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합리적인 것보다 환상적인 것이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하얀 눈과 함께 행복도 소복이 쌓일 듯한 12월이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12월은 일년 중 가장 행복한 달이다. 2019년 5학년이었던 아들이 학교에서 심각한 얼굴로 돌아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애들이 그러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없대. 그거 부모들이 선물 주는 거래. 그 말이 맞아?"
둘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작년에 내가 집안 곳곳을 다 뒤졌는데, 엄마 아빠가 숨겨 놓은 선물 없던데?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게 틀림없어."
'아니, 저 쪼그만 것이 언제 온 집안을 뒤졌지?' 순간 놀랐지만 아이들에게 태연한 듯 얘기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믿는 사람한테만 선물을 갖다주셔. 너네가 안 믿으면 안 갖다주시니까 부모가 할 수 없이 준비해야 하는 거야. 아이들을 실망하게 할 수는 없잖아. 어쩔래, 믿을래, 안 믿을래?"
"믿을래!"
두 아이에게 진실보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 같았다. 믿어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독일 부모들은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를 가능한 오래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노력하지?' 하고 처음엔 의아했다. 해마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고, 마법 같은 이야기가 아이들의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더 특별하게 만드는지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부모들의 노력이 왜 필요한 지를 알게 되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나 역시 다시 산타의 존재를 믿고 싶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행복이니까.
나에겐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산타가 없다는 것은 진작 알았고, 크리스마스 때 엄마가 가게에서 직접 사 주었던 라라 인형이 나의 유일한 추억이다. 내가 어렸던 시절 공무원으로 빠듯하게 사셨던 부모님에게 크리스마스트리를 하거나 해마다 선물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치였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지식을 넣어 주려고 했을 뿐 환상, 희망, 추억을 심어주는 것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결혼 후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프랑스에 계신 시어머니 댁에 갔다. 남편의 남매들이 모두 모였고, 언제나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공유하고 있는 별거 아닌 추억을 나누며 웃는 시간. 그게 바로 이 가족의 행복이었다.
크리스마스 전 주말이면 창고에서 먼지 쌓인 크리스마스 장식 박스를 꺼냈다. 박스 안에 있는 장식품으로 집안 곳곳을 꾸민다. 어찌 보면 번거로운 이 일을 나는 해마다 한다. 아이들은 박스를 열고 물건을 꺼내며 탄성을 지른다. 장식품을 하나씩 쥐고 누구의 기억이 더 또렷한지 내기하듯 각자의 추억을 풀어낸다. 해마다 살던 곳에서, 여행하던 곳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을 오너먼트를 한두 개씩 모았다. 그렇게 모은 것들이 이젠 두 박스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핸드메이드 목재 장식품들,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국에서 산 호두까기 인형 장식, 캐럴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스노볼도 보인다. 작년에는 한국을 기억하기 위해 색동으로 버선 장식을 만들어 달았다. 한두 개씩 더해지는 오너먼트들은 우리의 시절을 담고 있어 더 소중하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는 크리스마스트리용 생 전나무를 사러 양재동 꽃시장으로 갔다. 해마다 생 전나무를 찾는 남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가지를 들어 올릴 때마다 풍기는 생 전나무의 향을 느끼며 추억을 하나하나 가지에 거는 의식. 그것은 그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어린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을 이해한 다음부터는 불평 없이 생 전나무를 산다. 함께 준비하는 그 모든 과정이 아이들의 기억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했던 12월의 의식을 기억할 수 있다면, 전나무를 사러 멀리 가는 것도, 떨어지는 전나무 잎을 자주 치우는 것도 번거롭지 않다. 비용도 아깝지 않다. 가끔은 합리적인 것보다 환상적인 것이 더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크리스마스를 아이들이 기억하길 바란다. 추억은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크리스마스 때면 엄마가 있는 곳으로 모이게 하는 자석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