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훈련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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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육군훈련소의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며 '여기가 어디지?' 하는 순간의 당혹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비현실감에 빠졌지만, 곧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전날 받은 훈련일정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려는데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언제 입었는지도 모르는 국방무늬 속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날의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이런 속옷을 입고 잤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터라, 제가 진짜 훈련소에 왔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동안 매일 밤 10시 취침, 오전 6시 기상이라는 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불침번은 2~3일에 한 번씩 돌아왔는데, 특히 새벽 시간대가 힘들었습니다. 잠들기 직전이나 기상 직전 시간대는 그나마 견딜 만했지만, 새벽 2시나 3시 불침번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전공의 시절 새벽 응급실 당직 때와 비슷한 피로감이었습니다.
훈련소의 일정은 주차별로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주 차는 군인화 과정으로, 강당에 모여 프로그램을 듣거나 조교님들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2, 3주 차에는 개인 화기 다루는 법을 배웠고, 마지막 주는 행군과 그동안 준비한 체력테스트로 마무리했습니다.
의과대학에서 6년간 생명을 살리는 법을 배우고, 수련의 과정에서 5년 동안 관절을 치료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군인이 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육군훈련소의 프로그램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군인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신 분들의 노고가 느껴졌습니다.
훈련 프로그램 중에는 가끔 훈련소 근처로 나가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민가 근처를 지날 때면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무심코 향기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드넓은 딸기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3월 중순, 딸기가 한창 무르익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논산이 딸기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딸기를 고를 때 국산인지 수입산인지는 확인했지만, 어느 지역에서 재배된 것인지는 살피지 않았었는데, 그날 이후로는 마트에서 딸기를 볼 때마다 논산산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화기 훈련을 받으러 갈 때면 고속도로 위를 다리로 건너는 일이 있었습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유롭게 달리는 차들을 보며 일상의 자유가 벌써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북지방병무청 파견근무 중에 그 고속도로를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훈련병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제가 서 있던 그 자리에서 훈련받는 후배들을 보며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7~8시간의 취침을 강제로 하다 보니, 이런 생활 패턴이 꽤나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공의 시절에는 늘 자정쯤 잠들어 오전 6시경에 기상했었는데, 훈련소에서는 그보다 한두 시간을 더 자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모두 소등을 하고 휴대폰 없이 누워있다 보니 자연스레 잠이 찾아왔습니다.
훈련소 생활 약 일주일 만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전공의 시절에는 제 체력이 약해서 수술방에서 늘 졸리고 피곤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7~8시간의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니 일과 시간에 거의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공의 시절 늘 달고 살던 잔잔한 두통도 훈련소 생활 내내 사라졌습니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전공의 시절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었는데, 훈련소 생활이 가져다준 뜻밖의 건강한 변화였습니다.
근거 중심의 연구를 하는 의사과학자로서, 호모 사피엔스가 이러한 규칙적인 취침 패턴으로 생활할 때 평균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분명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이런 일정이 계획되었을 것이라 추측해 보았습니다.
훈련소의 조교로 근무하는 기간병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일할까 궁금했습니다. 이분들은 근무 기간 내내 새로운 훈련병들의 입소와 퇴소를 반복해서 보게 되는데, 아마도 모든 훈련병이 사고 없이 무사히 수료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속한 분대는 특이하게도 전원이 전문의를 취득하고 30대 중반 이상의 나이에 입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조교들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많게는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인솔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이해했기에, 어차피 해야 할 훈련이라면 지시사항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최선을 다해 임했습니다.
이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었고,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 따뜻하게 대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근무하시는 모든 분들이 훈련병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셨고, 잘 보살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