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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에서 훈련병으로, 논산훈련소 4주의 기록(2)

훈련소가 선물한 소중한 인연들

by 의사과학자 류박사 Feb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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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훈련소에서 찾은 소소한 행복 】


4주간의 육군훈련소 생활은 전시에 나와 가족, 그리고 조국을 지키기 위한 기초군사훈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훈련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필수적인 지식과 술기라는 것을 알기에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임했습니다. 그렇기에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끊임없는 통제였습니다. 훈련병들은 식사를 하러 갈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생활관 밖에서는 항상 오와 열을 맞추어 단체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개인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고충이었습니다. 물론, 혹시 모를 안전사고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이란 것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엄격한 훈련 과정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입소 며칠 후부터 시작된 아침 조깅은 특별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다른 훈련병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했지만, 그저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조깅을 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씩 해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행복의 순간은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육군훈련소의 식사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맛이었습니다. 식사하고, 씻고, 잠자리에 드는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마다 작은 행복감이 찾아왔습니다. 자유가 제한된 환경이었기에 이런 일상적인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 훈련소가 맺어준 소중한 인연들 】


육군훈련소에서 4주간 동고동락했던 분대원들은 저에게 특별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우리 분대는 모두 병역판정전담의사로 복무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동기들과는 이후 병역판정전담의사 시절에도 매년 한 번씩 모임을 가졌고, 서로의 경조사도 챙기는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사진 1)


그 중에서도 1년차 때 같은 지역에서 근무했던 정형외과 이선호 전문의(현 목포한국병원 정형외과 과장)와는 특별히 가까워졌습니다. 저희는 이후 논문도 함께 집필하며 학술적인 교류는 물론 인간적인 유대관계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훈련소는 저에게 뜻밖의 재회도 선물해주었습니다.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 친구들 중 고향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과는 대학 시절에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타지역으로 진학한 친구들과는 시간을 내어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원의 한 의과대학에 진학했던 고등학교 친구를 훈련소 같은 분대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서로 반가운 마음을 나누며 그간의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4주 동안 함께 훈련소 생활을 하며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훈련소가 맺어준 소중한 인연들이었습니다. 


사진 1. 병역판정전담의사 시절, 주말 친목 모임에서 찍은 우리 분대원들과의 특별한 순간.



【 논산 괴질 】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는 훈련병들은 대부분 건강한 모습으로 들어왔다가, 퇴소할 때는 거의 예외 없이 감기에 걸려 나가게 됩니다. 의과대학 시절 의사국시와 미국국가고시를 준비하며 배웠던 지식으로는,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30대 이하 연령대에서 군대나 수용시설에서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제가 경험한 것도 이와 비슷한 계열의 폐렴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소대와 중대에서는 이러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훈련병들의 위생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매주 이불 먼지를 털고 햇볕에 말리며 생활관 환기를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위생을 철저히 관리해도, 좁은 공간에서의 단체생활 특성상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원을 피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이 감기는 퇴소 후에도 2주 이상 기침과 고열로 고생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번 시작된 기침은 멈추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증상을 동반했고,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강도의 감기였습니다. (훗날 코로나바이러스에 처음 감염되었을 때 비슷한 증상을 겪으며 이때를 떠올렸습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러한 증상을 사람들은 '논산병', '논산감기', '논산괴질'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지금도 훈련소에서 이 감기로 고생하고 계실 훈련병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 잊지 못할 훈련소 에피소드 】


저희 중대는 주로 예비 병역판정전담의사들이 배치되었습니다. 대부분 각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갓 취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동기 분대원이 특별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배가 아파 군의관님의 진료를 보러 갔다가 자신의 학교 후배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친했던 후배라 따뜻한 말로 반갑게 맞아주었다고 합니다. 그 군의관은 인턴 수료 직후 입대한 일반의사여서, 사회에서의 선후배 관계가 군대에서는 역전되는 특별한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그러나 훈련 기간 중에는 가슴 아픈 소식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를 각별히 아껴주시던 이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중대장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찾아갔을 때 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군 규정상 훈련병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상을 당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퇴소 후 재입소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주말 종교행사에서 이모님의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 자유의 맛, 짜장면과 맥주 한 잔 】


4주라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의 4주는 사회에서보다 훨씬 더디게 흘러갔습니다. 그래도 큰 부상 없이 무사히 수료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기초군사훈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을 수료하면서 어느 정도의 신체 능력이 있어야 기초군사훈련을 완수할 수 있는지 실제로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병역판정전담의사의 업무는 단순히 현역, 보충역, 전시근로역을 판정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람 중에서도 기초군사훈련을 수행하기 어려운 신체 상태인 경우를 파악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훈련 과정의 수료는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퇴소 후 집에서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은 짜장면과 탕수육이었습니다. 훈련소의 식사는 꽤 괜찮은 편이어서 먹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지만, 유독 이 음식들이 그리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실컷 먹었고, 저녁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맥주 한 잔도 즐겼습니다. 그 순간의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란 결국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며칠간의 달콤한 휴식을 보내고 나서, 이제는 병역판정전담의사로서의 새로운 여정을 위한 이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과연 저는 어디로 배치받게 되었을까요?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고된 시간 속에서 만난 특별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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