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경희」, 민음사. 2022
도쿄 여자 친목계가 펴낸 『여자계』에 나혜석이 「경희」를 발표한 1918년은 남성과 여성의 존재적 차이를 당연시 받아들이던 때였다. 남성과 여성의 존재적 위계와 자연적 특성이 다르고, 그것을 토대로 사회적 역할에 차이가 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여성이 자기 존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을 토대로, 기존 여성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형성해나가려고 하는 시도는, 남성은 물론이고, 같은 여성들에게조차 설득될 수 없었다.
이러한 때였으므로, 어머니들 역시, 아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딸들의 경우 때가 되면 혼인하여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제 역할만 잘 해내며 살아가는 것이 순리에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한 때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딸들이야 집에서 집안일을 부지런히 잘 가르쳐서 시집보내면 될 일이지 학교에 보내 공부까지 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혜석의 경우 ‘경희’처럼 아버지가 일본 유학을 보내서 근대 교육을 받긴 했지만, 공부는 공부이고, 삶은 삶이었다. 딸을 일본으로 유학까지 보낸 나혜석의 아버지 역시 조선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관과 가부장적 사고에서 도무지 벗어날 줄 몰랐다.
이렇게 당시에 여성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 생각을 넘어서 딸들이 공부하여 각성하게 되는 것을 오히려 염려하던 때였다. 학교에 가서 공부한 여성은 아무래도 혼인 자리를 찾는 일도 어려워지게 되고, 아내와 어머니로서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여 현실과 조화될 수 없는 생각만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부를 하고 각성하여 사회와 와해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딸에게도 불행인 것이다. 따라서, 선조들의 삶의 방식과 공동체의 질서를 안정되게 전승하고 각자의 안정되고 만족하는 삶을 위해서도, 남성은 남성의 일을 하면 되고, 여성은 여성의 일을 하면 되던 때였다.
더하여, 당시의 시대상, 즉 식민 지배를 받던 상황을 고려하면, 여성이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현해나가려고 하는 시도는 더 전복적인 발상이 된다. 식민 지배를 받는 사회 내에 또 다른 피억압 집단인 여성이 자기 존엄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발상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였으므로, 나혜석이나 소설의 주인공 ‘경희’처럼 일본 유학생인 여성은 세상의 순리에서 벗어난 문제적 인물이었으며, 심지어 결혼까지 하지 않으려는 여성은 정상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
위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나혜석은 여성이 겪는 인간 소외를 문제 삼았다. 여성이 겪는 인간 소외란, 남성과 똑같이 존엄한 존재인 여성의 존재와 여성의 생존과 삶이 모두 남성에게 달린 일이 되어 버리는 사태를 의미할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여성 소외를 1934년 잡지 『삼천리』에 게재한 「이혼고백장」에서 고발한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위의 글을 통해, 작가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자신의 분투가 결국 여성 해방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을 선포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작가는 이혼과 위자료 청구 소송을 통해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지만, 작가의 선택은 오늘날 여성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선택이며 사회적으로 문제 되는 선택이 아니다. 작가의 예견, 즉,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마치, 1879년 입센(Henrik (Johan) Ibsen)이 발표한 『인형의 집』의 주인공 여성인 ‘노라’가 집을 나서기 전 남편 ‘헬메르’에게 남자의 인형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주체적이고 책임 있는 독립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선언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입센이 『인형의 집』에서 여성이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 여정을 남편과의 대립을 통해 극적으로 묘사했다면, 나혜석은 「경희」에서 여성 소외 문제를 아버지와의 갈등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낸다. ‘경희’의 아버지 ‘이철원’은 딸을 일본에 유학 보냄으로써 딸에게 근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했지만 근대 교육을 받은 딸이 지식을 끊임없이 동경하고 갈망하며 그에 따라 자기 삶을 새롭게 형성해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신여성 ‘경희’와 부잣집 혼처를 놓칠 수 없는 그녀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대립한다.
“계집애라는 것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니라.” 하실 때에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하던 생각을 하며, 아버지가 담뱃대를 드시고 “뭐 어쩌고 어째. 네까짓 계집애가 하긴 무얼 해. 일본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아니 하고 귀한 돈 없애고 그까짓 엉뚱한 소리만 배워 가지고 왔어?”하시던 무서운 눈을 생각하며 몸을 흠찔한다.(59쪽)
‘경희’에게 이렇게 인습에 젖은 가부장적 사고관으로 인한 대립은 비단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과의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대립은 소설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사돈어른(’경희’ 여동생의 시어머니)’으로 대표되는 구여성과도 일어난다. 물론, ‘사돈어른’과의 대립은 아버지와의 대립처럼 극적으로 촉발되지는 않지만, 대화나 심리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경희는 이 마님 입에서 ‘어서 시집을 가거라. 공부는 해서 무엇하니.’ 꼭 이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속으로 ‘옳지 그럴 줄 알았지.’ 하였다. 그리고 어제 오셨던 이모님 입에서 나오던 말이며 경희를 보실 때마다 걱정하시는 큰어머니 말씀과 모두 일치되는 것을 알았다.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 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이에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첩)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하고 싶었다. 이 외에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마님 입에서는 반드시 오늘 아침에 다녀가신 할머니의 말씀과 같은 “얘, 옛날에는 여편네가 배우지 않아도 수부다남(壽富多男)하고 잘만 살아왔다. 여편네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이 많단다. 얘, 공부한 여학생들도 보리방아만 찧게 되더라. 사내가 첩 하나도 둘 줄 모르면 그것이 사내냐?” 하던 말씀과 같이 꼭 이 마님도 할 줄 알았다.”(30~31쪽)
위를 통해 알 수 있듯, 여성이 공부하는 것은 ‘경희’의 윗세대 여성 어른들에게 흠처럼 되어 버리던 시대였다. 그래서 친척 어른들을 비롯해 ‘사돈어른’까지 ‘경희’의 공부와 유학 생활을 염려하던 것이다. 다만, ‘경희’의 어머니는 중간적 입장을 취한다. 어머니는 ‘경희’가 집안일 하나를 해도 똑똑한 방법으로 야무지게 하는 것을 두고 자랑하며, 바깥에 나가 일을 하더라도 그 보수가 남들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자랑한다. 이를 들은 ‘사돈어른’은 공부의 필요성을 조금 알게 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여성이 인간으로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보수를 받기 위한 실질적 차원에서만 그러한 것이었다.
‘경희’는 남성과 다른 여성뿐만 아니라 자기 생각과도 대립한다. 그녀 역시 그러한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란 조선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해도, 조선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따를 때 이 조선 사회에서 조화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과 아버지가 제안하는 혼인에 응할 때 먹고 살 걱정 없이 편히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희의 앞에는 지금 두 길이 있다. 그 길은 희미하지고 않고 또렷한 두 길이다. 한 길은 쌀이 곳간에 쌓이고 돈이 많고 귀염도 받고 사랑도 받고 밟기도 쉬운 황토요, 가기도 쉽고 찾기도 어렵지 않은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한 길에는 제 팔이 아프도록 보리방아를 찧어야 겨우 얻어먹게 되고, 종일 땀을 흘리고 남의 일을 해 주어야 겨우 몇 푼 돈이라도 얻어 보게 된다. 이르는 곳마다 천대뿐이오, 사랑의 맛은 꿈에도 맛보지 못할 터이다. 발부리에서 피가 흐르도록 험한 돌을 밟아야 한다. 그 길은 뚝 떨어지는 절벽도 있고 날카로운 산정(山頂)도 있다. 물도 건너야 하고 언덕도 넘어야 하고 수없이 꼬부라진 길이요, 갈수록 험하고 찾기 어려운 길이다. 경희의 앞에 있는 이 두 길 중에 하나를 오늘 택해야 하고 지금 꼭 정해야 한다. 오늘 택한 이상에는 내일 바꿀 수 없다. 지금 정한 마음이 이따가 급변할 리도 만무하다. 아아, 경희의 발은 이 두 길 중 어느 길에 내놓아야 할까. 이것은 교사가 가르칠 것도 아니고 친구가 있어서 충고한대도 쓸데없다. 경희 제 몸이 저 갈 길을 택해야만 그것이 오래 유지할 것이고 제정신으로 한 것이라야 변경이 없을 터이다. 경희는 또 한 번 머리를 부딪고 “아이구, 어찌하면 좋은가!”한다.”(57쪽)
“경희도 여자다. 더구나 조선 사회에서 살아 온 여자다. 조선 가정의 인습에 파묻힌 여자다. 여자란 온량유순(溫良柔順)해야만 쓴다는 사회의 면목(面目) 이고, 여자의 생명은 삼종지도라는 가정의 교육이다. 일어서려면 압박하려는 주위요, 움직이면 사방에서 들어오는 욕이다. 다정하게, 손 붙잡고 충고 주는 공무의 말은 열 사람 한입같이 “편하게 전과 같이 살다가 죽읍시다.” 함이다.”(57쪽)
이러한 생각과 유혹 앞에 ‘경희’는 갑자기 그동안 비판적으로만 보아왔던 여성들의 삶이 새삼 달리 보인다. ‘경희’에게 그녀들은 모두 ‘경희’가 도저히 응할 수 없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를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존재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에 이르자, ‘경희’는 그녀들의 삶과 자기의 삶 중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이를 알게 될 때, ‘경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녀에게 이것이 중요한 문제인 이유는,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희는 생각할수록 그네들이 장하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도 시집가기가 어려운 것이 도무지 이상스럽다. ‘그 부인네들이 장한가? 내가 장한가? 이 부인네들이 사람일까? 내가 사람일까?’ 이 모순이 경희의 깊은 잠을 깨우는 큰 번민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장한 사람이 되나.’하는 것이 경희의 머리가 무거워지는 고통이다.”(62쪽)
위와 같은 질문을 마주한 ‘경희’는 결국 세계 앞에선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깨달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도무지 선택할 수 없던 ‘경희’는 무기력하게 주변을 바라보던 중 자연물과 동물들의 이름을 불러보면서 대상 세계를 의식하다가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 주변에 보이는 동물 종(種)의 이름들을 나열해보다가 자기가 사람 종(種)에 속해 있음을 깨닫는다. ‘경희’는 여자라는 종(種)으로 설명되는 존재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종(種)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것! 저것은 개다. 저것은 꽃이고 저것은 닭이다. 저것은 배나무다. 그리고 저기 매달린 것은 배다. 저 하늘에 뜬 것은 까치다. 저것은 항아리고 저것은 절구다. 이렇게 경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 명칭을 불러 본다. 옆에 놓인 머릿장도 만져 본다. 그 위에 개어서 얹은 명주 이불도 쓰다듬어 본다. “그러면 내 명칭은 무엇인가?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63쪽)
이후, ‘경희’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인간 존재론의 근본적 질문에 접근함으로써 이를 극복한다. ‘경희’는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서 실현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것이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소외의 원인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이며, 이는 결국 남성에게 물질적인 종속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인간이란, 자기 삶의 주권자이다. 자기 삶의 주권자라는 것은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존재를 전제한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경제적 종속을 문제 삼으며, 이것에 순응하는 것을 여성의 당연한 삶으로 말하는 아버지에게 저항했던 것이다.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제가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 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 집 개나 일반이지요.”(64쪽)
‘경희’는 자신이야말로 자기 삶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넘어 자기 자신의 존엄을 깨닫는다. 그녀는 사물도 짐승도 아닌 사람이며, 조선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며, 자기 부모의 딸이기 전에 신의 형상으로 빚어진 사람인 것이다. 하느님의 딸이므로 그녀는 하느님의 모상(模像)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하느님의 모상에 알맞은 일을 할 때, 그녀가 그토록 실현하고 싶었던 “장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될 것이다. '경희'를 내세워 나혜석이 찾은 그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괴로움이 지나면 낙이 있고 울음이 다하면 웃음이 오고 하는 것이 금수와 다른 사람이다. 금수가 능히 못하는 생각을 하고 창조를 해내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번 쌀, 사람이 먹고 남은 밥찌꺼기를 바라고 있는 금수, 주면 좋다는 금수와 다른 사람은 제 힘으로 찾고 제 실력으로 얻는다. 이것은 조금도 모순이 없는 사람과 금수와의 차별이다. 조금도 의심 없는 진리이다.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느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64~65쪽)
앞에서 ‘경희’는 나라고 하지 않고, ‘경희’라고 함으로써 자기를 대상화하여 자기 존재를 선언한다. 나혜석은 ‘경희’를 통해 당시 여성 문제를 내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여성 소외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를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해낸 것이다.
나아가, 자기 발견의 여정을 통해 ‘경희’는 비로소 창조활동에 투신(投身)할 용기를 갖는다. 이 용기는 자기 존재의 근거를 발견함으로써 갖게 된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 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경희'가 깨달음을 얻기 까지의 과정을 본다면, 그 과정 전체는 조선 최초의 여성 문인과 여성 화가였던 나혜석이 자신의 성소(聖召)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느님! 하느님의 딸이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내 생명은 많은 축복을 가졌습니다.
보십쇼! 내 눈과 내 귀는 이렇게 활동하지 않습니까?
하느님! 내게 무한한 광영(光榮)과 힘을 내려 주십쇼.
내게 있는 힘을 다하여 일하오리다.
상을 주시든지 벌을 내리시든지 마음대로 부리시옵소서.”(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