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 애의 하얀 손목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어
“비상구야”
속삭이던 그 애에게 반해
졸졸 따라갔지
비상구를 따라 탈출하는 것처럼
강아지 마냥 졸졸
운동장에 앉아
그 애는 내 손목에
빨간 화살표를 그려주었어
“됐다, 비상구야”
종이 치는 줄도 몰랐어
우린 그날, 교실 청소하고
비상구도 잃었지
“빡빡 문대 닦아라! 비상구는 없다! 알겠나?”
비상구를 없애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물도록 문방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워버린 비상구를 다시 그렸어
빨갛게 살아나는 비상구처럼
우리들의 볼도 노을처럼 물들었지
까르르 웃으며 빨간 화살표가 그려진 손목을 맞대고
맹세했어, 영원하자고
도망치고 싶을 땐
손목에 비상구를 그려
잊어버리고 싶을 때도,
부끄러움에 온몸을 감추고 싶을 때도
배고파도, 외로워도
비상구를 그려
비상구는 있어
화살표만 따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