싱 같은 엄마를 보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겠지.


아이들을 키우며 어느 대륙 보다 더 큰 세계를 만났다. 기다림이 무엇인지 알았고, 무조건 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대륙 저 대륙을 옮겨 다니며 사는 나에게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나중에 어느 나라에서 살 거야?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나의 고향은 내 아이들이야. 아이들이 있는 곳에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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