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대물림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슬픔, 두려움, 억압된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전해질 수 있다.
가족 코칭을 하다 보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반복되는 감정의 흐름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목소리의 높낮이, 눈빛, 말의 순서까지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어쩐지 닮아 있다.
이걸 우리는 정서적 대물림이라고 부른다.
“정서적 대물림”은 부모나 양육자가 경험하고 표현한 감정, 정서 패턴, 그리고 관계 방식이 자녀 세대에까지 무의식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정서적 대물림은 부모가 물려주려 한 것도 아니고 자녀가 받고 싶어서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서로가 살아온 방식과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이어받은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난보다 선택을 이야기해야 한다.
받아온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필요한 것은 품고, 필요 없는 것은 놓는 선택 말이다.
첫째, 내 안의 패턴을 알아차린다.
나는 언제 감정이 확 올라오는가?
특정한 말투나 표정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내 안의 자동 프로그램이 작동한 것이다.
부모가 갈등 앞에서 침묵했다면 나 역시 대화를 피하는 패턴을 반복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 시작이다.
둘째,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불편하다로는 부족하다.
정확히 불안한 건지, 서운한 건지, 화가 난 건지 구분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적어본다.
셋째, 반응을 잠시 멈춘다
자동 반응을 바꾸려면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화가 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다.
넷째, 새로운 대화를 연습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 예전에는 방어하거나 침묵했다면 이번에는 다르게 해 본다.
'그렇게 느낄 수 있겠구나'하고 먼저 공감해 주고 나의 요구를 차분히 말해본다.
실제 상황 전에 미리 대본을 써보고 안전한 사람과 역할극처럼 연습하면 훨씬 수월하다.
다섯째, 하루를 성찰하는 시간을 만든다
하루가 끝날 무렵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가 반복한 가족의 패턴은 무엇이었나?
그 순간을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오늘 내가 시도한 새로운 한 가지는 무엇이었나?
이 작은 질문들이 쌓이면 나와 가족의 관계가 달라진다.
정서적 대물림을 끊는 일은 완벽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이라도 멈추고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늘 불안하거나 걱정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특별히 이유가 없어도 불안을 쉽게 느끼는 성향을 가질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런 정서적 대물림은 ‘깨달음’과 ‘새로운 경험’으로 충분히 끊을 수 있다.
즉, 부모 세대에서 형성된 감정 패턴이 그대로 자녀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의식적인 감정 인식, 표현 훈련, 관계 방식 변화를 실천하면 된다.
정신 분석학 박사 갈리트 아틀러스(Galit Atlas)는 정서적 대물림을 “감정의 유산"이라 부른다. 그녀의 주장은 우리는 부모가 하지 않은 말, 표현하지 않은 감정의 무게를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어린 시절, 부모의 감정에 민감하게 적응하며 살아남는 방식을 배운다.
말하지 않았던 가족의 상처와 숨겨졌던 두려움과 외로움, 그것들이 말투로, 반응으로,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C 씨는 중학생 아들과의 거리감으로 코칭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하루 일과를 다 얘기하던 아들이
요즘은 대화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며 속상해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뭔가를 물어보면 아들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요.
가끔은 저를 투명인간처럼 대해요.
코칭 중에 나는 조용히 물었다.
중학생 때의 당신은 어땠나요?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릴 때 자신도 집에 오면 방문부터 닫고 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엄마가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고...
그 말이 끝나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후 그녀는 잔소리 대신 기다림을 선택했다.
간식을 슬쩍 두고,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렸다. 며칠 뒤 아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감정은 본능이지만 반응은 선택이다.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정서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D 씨는 고등학생 딸을 둔 아빠였다.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성적을 기준으로 딸을 대했는데
요즘은 딸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방으로 피해버린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말했다.
딸이 왜 이렇게 무기력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뭔가를 잘못한 걸까요?
코칭 중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무뚝뚝하고 관심 없던 아버지 언제나 기대 없이 자신을 대했던 기억...
그래서 그는 딸에게 기대했고, 어쩌면 그 기대가 딸에게는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당신 딸은 지금,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평가받고 있다고 느낄까요?
그는 한참을 침묵했고
그날 이후, 딸에게 성적이 아닌 감정을 먼저 물었다.
요즘 많이 피곤하지?
학교 생활은 힘들지 않아?
그 말에 딸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점점 대답의 길이가 길어졌다.
아빠가 요즘 좀 다르네.
고맙긴 한데 어색해...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배우는 중이야.
정서적 대물림은 무의식에서 시작되지만
그걸 끊는 건 의식의 몫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
내 감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묻기 시작할 때
반응 대신 선택을 하게 된다.
A 씨는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다.
매일 아침이면 잔소리로 하루가 시작됐다.
핸드폰 좀 그만 보고.
공부는 했니?
오늘 학원 꼭 가야 해!
말했고, 반복했고, 결국 딸은 방문을 닫아버렸다.
답답했어요.
딸이 저를 자꾸 밀어내는 느낌이었어요.
코칭 중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열일곱이던 시절
당신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어떤 기분이었나요?
A 씨는 멈칫했고, 이내 웃으며 말했다.
짜증 났겠죠.
그냥 내버려 뒀으면 싶었어요.
그녀는 그 순간
‘엄마의 자리’가 아닌 ‘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딸은 밀어낸 게 아니라 그저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의 딸도, 그때의 나처럼...
그녀는 말을 줄이기로 했다.
질문 대신 인사를 건넸고 잔소리 대신 쪽지를 남겼다.
오늘도 수고했어.
엄마는 늘 네 편이야.
며칠 후
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요즘 좀 지쳤어.
친구 관계도 좀 힘들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딸의 손을 잡았다.
잔소리는 불안을 감추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자.
불안해서 잔소리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을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정을 자각하고 그 표현 방식을 바꾸는 것
그게 정서 대물림을 끊는 첫걸음이다.
B 씨는 다섯 살 아들을 둔 아빠다.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걸 훈육이라고 믿었다.
어느 날부터 아이가 아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소리에 놀라 도망치고 아빠가 다가가면 몸을 굳혔다.
그는 여전히 아이가 말을 안 들을까 봐 걱정됐고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코칭 중에 나는 물었다.
당신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이 있나요?
B 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소리부터 지르셨어요.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혼났어요.
그래서 나는 늘 겁을 먹었죠.
말을 꺼낼 타이밍조차 없었어요.
그리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했다.
근데 지금 제가 그 모습 그대로예요.
그는 자기가 싫어했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그 후
그는 아들에게 감정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감정은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반응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다.
분노가 올라오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감정을 아이 앞에 어떻게 꺼내놓는지가 중요하다.
화는 훈육의 도구가 아니다.
감정을 설명하는 언어가 있어야
아이는 감정과 자신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다.
정서적 대물림을 물려줄지 새롭게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건 지금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