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의 법칙’ 원하는 것을 상상하면 현실이 되는 신기한 현상을 말한다. 과거를 들여다보며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끌어당김의 법칙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온종일 혼자 외로움에 사무친 날 밤이면 엄마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아파” 그저 한 번 바라봐달라는 투정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메오메”를 연발하며 걱정을 쏟으셨다. 꾀병일 것이라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챙기셨다. 하룻밤 관심받고 나아지는 병명은 애정결핍이다. 오빠를 향하던 따뜻한 손길과 눈길이 내게로 향하는 몇 시간 동안 세상은 내 것이었다.
9살 무렵, 학교에 가기 싫었던 듯했다. 아파지고 싶었다. 간간이 받는 엄마 사랑이 고갈되었다. 기우제를 지내야 할 정도로 사랑 가뭄이 심할 때였을지도 모른다. 하룻밤 관심으로는 부족한 날 아침 더 자고 싶은데 엄마의 비질 소리에 잠이 깼다. 24시간이 부족한 엄마의 시계는 언제나 동트기 전부터 시작했다. 밥하고 빨래하고 마당 쓸고 때론 들까지 나갔다 들어오신 적도 있다. 막 일어난 나는 보송보송한데 엄마 목에는 언제나 수건이 걸려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당시의 나는 분명 3살짜리 아이보다 철이 없었다. 엄마의 땀방울이 무슨 의미인지 관심이 없었으니. 그날 아침 몸을 일으키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꺼풀이 올라가지 않았다. 고장 난 인형처럼 몸을 일으켜도 다시 누워도 눈꺼풀은 힘없이 축 처졌다. 내 의지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엄마! 나 앞이 안 보여. 눈이 안 떠져.”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급히 뛰어 들어온 엄마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시며 애타 하셨다. 가빠지는 숨소리만으로도 표정이 짐작되었다. 깊게 팬 주름살이 더 깊어졌을 것이었다. 걱정 담긴 눈빛이 마음에 그려졌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엄마 마음이 보이자 내 마음은 웃었다. 철저히 자신만 알았던 이기적인 소녀는 꿈쩍 못 하고 방 안에 갇혔다. 가난한 형편이라 병원은 가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서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거짓말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쩍쩍 갈라진 가문 마음에 물이 찼는지 자연스럽게 건강한 나로 돌아왔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칠판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해 안경을 썼다. 돋보기 쓰면 눈이 나빠진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은 뒤 가끔 아버지 돋보기를 쓴 적도 있었다. 안경 쓴 친구들이 똑똑해 보였고 부럽기도 했다. 호기심이 안경을 쓰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경을 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나빠졌다. 한 발 앞에 사람이 있어도 형태만 보일 뿐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둘째 출산한 뒤에도 가난은 여전했다. 끈덕지게 붙어있는 가난을 떼어낼 방법이 없어 받아들였다. 아직 젊으니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란 희망으로 안정적인 삶은 저만치 밀어놓았다. 그렇게 초라한 어느 날 또 전화가 왔다.
“엄마 말 잘 들어라.”
“네?”
중요한 일 아니면 전화를 하지 않으시는데 잘 들으라고 엄포까지 놓으니 심장은 불방망이 질을 하고 몸은 단단하게 굳었다. 한 몸뚱이에 여름과 겨울이 공존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잔뜩 겁을 먹었다.
“수술하자. 안경 안 쓰는 수술이 있다던데.”
“라식 수술?”
“잉! 그거”
“나 형편이 안돼.”
“엄마가 줄게. 너 수술 못 해주면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그때 병원 못 데려간 게 한이 맺혔다.”
“언니들한테는 뭐라고 해. 나 못해.”
“시댁에서 해줬다고 해. 아들 낳아서 해줬다고.”
“.........”
“아부지가 돈 보낼 것이다. 병원비가 얼만지 얘기해. 엄마가 잘 설득했다.”
보내주신다는 돈이 어떤 돈인지 잘 알고 있다. 더운 여름 고추 따서 번 돈이고 추운 겨울 매생이 짜서 모은 돈이다. 더위와 싸우고 추위를 이겨낸 엄마의 노고인데, 내 두 눈을 위해 쓰시기로 하셨다. 안경을 벗을 수 있는 희망에 기쁘면서도 내가 한심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눈을 못 감는다는 말씀이 가슴에 걸렸다. 또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독촉 전화까지 받고 난 뒤 병원에 다녀왔다. 계좌번호와 병원비를 말씀드리고 오일장이 열린 날 입금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수술비에 치료비까지 보태서 보내주신 큰 액수를 바라보며 늘 받기만 하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감사함과 초라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라식 수술은 광명이었다. 한 치 앞도 못 보았는데 신작로 끝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독수리 시력처럼 멀고 선명했다. 광명에 대한 보답은 이 눈을 지키는 것이라고 의식하며 한 곳에 오랫동안 응시하지 않으려 애썼다. 눈을 쉬어주기 위해 자연을 더 자주 바라봤다. 잠깐씩이라도 그렇게 고개를 들었다.
밝은 눈으로 몇 해 지난 뒤 남편이 신경 쓰였다. 땀 뻘뻘 흘리면서 안경을 벗고 쓰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번에도 엄마는 내 마음을 읽으셨다. 사위 수술비를 손에 쥐여주셨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눈을 떴다. 밝은 세상을 보며 기뻐하는 우리를 볼 때 어떤 기분이셨을까. 한쪽 눈으로 우리를 키우셨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두 눈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깊어지는 고민에 마음으로 질문을 던진다.
'엄마! 나 잘 걷고 있죠?'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