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방공호 속의 전화

by min

막 닷컴과 it버블이 불 때였다. 인터넷은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고 , 휴대폰이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유선으로 연결되던 전화기의 수요가 거의 사라질 무렵. 당신의 과거였으나, 현재도 진행 중일지 모르는 이야기





우리는 느슨한 연결속에서 살아간다.

한 줄 이메일주소

한 줄 sns

한 줄 전화번호

....


단 한 줄만 끊어져도 ,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사라지는 때가 있다.


존재는 한줄 세상에서 사라진다.



막탄은 광관지로 유명한 섬이다. 필리핀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나쁘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지만 , 모든 것이 좋지는 않았다. 막탄 세부 공항에서 해변도로 쪽으로 돌다 보면 Kontiki Marina란 곳이 보인다. 다이버 샵들이 즐비한 곳이다. 그곳에서 좀 더 간다면 야시장을 볼 수 있을 것이고 , 또 그 너머로 간다면 따닥따닥 붙은 판잣집들 사이로 바다를 보는 한 소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햇빛에 그슬러서 인지 약간은 검고 가느다란 손을 가진 소년은 코를 훌쩍거린다.

울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의 모습을 볼까 소년은 속으로 전전긍긍한다.


많은 이들이 떠나간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면 당연하다.

아직은 젊었던 소년의 엄마도 떠나는 관광객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래 가버리라지.'


자신을 사랑하지만 , 바다에 대한 증오가 더 컸었던, 엄마의 마음을 소년은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와 감정은 다르다. 계속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삼키려 몸을 들썩거렸다.


해는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붉은 흔적을 감출 때쯤 , 소년은 손에 들려있는 종이조각을 보았다. 반쯤불에 탄 종이 위에는 숫자의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떠나는 날. 소년의 엄마는 그에게로 쪽지하나를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화가 난 소년의 할머니가 어머니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을 공터에 던져 놓고는 불태웠다.


친구들과 항구를 떠돌다 젖은 몸이 식기도 전에 소년은 공터를 향해 뛰었다.

안다. 재만 있을 것이다. 다 타버린 거죽 속에 연기만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바람에 흩날릴 것이다.

안다. 그래 안다. 그래도 가야 한다. 봐야 한다. 다 타버린 재를 봐야만 했다.


의외로 빨리 타버린 잿더미는 온기조차 희미했다. 텅 빈 마음을 쓸어 담으려는 듯 소년은 잿더미를 휘휘 뒤저어 쥐었다.

소년의 손에는 검은 잔해와 타다만 하얀 종이조각 잡혔다.


소년은 집으로와 할머니에게 소리쳐 물었다. 엄마가 무슨 말을 적었냐고 , 전화번호를 남겼냐고

할머니는 소년을 말없이 지긋히 바라보다 뒤돌아선다. 뒤돌아선 할머니의 등 너머로 따갈어로 된 험한 욕이 나지막이 새어 나왔다.


확신할 수 없다. 그저 엄마는 잘 있으라 , 혹은 자신을 용서해라.라고 적은 것인지

또 혹은 전화번호를 남긴 것인지.

또한 이 숫자가 엄마가 남긴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뭔가.. 희망이란 느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울음이 가시지 않은 저녁, 항구 아래 판잣집으로 가는 길에는 가로등이 드문드문하다.

그마저 곧 꺼져버릴 듯 깜박이며 점멸 중이었다.


그 희미해져 가는 불빛아래로 소년은 공중전화기를 발견한다.

소년은 천천히 공중전화기로 향한다. 손에 들린 작은 종이조각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 나온 몇 개의 동전들 , 낮에 한 노란 머리 외국인이 귀찮다고 자신에게 던져준 것들 , 아니 소년에게 버린 것들이었다.


소년은 투입구에 동전을 넣고 , 종이에 적힌 숫자에 기대어 마구잡이로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한다.

어쩌면 전화가 어머니에게로 연결될는지 모른다. 어쩌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몇 번의 신호음과 끊김, 정적

몇 번의 시도가 다해갈 무렵,

의미 없이 다이얼을 누르는 소년의 손이 눅눅해졌다 이내 건조해진다.

들이마셔지는 숨소리에 침이 삼켜졌다.


몇 번의 신호음 일었을까?

수화기 너머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Hello?"




강대국이라 불릴만한 나라들 중, 그중에 최강을 뽑으라고 하면 이견없이 미국이라 하겠다. 그건 거의 세계 2차 대전이 종식된 후부터 , 서기 2000년이 넘어가는 시점까지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 이후 한동안은 그러할 예정일지도 모른다.


핵(nuclear)이라는 건 , 불과 100년 전 인류가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질이 에너지라는 사실을 ,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전략적 개념으로서 핵무기의 파괴력은 국가의 운명을 바꾼다.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운명조차 바꿀 수도 있다.


강하다는 것은 남을 무너트릴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 우선 살아남고 , 견디고 , 준비를 하는 것이다.

최강이라 불리는 미국, 그 국가의 시스템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준비하고 쌓아 나갔다.



미국의 땅덩이가 작지가 않은 만큼 , 핵방공호의 숫자도 추정 불가였고, 여러 개념으로도 건설되었다.

핵폭탄의 폭압과 열 , EMP , 방사능 낙진 등으로의 물리적 보호를 위한 경화 단계로 핵방공호의 수준을 상정하는 경우가 많으나 ,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기 전에는 용도적 측면에서 분류하기도 했다.


네바다주 그 유명한 모하비 사막. 그곳에서도 핵방공호가 있었다. 이곳에 지어진 핵벙커는 주로 연구시설이었으나 , 때로는 전략지휘부 겸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물론 지리적, 환경적 요건 때문에 지휘부로써의 용도는 최악의 상황에서의 플랜 b나 c정도의 역할이었다.

(대표적 핵방공호인 샤이엔산 핵벙커가 괜히 록키산맥에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은 지나고 , 냉전이 옅어질 무렵, 시스템은 변화하고 바뀌게 된다.

일부는 시스템에 편입이 되고 , 일부는 폐쇄되거나 잊히게 되었다.



모하비 사막, 이름이 지워진 핵방공호 안.

지상에는 몰락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의 잔해였고, 지하 깊숙한 곳에는 오래된 지하구조물과 복잡한 미로, 그 끝에 있는 여러 구획들과 오래된 컴퓨터들이 존재했다.


이 시대에 컴퓨터가 있었다고 하나, 주로 종이 문서로 자료를 보관했다. 후에 중요자료들은 물리적으로 파쇄되었음에도 종이 한 장 또는 누군가의 일기처럼 그 흔적은 남게 되어 있었다.


벙커를 이동할 때는 기본적인 규칙이 있다. 자신의 구역이 아닌 곳에는 가지 말 것. 일정 경로로만 이동할 것.

보안 규칙과 복잡성으로 말미암아 , 모두가 떠난 벙커 끝자락에는 한 명의 여인이 희미한 빛과 같은 조명아래 남게 되었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그녀는 한참의 세월 어느 날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상급 연구원 조지 밀러의 관찰 기록은 세상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개인적인 감상이 많았고 , 어떤 면에서는 소설로 치부될 만큼 비현실적이기도 했다.

'우리는 아포칼립스를 상정하여 준비를 하였다. 극한 상황에서 적들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생존을 좌우할 것이다. 바로 예측, 예측은 그 빌어먹을 컴퓨터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지금도 기껏해야 탄도 계산, 암호해독 정도로 이용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것이 부서져버린 세상에서 그 기계덩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해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인디언 부족 중 아직 원시성을 가진 샤먼일족이 존재하였다. 여전히 인디언들을 주목하고 있었던 건 , 2차 세계대전 때 암호화 전문에 인디언 부족의 지방 언어가 사용되었던 것이 한 영향일 것이다. 우리는 CIA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연합하여 , 해당 부족의 능력을 크게 아니 경이롭게 향상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든 것을 보았고 ,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먼 미래에 대한 검증은 할 수 없으나 , 근 미래에 대한 예측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핵방공호 속에 그녀만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무엇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나이도 먹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을 홀로 그 안에서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그녀가 지내는 방안에는 여러 선들이 엉켜 있었다. 두 개의 빨간 전화와 하나의 검은 전화.

모든 경로로 엉켜있는 선들은 최후의 날에 대비해 끊어지지 않는 경로로 준비되었다.


따르릉

기계식 전화기의 울림이 일기도 전에 그녀는 알았다.

어머니를 찾고 있는 소년의 말을

그리고 이후에 한참 동안 이어질 어떤 이야기들의 시작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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