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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희 Nov 12. 2020

글 쓰기가 어려울 땐 솔직하게 쓰기

 첫 번째 책을 낸 후 한동안은 연예인처럼 이리저리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다. 거금 300만 원 이상을 투자했으니 어느 정도는 홍보라는 것을 해서 메워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발가벗은 맨 몸과도 같은 그 물건을 온,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내 보이고 다녔다는 사실이 낯부끄럽지만 그땐 상황이 달랐다. 나의 책이 세상의 빛을 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것은 물론 바보같이 온종일 웃고 다녔다.

 

 그 날은 평소에 잘 연락하지 않던 지인들에게 까지 염치없이 메시지를 보내다 오랜만에 성원이 형과 연락이 닿았다. 예전 광화문에 위치한 호텔에서 3년 정도 같이 직장생활을 보낸 선배인데 그 당시에도 좀 독특한 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은 대부분은 정말 네가 쓴 책 맞느냐며 ‘못 믿겠다’ ‘축하한다’와 같은 반응을 보인 반면에 이 형은 아무런 질문도 없이 담담하게 한 줄의 메시지만 보낼 뿐이었다.     


“그렇게도 니 인생의 흑 역사를 남기고 싶었냐. 평생 놀림감 하나 생겼네.”     

 

 이 종잡을 수 없는 특이한 형을 나는 꽤나 좋아했다. 나 또한 약간 별난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직장에서도 남들이 조금은 꺼려했던 성원이 형과 나름 죽이 잘 맞았었다. 그렇다고 또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사적으로 자주 만나거나 하진 않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어찌 된 일인지 광고회사에 다니는 중이란다. 광고회사? 잠시 눈이 번쩍 뜨였지만 형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별 기대는 없었지만 센스 있는 형은 고맙게도 자신이 홍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책 몇 권만 가져와 보라 했다. 그렇게 우린 약속을 잡았다.

 

 홍보용 책 10권을 가방에 짊어지고 늦은 오후 합정역과 상수역 중간 즈음에 위치한 형의 단골 고깃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동생한테 얻어먹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형은 여기는 소고기가 맛있는 집이라며 돼지고기를 시키려던 나를 제지하고선 꽃등심을 주문했다. 거의 3년 만의 재회였다.     


“형, 제 책 읽어 봤어요?”

“당연히 읽어봤지, 앞에 한 3장 정도만. 그다음부터는 도저히 못 읽겠더라.”

“그래도 동생이 나름 공들여서 쓴 첫 책인데 좀 읽어주세요.”

“나중에 두 손 꽉 움켜쥐고, 큰 맘먹고 한 번 도전해보마.”     

 

 말은 저렇게 해도 이미 내 책을 읽어 봤을 형이었다. 우린 정말 오랜만에 만났기에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서로 간의 동향 토크를 한참 주고받은 뒤, 다시금 글에 대한 이야기로 회귀했다. 조금은 진지한 얼굴을 한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관희야, 동시를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형 동시를 아무나 쓰나요. 제가 볼 때 동시 쓰는 사람들은 진정한 고수들이에요.”

“야 그 사람들도 처음엔 다 허접이었을 거 아니야, 너도 한 번 써봐, 그 대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겠다는 각오로.”     

 

 나는 극구 손사래를 치고는 술이나 한 잔 더 받으시라며 형의 술잔을 가득 채워 주었다. 형은 소주 한 잔 가볍게 털어 넣고는 맛깔나게 고기 한 점을 음미하면서 대뜸 다음 책은 언제쯤 나오느냐고 물었다. 아직 글 쓰는 법도 잘 모르는데 어찌 다음 책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언젠가 졸작을 또 하나 낼지도 모르겠지요, 하고는 기약 없는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이 형이 또 요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야, 그 일본 작가 있잖아, 무라카미 뭐시기더라.”

“하루키요?”

“아 그 사람 말고.”

“그럼 류? 무라카미 류요.”

“어 맞다, 무라카미 류, 그 사람이 쓴 책 있잖아, 아, 뭐였더라.”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아, 그 제목이 아닌데.”

“음... 그럼 또 유명한 책이... 식스티 나인?”

“그래 맞아, 육구. 제목부터 참 좋지 않냐. 난 그 책이 마음에 들더라.”     

 

 나는 현실 웃음이 터졌지만 형은 절대 19금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도 책 꽤나 읽는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식스티 나인’을 읽은 지는 좀 오래됐지만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도 좋은 작품이니 한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해주었다. 그러자 형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다시금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다음 책은 육구처럼 한 번 써봐.”

“에이 형, 이제 막 글 같지도 않은 것들 묶어서 한 권 낸 수준인데, 다음 책은 아무래도 아직 무리죠. 그리고 무라카미 류처럼 쓰기가 어디 쉽나요. 소설은 써볼 용기도 없어요. 근데 어떻게 써보라는 거예요? 약간 19금스럽게?”

“아니, 인마, 솔직하게 써 보라는 소리야, 어떤 장르를 쓰든 간에 허심탄회하게 써 보라는 거지, 네가 쓰고 싶은 대로 그냥 막 써봐, 대신 아주 솔직하게.”     

 

 성원이 형을 만나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난생처음 동시를 짓기 시작했다. 사실 첫 책을 쓰는 동안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고 완전 엉망이었다. 백수에다가 이별까지 한 상태였으니. 그래서 한동안은 조금 쉬자 마음먹었는데 자꾸만 형의 말이 내 머릿속을 휘졌고 다녔다. 결국은 키보드를 다시 잡고 동시 5편을 완성해 ‘창비 어린이 신인문학상’에 응모를 하고, 신중하게 시도 5편 지어서 신춘문예까지 도전했다.

 결과는? 양쪽 다 보기 좋게 참패했다. 그렇지만 뭐 결과가 중요한가. 덕분에 역대 수상작들을 죄다 읽어가며 시라는 장르의 매력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평소 읽지도 않던 시집들도 찾아보게 되면서 어휘력이나 표현력도 조금은 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0편 남짓한 시를 짓는데 거의 두 달 이상이 소요되었다는 점과, 그 두 달이 너무나도 괴로웠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아무나 될 수 없음을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내가 했던 도전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하얀 백지 위에 한 편의 시를 창작해야 한다는 그 무겁고도 두려운 중압감을 경험해 봤기에, 가끔 쉽사리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느끼는 괴로움 정도는 나름 가볍게 이겨내 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쓰기 전에도 솔직하게 써보라는 형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헌데 솔직하게 쓰는 건 둘째치고 이 책을 처음 써내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큰 부담이자 걸림돌은 기획력. 즉, 책의 윤곽을 잡는 일이었다. 특히나 나는 글을 몇 번 써보지 않았기에 어떤 주제로,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눈앞이 깜깜하고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우선은 솔직하게 아무 글이라도 써보자 다짐하며 끄적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솔직하게, 아주 솔직하게.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이 몇 달 전 읽었던 임경선 작가님의 에세이 <자유로울 것>의 문장들이 떠올라서 책을 다시 펼쳤다.     


‘에세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고려하는 두 가지는 솔직함과 작가 고유의 문체’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도 ‘솔직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작가 고유의 문체’는 해결방안이 없어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 뒤에 이어져 나올 문장 때문에 나는 다시 미소 지었다.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선 에세이를 쓰는 사람 자체가 매력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문장이 나에게 크나큰 힘이 되었다. 왜냐, 매력 하면 또 나니까! 그렇게 작가님의 생각을 나 스스로에게 관철시켜 뭔가에 홀린 듯이 거침없이 써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마구잡이로 써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아무튼,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잃은 내 마음의 방향키를 잡는데 형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소생시켜준 덕분에 지치지 않는 용기로 지금 까지 글을 써 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걱정들이 많다. 이런 졸필을 또다시 책으로 엮어 내도 좋을지, 끝내 책을 완성시킬 수 있을지, 값어치 못하는 또 하나의 쓰레기가 탄생하는 건 아닐지.

 그래도 내 책을 받아 들고 다시 한번 독설을 날려 줄 성원이 형, 왜 또 책을 냈냐고 불평하면서도 가벼운 주머니마저 털어내 줄 친구들, 인자한 미소를 띠며 기뻐하실 부모님, 그리고 가장 만족스러워할 미래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오늘도 온 힘을 다해 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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