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곧 여유
제주로 이사하면서 물건을 많이 정리했다.
그러나 나는 이사 와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 물건들은 한때 나를 설레게 했고,
기쁨을 주던 시간의 조각들이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지만, 그 물건에는 그때의 열정과 기쁨, 그리고 나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물건에는 추억과 의미가 담겨 있고 미련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비우고 있다.
이제는 버린다는 말 대신‘보낸다’는 말을 더 자주 쓴다. 보낸다는 건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다. 한 시절의 물건이 제 역할을 다하고 떠나면, 그 자리에 새로운 삶의 여백이 들어온다.
제주에서의 삶은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갖지 않아도 괜찮고, 소유하지 않아도 충만할 수 있다는 걸 바다와 바람이 가르쳐 주었다.
제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배운 건,‘비움이 곧 여유’라는 사실이었다.
매일 하나씩, 작은 것부터 지금 내 삶과 맞지 않는 물건부터 정리하고 있다.
“지금 내 삶에, 이건 정말 필요한가?”
계속해서 묻고, 또 선택한다.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을 가볍게,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물건을 바라보다 보면, 삶의 흔적과 나의 취향과 지금의 나를 알게 되기도 한다.
정리는 결국,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어떤 옷과 신발은 더 이상 지금의 나와 맞지 않다. 어떤 물건은 그때의 나를 닮아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떠나왔다.
결국 남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뿐이다.
생각해 보면, ‘나중에 필요할지도 몰라서’ 남겨둔 것들은 대부분 그 ‘나중’을 맞이하지 못했다.
‘언젠가’라는 말속에 묻혀 있던 마음의 짐도 함께 정리한다. 나는 오늘도 물건 하나를 꺼내어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떠나보내기로 한다.
나는 아직 젊지만, 언젠가 내 삶의 끝자락이 올 것을 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내 삶을 정돈해 두며 살고 싶다. 그래서 물건을 조금씩 보내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결핍의 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자족의 태도다. 필요한 것만 곁에 두고도 충분히 따뜻하고 단단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비우고, 덜어내고, 다시 비워내며 나는 조금씩,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무언가를 더 갖기보다 덜어내며 살아가고 싶다. 그 가벼움 속에서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함께 한다.
미니멀 라이프는 설렘과 충만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