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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Dec 20. 2021

우리 집엔 유럽의 크리스마스가 있다.

가끔은 합리적인 것보다 환상적인 것이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하얀 눈과 함께 행복도 소복이 쌓일 듯한 12월이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12월은 일년 중 가장 행복한 달이다. 2019년 5학년이었던 아들이 학교에서 심각한 얼굴로 돌아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애들이 그러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없대. 그거 부모들이 선물 주는 거래. 그 말이 맞아?"

둘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작년에 내가 집안 곳곳을 다 뒤졌는데, 엄마 아빠가 숨겨 놓은 선물 없던데?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게 틀림없어."


'아니, 저 쪼그만 것이 언제 온 집안을 뒤졌지?' 순간 놀랐지만 아이들에게 태연한 듯 얘기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믿는 사람한테만 선물을 갖다주셔. 너네가 안 믿으면 안 갖다주시니까 부모가 할 수 없이 준비해야 하는 거야. 아이들을 실망하게 할 수는 없잖아. 어쩔래, 믿을래, 안 믿을래?" 

"믿을래!"

두 아이에게 진실보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 같았다. 믿어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독일 부모들은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를 가능한 오래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노력하지?' 하고 처음엔 의아했다. 해마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고, 마법 같은 이야기가 아이들의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더 특별하게 만드는지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부모들의 노력이 왜 필요한 지를 알게 되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나 역시 다시 산타의 존재를 믿고 싶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행복이니까.


나에겐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산타가 없다는 것은 진작 알았고, 크리스마스 때 엄마가 가게에서 직접 사 주었던 라라 인형이 나의 유일한 추억이다. 내가 어렸던 시절 공무원으로 빠듯하게 사셨던 부모님에게 크리스마스트리를 하거나 해마다 선물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치였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지식을 넣어 주려고 했을 뿐 환상, 희망, 추억을 심어주는 것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결혼 후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프랑스에 계신 시어머니 댁에 갔다. 남편의 남매들이 모두 모였고, 언제나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공유하고 있는 별거 아닌 추억을 나누며 웃는 시간. 그게 바로 이 가족의 행복이었다.


크리스마스 전 주말이면 창고에서 먼지 쌓인 크리스마스 장식 박스를 꺼냈다. 박스 안에 있는 장식품으로 집안 곳곳을 꾸민다. 어찌 보면 번거로운 이 일을 나는 해마다 한다. 아이들은 박스를 열고 물건을 꺼내며 탄성을 지른다. 장식품을 하나씩 쥐고 누구의 기억이 더 또렷한지 내기하듯 각자의 추억을 풀어낸다. 해마다 살던 곳에서, 여행하던 곳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을 오너먼트를 한두 개씩 모았다. 그렇게 모은 것들이 이젠 두 박스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핸드메이드 목재 장식품들,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국에서 산 호두까기 인형 장식, 캐럴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스노볼도 보인다. 작년에는 한국을 기억하기 위해 색동으로 버선 장식을 만들어 달았다. 한두 개씩 더해지는 오너먼트들은 우리의 시절을 담고 있어 더 소중하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는 크리스마스트리용 생 전나무를 사러 양재동 꽃시장으로 갔다. 해마다 생 전나무를 찾는 남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가지를 들어 올릴 때마다 풍기는 생 전나무의 향을 느끼며 추억을 하나하나 가지에 거는 의식. 그것은 그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어린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을 이해한 다음부터는 불평 없이 생 전나무를 산다. 함께 준비하는 그 모든 과정이 아이들의 기억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했던 12월의 의식을 기억할 수 있다면, 전나무를 사러 멀리 가는 것도, 떨어지는 전나무 잎을 자주 치우는 것도 번거롭지 않다. 비용도 아깝지 않다. 가끔은 합리적인 것보다 환상적인 것이 더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크리스마스를 아이들이 기억하길 바란다. 추억은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크리스마스 때면 엄마가 있는 곳으로 모이게 하는 자석이 되어줄 것이다.

구상나무로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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